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국회의원들이 일부에서 ‘삼성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주목을 받았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건강권 보호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을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순 없다”며 “입법 과정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의무를 소홀히 했던 점을 반성하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개정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과정을 보면 “곳곳에 삼성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고 삼성을 지목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아니라 반올림의 발목을 잡는 삼성보호법”이라고 주장하며 개정을 호소했다.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단체다.

김종대, 김종훈, 박용진, 박정, 박홍근, 신창현, 심상정, 여영국, 우원식, 윤소하, 이정미, 이학영, 제윤경, 추혜선 국회의원은 24일 오전 10시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에서 ‘국민의 건강권 지키기 위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윤소하 의원, 우원식 의원, 이상수 활동가
윤소하 의원, 우원식 의원, 이상수 활동가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ㆍ박홍근 의원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참석했다. 또 반올림 등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도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우원식ㆍ윤소하 의원이 발언을 했다. 특히 삼성LCD 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뇌종양으로 1급 장애인이 된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가족을 대표해 나왔다. 또 ‘반올림’에서 활동하며 산업기술보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 중인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도 발언을 했다.

발언하는 임자운 변호사
발언하는 임자운 변호사

기자회견 사회를 진행한 ‘반올림’ 이상수 상임활동가는 “지난해 8월 2일 국회에서 산업기술보호법이 통과됐다. 국내 산업기술을 보호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감추어진 독소조항이 있었다”며 “지난 몇 달간 반올림과 시민사회가 (산업기술보호법의) 문제점을 열심히 알려왔고, 여러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줘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20일에 한국산업보건학회를 포함해서 유관 학회 4곳에서 이 법의 문제점을 알리고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이곳에서 했다. 아주 이례적인 일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드러내는 일이었다”며 “그리고 마침내 국회의원들이 이 법에 문제점이 있고,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련해주셨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이상수 활동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이상수 활동가

이상수 활동가는 기자회견 말미에 “지난 2월 20일 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됐다. 이 법이 악용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는 의원들의 말씀에 감사드리고, 시민사회는 헌법소원과 이 법의 문제점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의원님들은 이 법이 꼭 개정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의원님들을 설득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계속 힘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혜경씨 어머니 김시녀씨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앞장서서 만든 법이라지만, 반대한 의원들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해서 정말 기가 막혔다”며 “잘 모르고 찬성했던 의원들께서 이제라도 문제를 인정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니 감사드린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꼭 보여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발언하는 김시녀씨
발언하는 김시녀씨

김시녀씨는 “혜경이가 왜 병에 걸렸는지 알려면 어떤 환경에서 일을 했는지, 혜경이가 썼던 약품을 알아야 하는데, 삼성은 모든 게 영업비밀이라고 혜경이가 산업재해 신청을 할 때도 주지 않았다”며 “산재 신청할 때 그래서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삼성과의 힘겨운 싸움을 전했다.

김씨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 직결된 정보까지 산업기술보호법이라고 막았다. 위험하다고 알리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참”이라고 한숨을 내쉬며 씁쓸해했다.

김시녀씨는 “그리고 어렵싸리 삼성 직업병 문제를 알리고 애써온 이들, 앞으로도 우리는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산업기술보호법이 생겼다고 해서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와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와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

특히 “(산업기술보호법은) 반올림의 발목을 잡는 삼성보호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말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우리 혜경이를 위해서, 지금도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잘못된 법 바로잡아야 한다”며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실 거라 믿고, 20대가 안 되면 21대 국회라도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산업기술보호법이 아니라 삼성보호법이다. 꼭 법을 바꿔내시길 부탁드린다”고 개정을 호소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박홍근 의원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박홍근 의원

이 자리에서 박홍근 의원이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촉구합니다’라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8월 국회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국내 산업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운 때였다. 국가 핵심기술의 불법 유출을 방지하고,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던 210명의 의원 중 206명이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그 법안에는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 조항들이 숨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신설된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는 “공공기관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박홍근 의원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박홍근 의원

의원들은 “‘국가핵심기술과의 관련성’ 하나만으로 모든 정보가 은폐될 수 있도록 했다. 그 ‘관련성’을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도 정하지 않았다”며 “현행 정보공개법의 내용처럼 ‘사람의 생명ㆍ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대한 예외 규정도 없다”고 짚었다.

또 신설된 제14조 8호는 “산업기술 관련 소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적법한 경로를 통하여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ㆍ공개하는 행위”까지 ‘산업기술 유출 행위’로 봤다.

‘적법한 경로’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알기 어렵다. ‘산업기술을 포함한 정보’,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도 너무 포괄적이다. 종래 이 법은 정보의 취득ㆍ사용에 ‘부정한 방법’, ‘부정한 목적’ 등이 개입된 경우만을 ‘산업기술 유출 행위’로 정해 처벌했다.

국회의원들은 “하지만 이제 사람의 생명ㆍ건강을 보호하겠다는 공익적 목적으로 사업장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으로 까지 처벌받을 수 있게 됐다”며 “사업주로부터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도 있다. 심지어 사업주는 그러한 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도 정보수사기관에 조사나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위와 같은 조항들은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국정감사나 직업병 관련 소송, 직업병 피해 유족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일방적으로 했던 주장들과 내용적으로 매우 비슷하다”며 “이러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작성된 문서, 관련 회의록 곳곳에도 삼성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법이 통과되자, 삼성은 진행 중이던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소송에서 ‘보고서 공개 논란이 입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했다”며 “노동계와 시민사회, 일부 언론들까지 이 법을 ‘삼성 보호법’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 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소하 의원, 박홍근 의원, 우원식 의원
윤소하 의원, 박홍근 의원, 우원식 의원

국회의원들은 “이 법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주도해 만들어졌다”며 “하지만 다른 당 소속 국회의원들 또한 법안 심사와 표결 과정에서 국민의 건강권 보호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을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순 없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의원들은 “사업장의 위험성에 관한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알권리가 ‘국가핵심기술과의 관련성’ 한 마디 만으로 가볍게 제압당해서는 안 된다”며 “공익적 목적을 위해 그 위험성을 규명하고 알리는 행위에 재갈이 채워져서도 안 된다. 이 법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회의원들은 “입법 과정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의무를 소홀히 했던 점을 반성하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이 법이 올바르게 다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의원들은 “특정 기업과 관계 부처가 이 법을 악용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겠다”며 “또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입법 절차에 대한 해법 마련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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