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자전거 경음기로 청각기관을 다치게 해 병역의무를 감면받으려 했으나, 실제로 청각기관 ‘신체 손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병역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12년 징병신체검사에서 2급 현역 입영대상자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B씨는 2017년 5월 A씨에게 “1800만원을 주면 병역면제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제의했다.

이후 A씨로부터 1300만원을 받은 B씨는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청성뇌간유발검사(ABR)를 받기 전 자전거 경음기 소리를 귓가에 계속 울려 청각 기능을 일시적으로 저하시킨 다음 검사를 받아 청각장애가 있는 것처럼 해, 검사결과 진단서를 근거로 청각장애인 등록판정을 받고 이를 근거로 병역면제 처분을 받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자전거 경음기를 들고 직접 시범을 보였다.

이후 A씨는 이비인후과 6곳에서 B씨가 알려준 방법대로 시도했으나, 귀만 아프고 청력감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결국 병역의무 감면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청각장애 진단을 받지 못해 병무청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

검찰은 “B씨가 A씨의 병역의무 감면을 목적으로 A씨의 청각기관을 다치게 해 신체를 손상했다”며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대구지방법원은 2019년 7월 B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에 B씨는 “A씨가 자전거 경음기 등을 귀에 울린 행위로 인해 실제로 청각기관이 다치지는 않았으므로 ‘신체를 손상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럼에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대구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이규철 부장판사)는 지난 1월 22일 ‘신체 손상’에 관한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속임수를 사용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병역법 제86조는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도망가거나 행방을 감춘 경우 또는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쓴 사람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여기서 말하는 ‘신체 손상’은 신체의 완전성을 해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상해’의 개념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병역의무의 기피 또는 감면사유에 해당되도록 신체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신체 손상’으로 인한 병역법 제86조 위반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병역의무의 기피 또는 감면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신체의 변화가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하고, 신체를 손상하려 했으나 위와 같은 정도에까지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의 청각기관이 손상됐다는 점에 관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해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양형과 관련해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집행유예 기간 중에 저지른 범죄이고 죄질 또한 나쁜 점, 피고인이 범행을 시인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범행 동기와 경위,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