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상고사건 심리불속행 제도의 위헌성을 다시 심판대에 올려놓고 심리할 예정이어서 법조계의 핫이슈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또 헌법재판소법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부분도 따져본다.

심리불속행은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인데, 대법원이 상고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처리하는 건, 상고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A기업 등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상고인들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하여 이유 없으므로, 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A기업 등은 지난 2월 21일 헌법재판소에 대법원의 상고사건 심리불속행 제도의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2020헌마271)

청구인들은 “대법원은 아무런 이유기재도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을 기각했다”며 “대법원 판결은 최종적인 판단인데, 우리의 주장이 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지 조차도 모른 채 사건이 종결돼 도저히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청구인들은 “대법원 판결은 심리불속행 상고기각하면서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며 “이는 대법원이 청구인들의 상고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것으로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 평등권 및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 제3지정재판부(이석태 재판장, 이영진ㆍ이미선 재판관)는 지난 3월 3일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위헌확인 등 사건을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있으면, 헌법재판소는 사건을 배당하고 ‘지정재판부’에서 사전심사를 한다.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전원일치 결정으로 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며 ‘각하’하지 않으면, 그 사건을 재판부에 회부하는 결정을 한다.

즉 지정재판부의 회부결정으로, 이번 사건은 헌법재판관 9명이 참여하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의 본안 심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 대리인측은 “기존에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도 있었고, 대법원과의 민감한 관계 문제도 있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며 “더욱이 헌법소원이 접수된 지 불과 2주 만의 결정은 헌재의 과감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대리인측은 특히 “헌재가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심판회부 결정을 했다는 것은, 최근 새롭게 구성된 헌법재판소 재판부가 국민의 권익 구제 및 신장 관점에서 그간 꾸준히 법조계의 지적을 받아온 재판소원 대상성과 심리불속행 제도의 문제점을 심도 있게 재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결단으로, 상당히 평가받을 만한 결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이충윤 대한변협 대변인 “심리불속행 기각은 재판청구권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

이와 관련 8일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상고사건의 증가로 인해 극소수 전원합의체 판결을 제외하고는 충분한 대법원 판결 심리가 어려워 ‘10초 재판’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며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 또한 상고허가제, 대법관 증원 등 다양한 해결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한변협 이충윤(법무법인 해율) 대변인은 “심리불속행 기각이 상고심법에 따른 제도이고, 그에 해당하는 경우 이유를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적법하다”면서도 “그러나 원심판결(原審判決)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해 부당하게 판단하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선행 대법원 판례가 없거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 상고 이유에 해당한다고 볼 충분한 소지가 있는 경우에도 심리불속행 기각을 해 이유도 기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3심제를 2심제로 바꿔버리는 것으로 청구인의 재판청구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 헌법학자 한상희 “재판받을 권리 제한 분명하나, 위헌 여부 판단 신중할 필요”

헌법학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심리불속행제도는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제한임은 분명하다. 특히 재판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는 물론 민주적인 사법의 체계를 확보함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는 제도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전관예우의 가능성까지 열어둔다는 점에서 그리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는 “하지만, 현재의 우리 상고제도와 그에 쏟아지는 사건부담을 고려할 때, 대법원의 재판역량을 형평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심리불속행제도와 같은 편법적인 재판운영이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봤다.

한 교수는 “마침 대법원에서 상고심제도 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임을 감안해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그와 보조를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심리불속행제도는 단순히 위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재판심급제도 전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제도인 만큼 위헌 여부의 판단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상고심법)

청구인들은 “심리불속행 재판을 할 경우 판결이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한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5조 제1항 중 제4조(심리의 불속행)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있어서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상고심특례법 제5조 제1항 중 제4조에 관한 부분에 대해 2011년 12월 29일 재판관 5(합헌) 대 3(위헌) 의견으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지 않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때문에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대리인측에서도 지정재판부의 전원재판부 회부결정이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본 것이다.

그간 법조계에서는 특례법 조항은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서 그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판결이 과연 적정한 것이었는지, 혹시 상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거나 잘못 판단한 점은 없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상고인의 재판청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청구인들은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면서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경우 당사자로서는 상고가 적법함에도 불구하고 상고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종국적인 판단이 거부됐을 뿐 아니라, 자신이 주장한 상고이유가 왜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하는지조차도 모른 채 패소 확정판결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결론의 적법 타당성을 알 방법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청구인들은 “판단유탈과 같은 재심사유가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고, 특례법 조항은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서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판결이 과연 적정한 것이었는지, 혹시 상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거나 잘못 판단한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상고인의 재판청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청구인들은 “국민주권주의 및 법치주의 헌법 하에서 국민들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판결과 사법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대해 반드시 재고(再考)돼야 한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아무런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재판의 결론만을 선고하면서 재판이 확정됐으니, 결과에 승복하라고 요구하는 재판은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해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제도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청구인들은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재판을 하는 법원으로서도 자신의 판단이 과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정하게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검토할 계기가 줄어들게 되므로 자의적 판단에 빠질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청구인들은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있어서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특례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일체의 이유기재가 없는 재판의 길을 열어놓고 있는 특례법 조항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명백히 부당한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청구인들은 이번 심판대상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있기는 하나 ▲판례가 나온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적 통제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을 실질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가고 있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구성에도 변화가 있다는 점 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결정에서 재판관 5(합헌) 대 3(위헌)으로 갈렸다. 당시 김종대, 송두환, 이정미 재판관은 “더 이상 불복이 허용되지 않는 최종적인 판결에 있어서 이유 기재가 없는 재판이 가능하도록 한 특례법 조항은 근대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재판 이념과는 부합하지 않으며, 법치주의원리에 따른 재판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답이 없는 재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재판의 본질에도 반하는 잘못된 규정”이라며 위헌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 법원의 재판을 제외한 헌법소원심판제도의 위헌성

이와 함께 청구인들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청구사유) 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는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구인들은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의 구속을 받고 헌법에의 기속은 헌법재판을 통해 사법절차적으로 관철된다”며 “헌법의 하위 규범인 헌법재판소법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헌법에 의해 부여된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기능, 헌법을 정점으로 한 국가권력 통제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사법체계에 관한 헌법의 규정에 비춰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또 “가사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재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유를 불문하고 모든 재판을 절대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헌법을 정점으로 한 국가권력의 통제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체계를 갖추고 있는 헌법체제 하에서는 위헌의 소지가 현저하다”고 봤다.

청구인들은 “특히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국민의 절차적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 및 법률을 위헌적으로 해석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침해나 재판에 대해서까지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면, 이는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헌법재판소의 존재의의와 헌법재판제도의 본질과 기능을 부인하는 것이고, 헌법의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원리와 권력분립의 원칙마저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다시 최종적으로 심사함으로써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관철하고, 침해된 기본권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구인들은 “결론적으로 ‘법원의 재판’만을 헌법적 통제에서 예외로 둘 근거나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며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의 허용 여부 및 범위는 일차적으로 헌법과 헌법재판제도의 존재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로, 재판부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판례변경에 관한 검토와 역사적 결단이 절실한 때”라고 요청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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