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회사가 근로자에게 징계사유가 있어 ‘전보’ 조치를 하더라도, 근로자에게 소명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전보는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2년 7월 버스회사에 입사해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했다. 그런데 A씨는 2018년 5월 29일 버스를 운행하다가 배탈, 설사를 이유로 ‘중도귀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동시에 개인사정으로 5월 30일~31일 결근계를 제출했다. 결근한 날에는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회사는 2018년 6월 A씨에게 조퇴 및 결근이 무단조퇴, 무단결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다른 노선에서 근무할 것을 명령했다. 근로계약 조건에 신체 건강한 자(중도귀가, 무단결근 일체 불허)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A씨는 2018년 7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구제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는 “전보는 회사의 업무상 필요성에 따른 것으로서 그로 인해 A씨가 겪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이 근로자가 통상 감수해야 할 정도를 현저하게 벗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절차상 하자도 없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으나, 중노위는 2019년 1월 초심판정과 같은 이유로 재심신청을 기각하는 재심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A씨는 “전보는 무단조퇴, 무단결근했다는 점을 이유로 이루어진 징계에 해당함에도 단체협약에서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최근 버스기사 A씨가 버스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전보구제재심판정취소 청구소송에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먼저 “근로자에 대한 전보는 근로자가 제공해야 할 근로의 종류와 내용 또는 장소 등에 변경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므로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는 상당한 재량을 인정해야 한다”며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이 사건 전보는 원고의 무단조퇴 및 결근을 이유로 이루어진 사실, 회사는 2018년 6월 원고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보를 통보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었다.

또 회사가 작성해 시행한 취업규칙에서 무단조퇴 및 결근을 징계사유로 정한 사실, 회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전직을 감봉과 동등한 수준의 징계처분으로 정하고, 모든 징계처분은 해당 근로자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전보는 취업규칙에서 정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원고의 행동을 이유로 단체협약에서 징계처분의 하나로 정한 전직을 명령하기에 이른 것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원고에 대한 징계처분에 해당한다”며 “회사는 전보에 앞서 취업규칙 및 단체협약이 정한 대로 원고에게 소명할 기회를 부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전보를 업무상 필요성에 따른 것으로 보더라도 원고를 다른 버스 노선으로 전보할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회사는 원고가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무단조퇴 및 결근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의 하나인 전직에 해당하는 전보를 명령하기에 이르렀으므로 회사로서는 근로자의 지위를 절차적으로 보장하려는 단체협약의 취지에 따라 원고에게도 전보에 대한 소명의 기회를 주었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고의 소명 없이 이루어진 전보에는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재심판정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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