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대법원은 청와대 홍보수석 지위에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세월호 구조 관련 해경 비판 보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해 방송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현 국회의원에게 벌금형 1000만원을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방송편성에 간섭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최초의 사건에서 유죄를 확정한 것이다. 1987년 방송법에 방송편성의 자유를 규정하는 조항을 만든 후 33년만에 처음이다.

벌금형 확정 판결로 이정현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고, 오는 4월 실시될 제21대 총선에도 출마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거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 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검찰의 공소사실과 대법원에 따르면 이정현 의원은 2013년 6월부터 2014년 6월경까지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2014년 4월 21일과 4월 30일 ‘KBS 뉴스 9’에서 세월호 사고 관련 해경 비판 뉴스 보도를 하자 김시곤 보도국장인에게 전화해 해경 비판 뉴스 보도에 항의하고, 향후 해경 비판 보도를 중단 내지 대체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방송 편성에 간섭한 혐의를 받았다.

방송법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①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②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제105조(벌칙) 이를 위반해 방송편성에 관해 규제나 간섭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7단독 오연수 판사는 2018년 12월 방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정현 의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오연수 판사는 “홍보수석이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을 접촉해 방송편성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고 한 것으로서 단순한 항의 차원이나 의견 제시를 넘어 방송 편성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이정현 의원이 항소했다.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50형사부(재판장 김병수 부장판사)는 2019년 10월 이정희 의원의 양형부당을 받아들여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홍보수석의 지위를 가지는 피고인이 KBS 보도국장인에게 한 통화 내용은 단순히 방송보도 내용에 대한 비평 또는 의견표명이나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고, 적극적으로 해경에 대한 비판보도를 당분간 중단하거나, 방송내용을 대체 또는 수정하라는 요구로서 방송편성에 관한 간섭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피고인(이정현)에 대한 형을 징역형의 집행유예에서 벌금형으로 감경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실제 방송편성에 영향이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고, 피고인의 범행 동기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등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봤다.

특히 피고인에게 행위의 가벌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전까지는 이 법률조항이 적용된 처벌사례가 없어,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관행 내지 홍보수석으로서의 공보활동 범위 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정현 의원은 “자신의 행위는 언론비판행위로서의 간섭에 해당할 뿐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상고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6일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의 방송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현 국회의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방송법 제4조 제2항에서 정한 ‘방송편성에 관한 간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방송편성에 간섭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최초의 사건에서 원심의 유죄 판단을 수긍했다”고 말했다. 방송법위반죄 일반에 관한 최초의 사례는 아니다.

아울러 “이 판결로써 피고인에게 ‘방송법위반죄 벌금형’이 확정됐으나, 피고인의 국회의원직과 피선거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이정현 국회의원 페이스북
사진=이정현 국회의원 페이스북

한편, 이정현 의원은 대법원 판결 직후 페이스북에 <대법원 판결에 승복>이라는 입장 글을 올렸다.

이정현 의원은 “오늘 방송법 대법 선고가 있었다. 여전히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는커녕 또 다른 상처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송구하고 마음 무겁다.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죄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최종 결정에 조건 없이 승복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이나 정치 무대에서 일절 개인적 입장을 개진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나 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거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해 불필요한 정쟁을 초래할까 우려해서였다”고 말했다.

이정현 의원은 “업무와 관련된 사안이었고, 사실과 어긋난 진실을 밝히자는 것과 재난 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데 몰두하게 해달라는 간청이었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다툴 여지가 없지 않아 3심까지 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방송편성 독립 침해 혐의로 32년 만에 처음 처벌받는 사건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관련법 조항에 모호성이 있다는 점과 그래서 다툼 여지가 있었다는 점과 보완점도 적지 않다”며 “국회에서 관련 법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의원은 “저의 경우가 참고가 되어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 더 견고하게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적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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