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6일 법원이 이병진 교수에 대한 보안관찰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에 대해 “법무부의 무리한 보안관찰처분에 제동을 건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센터장 송상교 변호사)에 따르면 이병진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10년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고, 형 집행을 모두 마친 후 2017년 9월 출소했다.

이 교수는 인도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관련 연구를 해온 인도 정치 전문가로, 출소 이후에도 대학교에서 관련 강의를 하며 연구에 매진해 왔고, 소속 대학의 인도 교류 행사에도 참석해왔다.

그리고 수형생활에 대한 소회와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관련 출판기념회 등 행사를 진행해 왔다.

그런데 법무부는 출소한 지 넉 달 뒤인 2017년 12월 이병진 교수에게 보안관찰처분을 내렸다.

법무부는 이 교수가 수형생활 중 주고받았던 서신, 접견기록 등 형 집행 과정에서의 사정에, 출소 이후 인도, 태국 등에 출국했던 사실, 책을 출간하고 관련 행사에 참석한 사실 등을 더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대리인단(오민애, 하주희, 홍자연, 송상교. 서채완 변호사)은 만기 출소한 학자에게 내려진 보안관찰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병진 교수 대리인단의 청구를 인용해 보안관찰처분을 취소했다.

지난 4일 서울고등법원 행정4부(재판장 이승영 부장판사)는 이병진 교수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무부가 2018년 12월 17일 이병진 교수에게 한 보안관찰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따르면 보안관찰법은 보안관찰대상범죄(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포함)로 형을 선고받고 집행된 자 중에서,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관찰이 필요한 자를 보안관찰처분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보안관찰처분을 받으면 3개월에 한 번씩 자신의 생활에 관해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고, 주거지를 옮기거나 해외여행을 할 경우에는 매번 신고를 해야 한다.

민변은 “즉, 자신의 일상을 경찰에 보고하고 통제받게 되는 것인데, 한번 보안관찰처분을 받고 나면 2년마다 갱신이 가능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죄판결을 받고 형을 집행했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대상자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촉진하고자 하는 보안관찰법의 입법 목적에 비춰보더라도, 보안관찰처분이 필요한 대상자인지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여기서 ‘재범의 위험성’은 형 집행 과정과 집행 이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하고, 국가보안법 등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보안관찰법상 각종 신고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위와 같은 판단을 유지하면서,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재범의 위험성’을 보다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보안관찰처분은 보안관찰처분대상자가 이미 실행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제재조치가 아니라 장래에 보안관찰해당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을 미리 예방해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는 한편, 처분 대상자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을 하는 예방조치로서의 행정작용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어 “범정이 중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원고가 보안관찰 해당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형 집행 기간 중에 처분대상자가 보인 행태, 형 집행 이후의 사회적 활동 등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담은 서적을 출간하고 관련 행사에 참석한 사실은 헌법상 보장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활동이고 이를 넘어 체제를 부인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원고가 수형생활 중 국가보안법위반 전력이 있는 자들과 서신을 주고받거나 접견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보안관찰해당범죄(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구체적인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출소 이후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도, 태국을 방문한 것은 오히려 사회구성원으로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던 상황을 반증한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법무부의 보안관찰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민변 대리인단은 “통상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형이 집행된 자에게 보안관찰처분이 있고, 그 후 2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과정에서 갱신처분의 위법성이 다퉈져 왔던 것에 비춰보면, 이번 판결은 출소 이후 부과된 보안관찰처분 자체의 위법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리인단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면 형 집행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낙인찍고, 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보안관찰처분을 집행해왔던 관행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한 것”이라며 “이처럼 법무부의 무리한 보안관찰처분에 제동을 건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그러나 국가보안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안관찰법이 존재하는 현실, 그리고 보안관찰처분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해 위법성을 다투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다시 죄를 범할 우려가 없다는 점을 밝혀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다”라며 “이병진 교수는 보안관찰처분을 받은 후 이번 판결이 선고되기까지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했고, 처분이 취소된다고 하여 그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대리인단은 “이번 판결이 보안관찰제도와 이를 존재하도록 하는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법무부는 상고하지 않고 이번 판결을 수용함으로써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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