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병원에 없던 의사가 자신에게 진찰받은 적이 있는 환자들에 대해 전화로 간호조무사에게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동일하게 처방하라’고 지시해 간호조무사가 처방전을 발행한 경우 의료법이 금지하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의사 A씨는 2013년 2월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 없는 상태에서 전화로 간호조무사에게 환자 3명에게 처방전을 발행하도록 지시했다. 이들 3명은 A씨가 전에 진찰하고 처방전을 발급했던 환자다.

간호조무사는 이와 관련해 수사를 받으면서 “환자들이 내원해 자신이 A에게 전화를 해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동일하게 처방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에 따라 A의 컴퓨터에서 대상 환자를 클릭한 다음 동일하게 체크한 후 처방전을 출력해 환자에게 교부했다”고 진술했다.

의사 A씨는 의료법 위반행위로 2016년 12월 청주지방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고, 그대로 확정됐다.

보건복지부장관은 2017년 1월 A씨에 대해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했다”며 의사면허 자격정지 2개월 10일을 명하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가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인 대전지방법원은 2018년 8월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의 처분사유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패소 판결했다.

A씨는 “당시 환자들과 통화해 상태를 확인한 후 간호조무사에게 처방 내용의 단순입력행위만 지시했고, 이에 간호조무사가 지시대로 처방 내용을 입력한 후 작성된 처방전을 단순히 환자에게 교부한 것으로, 적법한 의료행위”라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대전고법은 2019년 8월 보건복지부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1심 판결은 정당하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 1월 9일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케 하기 위해 대전고법으로 환송한다”며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위 3명은 종전에 원고로부터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발급받았던 환자이므로, 의사인 원고가 간호조무사에게 이들 환자들에 대해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동일하게 처방하라’고 지시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방전 기재내용은 특정됐고, 처방전의 내용은 간호조무사가 아니라 의사인 원고가 결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설령 원고가 환자들과 직접 통화해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간호조무사에게 처방전 작성ㆍ교부를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의료법 위반이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간호조무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했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해 작성ㆍ교부를 지시한 이상, 그러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환자에게 처방전을 작성ㆍ교부하는 행위가 의료법이 금지하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원고가 간호조무사에게 지시한 것은 처방전 작성ㆍ교부를 위한 세부적인 지시가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들어, 원고가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에게 의료인에게만 허용되는 의료행위인 ‘처방’에 필수적인 처방전 작성ㆍ교부행위를 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원심 판단에는 무면허의료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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