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대법원의 상고사건 ‘심리불속행’ 제도의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법조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심리불속행은 재판에서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대법원이 상고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처리하는 건, 상고인의 재판청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최근 유명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상고사건을 기각한 것은, 지난 1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소송이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심리 없이 사건을 종결하며 원심(항소심) 판단을 확정했다.

또한 이번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A기업 등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상고인들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하여 이유 없으므로, 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A기업 등은 지난 2월 21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020헌마271)

청구인들은 “대법원 판결은 청구인들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면서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며 “이는 대법원이 청구인들의 상고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것으로 헌법상 청구인들에게 보장된 재판청구권, 평등권 및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위와 같은 위헌적 판결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국민은 마땅히 헌법소원심판을 통해 이를 다툴 수 있어야 함에도, 헌법재판소법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청구인들은 이유도 모른 채 영원히 사법적 구제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청구인들은 “결국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및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재판을 할 경우 판결이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한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5조 제1항 중 제4조에 관한 부분 역시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 평등권 및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5조(판결의 특례) 제1항은 “제4조 및 민사소송법 제429조 본문에 따른 판결에는 이유를 적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조(심리의 불속행)는 “대법원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더 나아가 심리를 하지 아니하고 판결로 상고를 기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구인들은 “심리불속행 재판을 할 경우 판결이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한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5조 제1항 중 제4조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간 법조계에서는 특례법 조항은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서 그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판결이 과연 적정한 것이었는지, 혹시 상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거나 잘못 판단한 점은 없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상고인의 재판청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조항의 위헌성

청구인들은 “대법원은 아무런 이유기재도 없이 그저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을 기각했다”며 “대법원 판결은 청구인 주장(상고이유)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인데, 청구인들은 자신의 주장이 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지 조차도 모른 채 사건이 종결돼 도저히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또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경우 상고한 당사자로서는, 상고가 적법함에도 불구하고 상고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종국적인 판단이 거부됐을 뿐 아니라, 자신이 주장한 상고이유가 왜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하는지조차도 모른 채 패소 확정판결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결론의 적법 타당성을 알 방법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청구인들은 “나아가 판단유탈과 같은 재심사유가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고, 특례법 조항은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서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판결이 과연 적정한 것이었는지, 혹시 상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거나 잘못 판단한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상고인의 재판청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있어서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특례법 제5조 제1항 중 제4조에 관한 부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청구인들은 “국민주권주의 및 법치주의 헌법 하에서 국민들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판결과 사법절차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대해 반드시 재고(再考)돼야 한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재판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통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최소한도의 불법방법을 보장해 줘야 한다”며 “재판에서 당사자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이유의 제시이고, 이런 이유의 제시야말로 최소한의 불복방법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런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재판의 결론만을 선고하면서 선고와 동시에 재판이 확정됐으니, 결과에 승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 권력관계를 기초로 한 과거의 전제군주제 하에서라면 몰라도 근대민주주의 국가에서서 재판 이념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재판은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해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제도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청구인들은 “재판의 본질은 재판을 청구한 당사자의 주장에 대한 법원의 응답이며, 그 응답이 바로 이유의 기재”라며 “그런데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재판을 할 수 있다면, 그런 재판은 재판의 본질에 반해 부당할 뿐 아니라, 그런 재판을 하는 법원으로서도 자신의 판단이 과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정하게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검토할 계기가 줄어들게 되므로 자의적 판단에 빠질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청구인들은 “결국 이유기재가 없는 재판이 가능하도록 한 특례법 조항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법치주의 원리에 따른 재판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답이 없는 재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재판의 본질에도 반하는 부당한 규정”이라며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있어서 이유를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특례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구인들은 “특례법 조항의 입법취지가 남상고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 정당한 상고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려는, 즉 대법원의 업무 부담을 완화해 중요사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사건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려는데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법원의 업무부담 경감을 통해 정당한 상고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은, 인력이나 조직의 확충, 관할의 조정 등과 같은 제도의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지, 국민주권주의 아래에서 법치주의 이념에 반하거나 재판의 본질에 반하는 판결이유의 기재를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해결할 일은 결코 아니다”고 짚었다.

청구인들은 “아무리 중요하고 소가가 큰 사건이라 해도 그 사건의 성질이나 내용 기타 그 사건이 당사자에게 미치는 효과의 경중을 묻지 않고, 일체의 이유기재가 없는 재판의 길을 열어놓고 있는 특례법 조항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명백히 부당한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 법원의 재판을 제외한 헌법소원심판제도의 위헌성

이와 함께 청구인들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청구사유) 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는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구인들은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의 구속을 받고 헌법에의 기속은 헌법재판을 통해 사법절차적으로 관철된다”며 “헌법의 하위 규범인 헌법재판소법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헌법에 의해 부여된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기능, 헌법을 정점으로 한 국가권력 통제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사법체계에 관한 헌법의 규정에 비춰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또 “가사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재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유를 불문하고 모든 재판을 절대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헌법을 정점으로 한 국가권력의 통제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체계를 갖추고 있는 헌법체제 하에서는 위헌의 소지가 현저하다”고 봤다.

청구인들은 “특히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국민의 절차적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 및 법률을 위헌적으로 해석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나 재판에 대해서까지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면, 이는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헌법재판소의 존재의의와 헌법재판제도의 본질과 기능을 부인하는 것이고, 헌법의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원리와 권력분립의 원칙마저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다시 최종적으로 심사함으로써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관철하고, 침해된 기본권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구인들은 “결론적으로 ‘법원의 재판’만을 헌법적 통제에서 예외로 둘 근거나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며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의 허용 여부 및 범위는 일차적으로 헌법과 헌법재판제도의 존재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청구인들은 “이번 심판대상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있기는 하나, ▲판례가 나온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적 통제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을 실질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가고 있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구성에도 변화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국가권력 통제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통한 ‘헌법가치의 실현’이 시대적 요청이며 ▲헌법의 규정과 법체계에 비춰 볼 때, 심판대상들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재판부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판례변경에 관한 검토와 역사적 결단이 절실한 때”라고 요청했다.

끝으로 “위헌적 법상태를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사법제도와 헌법재판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구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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