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국회에서 ‘삼성보호법’이라 불리는 산업기술보호법 통과에 황당하고 경악했다는 임자운 변호사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장에 관한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배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김종대, 김종훈, 박용진, 박정, 박홍근, 신창현, 심상정, 여영국, 우원식, 윤소하, 이정미, 이학영, 제윤경, 추혜선 국회의원 등 14명은 24일 오전 10시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에서 ‘국민의 건강권 지키기 위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참석해 산업기술보호법의 통과 과정을 설명하면서 개정을 약속했다. 박홍근 의원은 독소조항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한 반성하는 목소리와 개정 의지를 담은 14명의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은 2019년 8월 20일 개정돼 2020년 2월 2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자리에 반올림 등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도 참여했다. 특히 삼성LCD 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뇌종양으로 1급 장애인이 된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가족을 대표해 나와 발언해 주목받았다.

또 ‘반올림’에서 활동하며 산업기술보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 중인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도 참여했다.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단체다.

윤소하 의원, 임자운 변호사, 우원식 의원
윤소하 의원, 임자운 변호사, 우원식 의원

산업기술보호법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는 법률팀을 대표해서 임자운 변호사가 헌법소원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단상에 섰다. 임 변호사는 “작년 8월에 이 법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사실 굉장히 놀랍고 황당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임자운 변호사는 “이렇게 심각한 문제점이 곳곳에 드러나 있고, (삼성) 특정기업이 입법과정에 개입했다는 정황마저 국회 내에서 논의된 여러 문건에 분명하게 제시돼 있는 이 법이 국회에서 아무런 논란 없이 통과됐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다만 “입법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니, 그게 이해될 만한 사정이 없지는 않았다”고 조금은 이해하려 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진행한 반올림 이상수 상임활동가, 윤소하 의원, 우원식 의원, 박홍근 의원
기자회견 사회를 진행한 반올림 이상수 상임활동가, 윤소하 의원, 우원식 의원, 박홍근 의원

실제로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윤소하 의원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알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오신 많은 분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면밀히 검토되지 못 한 채 통과됐다”며 “당시, 일본과의 무역 분쟁 속에서 산업기술 보호를 대폭 강화하기 위한 법으로만 인식했고, 정의당에는 해당 상임위 의원이나 담당 정책위원이 없다보니, 법안의 내용을 살피는데 철저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윤소하 의원은 “늦었지만 바로 잡겠다”며 “헌법적 권리인 국민의 알 권리가, 애매모호한 규정으로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의원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 관련 정보는 반드시 공개하도록 하겠다”며 “비록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걸러내기 위한 방도를 꼭 찾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박홍근 의원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박홍근 의원

또한 14명의 국회의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지난해 8월 국회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국내 산업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운 때였다. 국가핵심기술의 불법 유출을 방지하고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던 210명의 의원 중 206명이 찬성했다. 하지만 그 법안에는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 조항들이 숨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은 “개정 조항들은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국정감사나 직업병 관련 소송, 직업병 피해 유족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일방적으로 했던 주장들과 내용적으로 매우 비슷하다”며 “이러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작성된 문서, 관련 회의록 곳곳에도 삼성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고 인정했다.

윤소하 의원, 박홍근 의원, 우원식 의원
윤소하 의원, 박홍근 의원, 우원식 의원

의원들은 “노동계와 시민사회, 일부 언론들까지 이 법을 ‘삼성보호법’이라 부르는 이유”라며 “이 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법안 심사와 표결 과정에서 국민의 건강권 보호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을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순 없다”고 반성했다.

또 “사업장의 위험성에 관한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알권리가 ‘국가핵심기술과의 관련성’ 한 마디 만으로 가볍게 제압당해서는 안 된다”며 “공익적 목적을 위해 위험성을 규명하고 알리는 행위에 재갈이 채워져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들은 그러면서 “이 법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며 “입법 과정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의무를 소홀히 했던 점을 반성하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 이 법이 올바르게 다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삼성) 특정기업과 관계 부처가 이 법을 악용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발언하는 임자운 변호사
발언하는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는 “이 법안에 찬성한 의원들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고, 다행히도 여기 이 자리에 계신 우원식 의원님, 박홍근 의원님, 윤소하 의원님을 비롯해 열 네 분의 국회의원께서 이 법의 문제점에 공감하고,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문에 뜻을 모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그는 “(이번에) 미처 참여하지 못한 분들께도 계속 요청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저희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려고 한다”며 “이번 산업기술보호법에 문제 삼고 있는 조항은 크게 두 가지”라고 말했다.

첫째는 신설된 제9조의2(국가핵심기술의 정보 비공개) “공공기관 등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

또 하나는 제14조(산업기술의 유출 및 침해행위 금지)의 8호를 언급했다. 이 조항은 “산업기술 관련 소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적법한 경로를 통하여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그 정보를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윤소하 의원, 설명하는 임자운 변호사, 우원식 의원, 박홍근 의원

임자운 변호사는 “산업기술을 포함하고 있는 정보를 적법하게 취득했다 하더라도 제공받은 목적 외로 사용할 경우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새로 신설된 조항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저희는 삼성반도체 공장, LCD공장에서 직업병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그들의 정보공개청구나 산재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대리인들, 그리고 반도체공장 직업환경 문제에 대해 계속 연구해오고 있는 연구자들과 언론인들 그리고 공장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그렇게 13명의 청구인단을 구성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자운 변호사는 “일단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를 모두 비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은, 무엇보다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비판하며 “헌법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하려면 법률로써 제한해야 하고, 그 법률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임 변호사는 “그런데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를 비공개 하도록 만든 이번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일단 너무 모호하다”며 “국가핵심기술 관련성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발언하는 임자운 변호사
발언하는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는 “가깝게는 산자부나 고용노동부가, 멀게는 실질적으로는 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장이 임의적으로 자의적으로 비공개 대상 범위를 정할 것이 뻔하다”면서 “그 범위만큼 국민의 알권리는 심각하게 침해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배제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변호사는 “국가핵심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업장에 관한 모든 정보는 사실상 그에 대한 알권리가 배제되고 말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

임자운 변호사는 “또한 산업기술을 포함하고 있는 정보를 산업기술 관련 소송 등 적법하게 취득했을 경우에 그것을 취득 받은 목적 외로 사용하면 엄중히 처벌할 수 있다고 했고, 심지어 그것을 목적 외에 사용할 우려만 있어도, 정보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했다”며 “이것은 공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어떤 공익적 문제제기에 사전적으로 그것을 탄압하려는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국회의원들도 “종래 이 법은 정보의 취득ㆍ사용에 ‘부정한 방법’, ‘부정한 목적’ 등이 개입된 경우만을 ‘산업기술 유출 행위’로 정해 처벌했다”며 “하지만 이제 사람의 생명ㆍ건강을 보호하겠다는 공익적 목적으로 사업장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으로 까지 처벌받을 수 있게 됐다. 사업주로부터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도 있다. 심지어 사업주는 그러한 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도 정보수사기관에 조사나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이번 산업기술보호법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윤소하 의원, 임자운 변호사, 우원식 의원, 박홍근 의원, 한혜경씨 어머니 김시녀씨
윤소하 의원, 임자운 변호사, 우원식 의원, 박홍근 의원, 한혜경씨 어머니 김시녀씨

임자운 변호사는 “이러한 취지로 저희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것인데, 이 자리에 계신 기자분들도 이 법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 법은 특히 언론인들이 취재활동에 강력한 제약이 될 수 있다”며 “저희는 앞으로도 이 법이 개정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와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와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 어머니 김시녀씨는 “(산업기술보호법은) 반올림의 발목을 잡는 삼성보호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말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하는 김시녀씨
발언하는 김시녀씨

김씨는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혜경이를 위해서, 지금도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잘못된 법 바로잡아야 한다”며 “이것은 정말 산업기술보호법이 아니라 삼성보호법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20대가 안 되면 21대 국회라도 꼭 법을 바꿔내시길 부탁드린다”고 개정을 호소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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