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대학을 졸업하고 신생회사에 입사해 수출업무를 담당하다가 업무미숙으로 세관에 수출물품을 신고하지 않아 관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지고, 또 미신고수출품 상당인 2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였던 회사원에게 법원이 선처했다.

특히 변호인은 일부러 수출물품을 숨기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업무미숙으로 수출신고를 하지 않은 것인데, 미신고수출품에 대해 국내 도매가격 상당의 금액을 추징하도록 규정한 관세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제청신청을 했다.

법원은 이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이 구형한 벌금형(벌금 200만원)과 추징금(2억 551만원)에 대해 선고유예 판결로 선처해 달라는 변호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이 사건은 이렇다.

검찰은 의약품 도소매업체인 B회사에서 수출업무에 종사하던 A씨가 2018년 2월 관할 세관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당뇨병 의약품을 필리핀에 수출한 것을 비롯해 2019년 1월까지 총 24회에 걸쳐 신고하지 않고 미화 21만 달러(한화 2억 3388만원) 상당의 의약품을 수출한 혐의로 기소했다.

A씨의 변호인(법무법인 해율 이충윤ㆍ김나현 변호사)에 따르면 B회사는 2016년 10월 설립됐는데, A씨가 2017년 3월 입사할 때 대표, 상무 그리고 A씨 3명만이 있는 매우 작은 신생회사였다.

그래서 회사 업무체계는 물론 인력도 부족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A씨는 당시 28세의 사회초년생이었지만 회사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했다.

A씨는 201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달 뒤 입사한 첫 직장이었다. 그런데 A씨는 업무처리 미숙에 관세법 위반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법정에 서야 했다. 더욱이 2억원이 넘는 추징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A씨의 변호인들은 “수출 시에는 관세포탈의 문제도 없고, B회사의 수출품들은 행정청의 승인이나 허가를 요하지 않는 품목들이었으므로, A씨는 수출신고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단순한 행정신고로 착각하는 실수를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A씨는 고의적으로 국가의 관세행정을 방해하려는 의도에서 수출신고를 누락한 것이 아니라, 사회초년생의 업무처리에 대한 미숙함 때문에 수출신고를 누락한 것”이라며 “피고인의 범행정황 등을 보면 앞으로 굳이 수출신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변호했다.

특히 변호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A씨에게 적용되는 미신고수출행위를 처벌하는 관세법 조항 중 필요적 추징 조항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해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관세법 제269조(밀수출입죄)는 물품을 신고하지 않고 수출한 자는 미신고수출죄로 처벌하고 있다. 그 경우 미신고 수출된 물품은 제282조(몰수ㆍ추징) 2항에 의해 필요적으로 몰수되거나 만약 몰수가 불가능하면 범칙행위 당시의 그 물품의 국내 도매가격에 상당한 금액을 추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들은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일부러 수출물품을 숨기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법령의 부지나 업무의 미숙으로 수출신고를 하지 않은 것뿐인데도, 그런 경우까지 수출업무담당자를 상대로 물품의 도매가격 상당을 필요적으로 추징하는 것은 형벌법규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해 국민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은 2017년 3월부터 일해 이제 3년 정도 일한 직장인인데, 미신고수출로 인해 이득이 전혀 없음에도, 죄질이 가벼운 경우에도 필요적 추징규정을 적용한다면 피고인은 2억이라는 추징금을 부담하게 되고 이는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밝혔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은 수출신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비록 과오가 있었지만, 현재 회사 수출업무를 합법적으로 견실하게 이끌어 ‘2019년 무역의 날 포상’에서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을 받고 300만불탑 수상을 받기도 했다”며 “부디 너그럽게 봐, 피고인과 회사가 더 많은 수출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단독 김춘호 판사는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또 추징금 2억 551만원도 선고유예 판결했다. 결과적으로 변호인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김춘호 판사는 “피고인의 범행이 일부러 수출과 관련한 관세행정상의 제약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업무상 미숙으로 인해 비롯한 것으로 보이는 점, 관할 관청에 의한 통제 없이 해외로부터 물건을 수입하는 경우에 비해 통제 없이 해외로 물건을 수출하는 경우가 국민경제에 미칠 해약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이 회사의 수출업무를 담당했으나, 회사로부터 급료를 받는 것 외에 의약품 무신고 수출로 인한 수익을 취득한 것은 없고, 수출로 인한 수익은 모두 회사로 귀속된 것으로 보이는데도, 위 수출품에 관한 도매가격 상당의 금전을 피고인으로부터 추징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에 대한 벌금형 선고와 추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위헌법률제청신청은 기각했다. 그럼에도 변호인들의 위헌법률신청 주장은 타당하다고 봤다.

김춘호 판사는 “해외 수출업무를 하면서 관련 행정적인 제약이 있는지 여부에 관해 살피지 않고 자신의 업무상의 미숙이나 과실을 내세우는 것은 법령의 부지를 이유로 자신의 책임을 감면받으려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따라서 물품을 수출하는 사람이 설령 수출에 대한 신고를 하도록 규정한 관련 법령을 알지 못해 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관세법상 미신고수출죄의 죄책을 지는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 미신고수출액 상당의 추징을 부과하는 것이 부당하게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김춘호 판사는 “관세법은 미신고수입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관세액의 10배와 물품원가 중 높은 금액의 이하 상당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미신고수출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물품원가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미신고수입행위의 불법성과 미신고수출행위의 불법성에 차이가 있다”며 “따라서 수입신고와 수출신고를 통해 확보하려는 행정목적상의 차이가 있다는 위헌제청신청인의 주장은 일응 타당하다”고 봤다.

그러나 김춘호 판사는 “관세법이 미신고수출의 경우에도 물품가액 상당을 추징하도록 규정한 것은 국가로 하여금 물품의 수출에 대해 간여해 국내경제의 안정을 도로하도록 하는 입법자의 결단이고, 미신고수입과 미신고수출의 불법성의 차이에 따라 그 행위자에게 부과할 형벌의 경중에 차등을 두고 있는 이상, 부가형의 측면에서 두 미신고행위에 대한 차등을 두지 않았다고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결국 이 법률조항 부분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한편, 이충윤 변호사(법무법인 해율)는 “A씨와 같은 실수는 수출업무를 주로 하는 신생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면장 신고 업무 등 기업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업무)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준법경영과 리스크 매니지먼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