[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16일 “명백히 헌법에 반하는 집시법 제11조 대안을 졸속으로 처리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규탄한다”며 “국가기관 인근에서 개최되는 집회 및 시위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집시법 제11조는 전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집시법 폐지 공동행동
지난 3월 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집시법 폐지 공동행동

헌법재판소는 2018년 국회의사당 등 특정 장소에서의 옥외집회와 시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 중 제1호(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부분) 및 제3호(국무총리 공관)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국회에 2019년 12월까지 개정을 요청했다

시민사회단체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지속적으로 국회에 집시법 제11조 전면 폐지 의견을 전달했고, 그 결과 집시법 제11조를 전면 폐지하는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는 개정시한이 도래하기까지 집시법 개정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집시법 제11조 제1호 및 제3호는 효력을 상실했다.

민변(회장 김호철)은 “이런 상황에서 국회는 지난 6일 갑작스레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를 열어 집시법 제11조 전면 폐지안을 포함한 모든 법률안을 폐기하고, 국가기관 인근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의 대안을 의결했다”며 “행안위의 대안 가결에 유감을 표하며, 대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정안전위원회 대안은 국회 또는 각급 법원 인근에서 각 기관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거나, 대규모 집회ㆍ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집회ㆍ시위만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국무총리 공관 인근에서는 국무총리를 대상으로 하지 아니한 집회이거나 대규모 집회・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집회・시위만을 허용하고 있다.

민변은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모든 사람이 보장받는 기본권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명시적으로 집회ㆍ시위에 대한 허가금지를 강조하고 있다”며 “이는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단순히 개인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시민들의 공적 권리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의 종전 결정을 상기시켰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11월 선고에서 “장소는 집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누구나 집회의 장소를 스스로 결정할 장소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고 밝혔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선고에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은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고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정당화될 수 있고, 그 경우에도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민변은 “국회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했다면, 특정 장소에서의 불필요한 집회ㆍ시위 금지가 내포하는 위헌성과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가진 헌법적 의미와 기능 등이 행안위 대안에 반영됐어야만 했다”며 “그러나 행안위가 불과 3일 만에 마련한 대안은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의도보다 엄격한 통제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역행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행안위 대안은 구체적으로 시민들의 주권행사를 의미하는 집회ㆍ시위에 대한 편견어린 우려의 관점에서 성안됐다”며 “특정 장소에서의 집회ㆍ시위를 평화적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활동을 방해할 우려’ 또는 ‘대규모인지 여부’ 등 단순하고 포괄적인 우려만으로 위법한 집회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이러한 추상적 우려를 구성요건으로서 형사처벌까지 예정하고 있는 행안위 대안은 죄형법정주의로부터 파생되는 명확성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경찰 금지통고 및 검찰 기소 등의 남용 등 자의적인 법집행을 초래함으로써 국가기관에서의 집회ㆍ시위를 광범위하게 위축하고 제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변은 “행안위 대안이 제시하는 ‘방해할 우려’ 또는 ‘대규모 집회ㆍ시위로 확산’ 그 자체도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국무총리 공관 등 국가기관 인근에서 개최되는 시민들의 집회ㆍ시위는 본질적으로 국가기관의 직무수행에 대한 비판 등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과 내용을 가진다”며 “따라서 주권자인 시민들의 표현행위를 ‘방해할 우려’라 평가하는 것은 집회ㆍ시위의 본질내용을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특히 대안은 국무총리 공관 인근의 집회의 경우, 국무총리를 대상으로 하지 않은 집회를 허용되는 집회로 봤는데, 이는 집회ㆍ시위를 내용에 따라 차별하는 것임과 동시의 집회ㆍ시위의 비판적 기능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집회ㆍ시위가 평화적인지 여부는 규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규모와 관계없이 평화적 집회는 대한민국 헌법에 따른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규모’를 기준으로 집회ㆍ시위의 허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헌법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며 “당연한 귀결로서 대규모 확산의 우려만으로 집회ㆍ시위를 위법하다고 보는 행안위 대안은 헌법에 명백히 반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집시법 폐지 공동행동
집시법 폐지 공동행동이 지난 3월 6일 국회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민변 오민애 변호사가 집시법 11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행정안전위원회는 대안의 제안 이유를 집회ㆍ시위의 자유와 공공의 안녕질서의 적절한 조화를 모색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민변은 “대안은 집회ㆍ시위를 보장하기보다는 집회ㆍ시위를 통제하기 위한 법안으로 어떠한 조화도 모색하고 있지 않다”며 “오히려 대안은 시민들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국가기관의 반민주적 목적을 가진 법률안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명백히 헌법에 반하는 대안을 졸속으로 처리한 국회 행안위를 규탄한다”며 “집시법 제11조를 개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것은 국가기관의 편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이 되는 기본권이라는 점, 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이라면 국가기관을 포함해 어디서든 집회ㆍ시위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국민들의 집회ㆍ시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기관은 없다는 점이 집시법 개정의 핵심이 되어야 마땅하다”며 “따라서 국회는 본회의에서 행안위 대안을 폐기하고, 국가기관 인근에서 개최되는 집회 및 시위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집시법 제11조 전면 폐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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