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독서실에 있던 휴대전화 충전기를 공용이라고 생각해 사용하다가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아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처분’이 내려진 사안에서, 헌법재판소는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며 취소 결정을 내렸다.

기소유예처분은 혐의는 인정되지만 경미한 사안인 경우 피의자의 연령이나 성행,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나 수단,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선처의 의미다.

그러나 기소유예처분도 어쨌든 혐의로 판단하는 것이어서, 혐의를 부인하는 당사자들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통해 취소를 구하는 경우가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따르면 2018년 2월 A씨는 용산에 있는 공용독서실에 다녔다. 독서실은 자유 착석하는 책상과 고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책상이 한 방에 혼재돼 있었다. A씨는 독서실을 세 번 이용했는데, 매번 다른 좌석에 앉았다.

A씨는 두 번째 독서실 이용일인 2018년 2월 자신이 앉은 책상 앞 열에 꽂혀있던 충전기를 빼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충전하면서 공부하던 중 어머니가 용산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독서실을 나오면서 충전기를 원래 위치에 돌려놓지 않고 자신이 사용하던 독서실 책상 서랍 안에 두었다.

이 충전기는 B씨의 것이었다. 다음날 B씨는 자신의 충전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이날도 독서실을 이용했다. CCTV 영상을 통해 A씨가 충전기를 사용한 것이 드러나 경찰 조사를 받았다.

A씨는 당초 충전기가 어디 있는지 잊어 버려 찾지 못하다가, 다음날 충전기의 위치가 기억이 나서 독서실 책상서랍에 있던 휴대폰 충전기를 꺼내 독서실 총무에게 건네주었다.

A씨는 “독서실 공용충전기라고 생각하고 충전했던 것이지, 타인의 충전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또 충전기를 사용한 후 반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어머니가 기차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마중 나가는 과정에서 반납하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군 검찰은 2018년 6월 A씨에 대해 “공용독서실에서 타인의 휴대폰 충전기를 절도했다”는 혐의로 기소유예처분 했다. 이유는 “A씨의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A씨는 휴대폰을 충전할 목적으로 충전기를 가지고 간 것으로 동기에 참작할 사유가 있으며, 충전기는 시가 1만 5000원 상당으로 사안이 그다지 중하지 않고 충전기도 반환됐으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A씨는 “절도의 고의 내지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며 “기소유예처분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18년 9월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대법원 판례(2009도9008)는 “타인의 재물을 점유자의 승낙 없이 무단 사용하는 경우, 그 사용으로 인한 가치의 소모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하고, 또한 사용 후 곧 반환한 것과 같은 때에는 그 소유권 또는 본권을 침해할 의사가 없으므로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A)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헌재는 “청구인이 충전기를 사용한 날은 독서실을 두 번째 이용하던 날이었고, 독서실이 익숙하지 않아 휴대폰 충전기가 꽂힌 책상이 지정좌석이 아니라 자유좌석으로 착오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러한 좌석에 꽂혀 있는 충전기라면 독서실 공용으로 제공돼 임의로 가져다 사용해도 되는 충전기라고 오인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이어 “독서실 관리자 및 피해자조차도 당시 피해자 소유의 충전기를 공용충전기로 인식할 수 있다고 진술하는 등, 일반인도 독서실 내 피해자 자리에 놓여 있는 충전기를 공용충전기로 생각할 개연성이 충분했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청구인은 충전기를 사용한 뒤 서랍에 두고 나간 다음 날에도 독서실에 나와서 전날과 다른 좌석에 앉아 공부를 했던 점을 보더라도 그에게 절취의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청구인이 충전기를 놓고 나간 곳은 지정석 아닌 자유석 책상 서랍이었으므로 매일 독서실 운영이 종료되면 독서실 관리자에 의해 수거될 수 있는 상태였다”며 “충전기는 청구인의 배타적인 점유상태 하에 이전된 것이 아니라, 독서실 관리자의 지배가능한 장소적 범위 내에 머물러 있었으며, 실제로 피해자가 독서실 관리자를 통해 되찾았다”고 말했다.

헌재는 “그리고 충전기를 일시 사용함에 따른 가치의 소모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했다”며 “결국 청구인에게 절도의 범의가 있었다거나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헌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에 대해 절도죄의 범의 및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됨을 전제로 기소유예처분을 했다”며 “이는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및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으므로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이로 말미암아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