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반올림의 임자운 변호사는 5일 “삼성보호법이라는 오명을 쓰기에 충분한 산업기술보호법은 국민의 알권리, 생명ㆍ건강권,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 취지를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헌법소원 취지를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침해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은 위헌이다!’라는 주제로 반도체ㆍ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및 산업기술보호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에는 반올림,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단법인 오픈넷,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건강연대, 생명안전 시민넷, 일과건강, 건강한 노동세상, 다산인권센터 등 12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에서 “국회는 2019년 8월 2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악시켰다”며 “특히 알권리의 경우 오히려 후퇴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될 수 없고, 산업기술을 포함하는 정보는 취득목적과 달리 사용하고 공개하면 처벌한다”며 “알권리는 노동자의 생명 안전 보호를 위해 정말 필수적인데도, 산업기술보호법은 그런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은 유해물질에 대한 알권리와 사업장의 유해환경에 대해 공론화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이라며 “결과적으로 일터의 위험이 알려지는 것을 막아, 국민들이 사고와 질병, 죽음으로 그 피해를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에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헌법소원 청구를 통해 산업기술보호법이 위헌임을 확인하고자 한다”며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독성화학물질만큼이나 위험하다. 국민들의 알권리와 건강권 실현을 위해 산업기술보호법을 제대로 바로잡아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

조승규 공인노무사, 최지연 변호사, 박기형 상임활동가
조승규 공인노무사,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최지연 변호사, 박기형 상임활동가

이날 헌법재판소에 접수한 산업기술보호법 헌법소원은 오픈넷 최지연 변호사, 민변 오민애 변호사, 참여연대 최종연 변호사,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등 4명이 검토해 작성됐다.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반올림(시민단체), 삼성 직업병 피해가족, 과거 삼성반도체 작업환경 자료 정보공개청구 및 대리인, 반도체공장 안전보건 연구자(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산업보건학 교수, 공중보건학 교수), 언론인 및 지역주민이다.

기자회견에서 최지연 변호사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했고, 임자운 변호사는 헌법소원의 취지 및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는 “저희가 삼성보호법이라고 부르고 있고, 왜 산업기술보호법이 삼성보호법이라는 오명을 쓰기에 충분하지는 오늘 제출하는 헌법소원 청구서에 자세히 있다”며 “제가 이 법이 왜 위헌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몇 가지 제한을 두고 있다”며 “첫째는 법률로써 제한하라고 한다. 법률의 일부 내용을 하위법령에 위임할 수는 있으나, 일반적인 포괄적인 위임은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또한 그 법률은 집행당국의 자의적 집행을 막을 수 있도록 명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기본권 제한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즉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수단이 적합해야 하며, 침해최소성과 법익균형성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는 “그런데 지금 저희가 문제 삼고 있는 산업기술보호법 심판대상 조항 중 제9조의 2는 ‘국가기관 등으로 하여금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첫째는 명확성 원칙에 크게 위반된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 자체가 굉장히 모호한데, 그것에 관한 정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도 제시돼 있지 않고, 따라서 국가가 혹은 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장이 임의로 그 대상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관련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전혀 제시되지 않아, 비공개정보의 대상 범위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으로, 법 집행당국이나 관련 기술을 보유한 사업주 등이 자의적으로 비공개 대상 정보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자운 변호사는 “또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했다. 그는 “국가핵심기술 보호라는 목적 자체는 정당할 수 있으나, 그 기술 보호와 관련 없는 정보까지 비공개하도록 하고 있어서, 적합한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짚었다.

임 변호사는 “대상 개별정보의 보호가치를 따져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ㆍ건강을 위해서는 공개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둘 수도 있다”며 “이처럼 기본권 제한을 덜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그것에 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저희가 또 문제 삼고 있는 심판대상 조항은 개정 산업기술보호법 제14조 8호 ‘산업기술 관련 소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적법한 경로를 통해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그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 용도로 사용 공개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또 “그리고 산기법 제34조 10호 ’정보공개청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된 자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면 처벌하겠다는 규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는 “이 또한 포괄위임금지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벌에 관한 규정을 하위법령에 위임할 경우에는 특수한 경우에만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며 “즉 긴급한 필요한 있으나, 법률로써 구성요건을 상세하게 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인데, 앞서 말씀드린 조항에 그러한 긴급한 필요나 부득이한 사정이 대체 무엇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또한 ‘산업기술 관련 소송’, ‘산업기술을 포함한 정보’, ‘산업기술에 관한 정보’, ‘제공받은 목적 외 다른 용도’ 등은 (매우 불명확해) 이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이 법률내용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가령 산업기술보호법이 보호하는 산업기술이라는 게 수천 개가 된다. 그것과 관련된 소송은 무엇이며, 그것을 포함한 정보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며 “결국 국가나 그 기술을 보유한 사업주가 마음대로 정할 게 뻔하다”고 봤다.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헌법소원을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는 “두 번째로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는 “역시 산업기술 보호라는 목적 자체는 정당할 수 있으나, 그 기술보호와 무관한 정보, 공개되더라도 아무 상관없는 정보까지 지금 사용ㆍ공개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단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대상정보의 개별적 보호가치를 따져서 비공개 대상을 판단하거나, 부당한 목적이 개입된 사용ㆍ공개만을 처벌하더라도 산업기술보호에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임 변호사는 “그리고 이 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관련 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공익적 문제제기나,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기 위한 정보 수령까지 모두 무겁게 처벌되는 범죄행위가 돼 버린다”고 우려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그러면서 “따라서 보호법익 간에도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위 조항들은 청구인들의 알권리, 생명ㆍ건강권,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헌법소원에서 주장했다.

구회 외치는 반올림 활동가, 임자운 변호사, 조승규 공인노무사, 최지연 변호사
구회 외치는 반올림 활동가, 임자운 변호사, 조승규 공인노무사, 최지연 변호사

이어 기자회견 사회를 진행한 반올림 이상수 상임활동가는 다음과 같은 구호를 선창했다.

“알권리 가로 막는 산업기술보호법 위헌이다”

“일터 안전 위협하는 산업기술보호법 위헌이다”

“국민건강권 외면하는 산업기술보호법 위헌이다”

작년 8월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될 때 추가된 제9조의2, 제14조 제8호, 제36조 제4항, 제34조 제10호 조항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하고,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는 적법하게 얻은 정보라도 받은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2020년 2월 20일 시행됐다.

삼성전자 LCD에서 일하다 뇌종양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는 “납, 플럭스, 유기용제, 야간교대근무 저는 일하면서 이런 유해요인에 노출됐다”며 “그런데 삼성에서는 뭐가 위험한지 알려준 적이 없다”고 알렸다.

한씨는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위험요소를) 알려달라고 해도, (삼성에서는) 영업비밀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며 “이제라도 위험을 알려야 다른 사람들이 안전해질 텐데, 그렇게 하면 처벌받는다고 한다. 잘못된 법이니 꼭 바로 잡아 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반올림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6월부터 2020년 3월 5일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백혈병ㆍ악성 림프종 등 직업병 피해자는 683명이고, 이 가운데 19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람은 근로복지공단이 인정한 44명과 법원이 인정한 20명 등 64명뿐이다.

위헌 퍼포먼스
위헌 퍼포먼스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끝난 뒤 임자운 변호사, 최지연 변호사, 조승규 공인노무사가 산업기술보호법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하러 헌법재판소에 들어가는 조승규 공인노무사, 임자운 변호사, 최지연 변호사(우)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하러 헌법재판소에 들어가는 조승규 공인노무사, 임자운 변호사, 최지연 변호사(우)
헌법소원을 접수하러 들어가는 임자운 변호사, 최지연 변호사, 조승규 공인노무사
헌법소원을 접수하러 들어가는 임자운 변호사, 최지연 변호사, 조승규 공인노무사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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