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14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13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폐기를 촉구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센터장 송상교 변호사)는 의견서를 내고 “인권침해의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과 없이 화해만을 위한 법률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으로 화해를 강요하는 것으로, 이는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는 새로운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며 “가해자들의 책임을 면제하고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것은 한국 입법부가 할 일이 결코 아니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국회는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을 폐기하고,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이라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외교적 보호권한을 행사해 일본에 진상규명과 피해구제를 요구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지속적인 진상규명과 추가 보상 및 추념사업 등을 진행해 피해자들의 권리가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헌법상의 권한과 책임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앞서 2019년 12월 18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13명의 국회의원은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 등에 대해 발의해 국회에 제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을 발의하면서 한국 정부의 진상조사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금 지급을 내용으로 한 강제동원조사법 개정안을 상호 연동해 발의했다.

사진=국회 홈페이지
사진=국회 홈페이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담당 강제동원사건 법률대리인단)는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은 일제 식민지지배와 강제동원에 대한 가해자의 책임인정이나 사죄 없이 한일관계 회복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며 “이는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도 반하며 강제동원을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규정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의 주요 내용은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민간 영역에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을 설립하고 한일 양국 기업 및 국민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재원으로 국제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법안에서 ▲위자료의 의미를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국외강제동원 되었던 기간 중에 있었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정신적 피해에 상응하는 금전’으로 규정하면서도 ▲위자료의 지급을 위해 한일 양국 기업과 한일 양국의 국적을 가진 개인의 ‘기부금’으로 기억화해미래기금을 조성하되 기부금의 출연을 강요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위 기금에서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면 대법원 판결로 집행력이 생긴 피해자들(원고)에 대해서는 제3자 임의변제로 봐 피해자의 승낙을 받아 재단이 채권자대위권을 취득하고, 소송 진행 중에 있는 피해자의 경우에는 소를 취하해야 하며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의 경우에는 재판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 또한 재단의 운영경비는 한국정부의 출연금이나 보조금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민변은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은 강제동원이 ‘인권문제’임을 망각한 법안”이라고 혹평했다.

민변은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된 바와 같이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관한 것”이라며 “즉, 강제동원은 식민지시기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이 수십만 조선의 젊은이들을 끌고 가 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않은 채 혹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한 전쟁범죄”이라고 상기시켰다.

민변은 “그 불법행위를 ‘해결’하겠다는 법률이라면 최소한 가해자의 책임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고,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며 “위 법안이 ‘강제동원’이라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법안이라면, 적어도 강제동원에 관한 진상규명, 가해자의 가해사실 인정과 사죄ㆍ배상, 재발방지 등 국제적인 인권 규범의 기본 원칙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의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약칭 ‘유엔 피해자 권리 기본 원칙)에서도 피해자는 정의에 대한 권리, 배상에 대한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보고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로서 가해사실의 인정과 사죄, 배상 및 재발방지 등을 기본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합의에 대해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책임, 일본군 관여의 강제성이나 불법성을 명시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면서 그 책임을 부인한다면 사죄의 표시는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민변은 “그러나 위 법안은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 여부를 불문하고 한일 양국의 기업과 국민의 자발성을 전제로 한 기부금으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 주고 있어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측의 가해사실 인정과 사죄도 없이 성격도 불분명한 재단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금전을 지급하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구제로 볼 수 없고 이러한 방식으로는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화해모델이나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화해 모델과 비교해 보더라도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은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민변은 봤다.

민변은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은 피해자 측이 나서서 재단을 만들고 기금을 조성하면서 가해자 측에 자발적인 참여를 권유하는 구조이고 일본 측이 강제동원의 사실관계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의 화해 모델이나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화해모델과 그 내용이나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또한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법안은 한국정부가 운영하는 재단을 통해 한일양국의 기업과 국민의 기부금으로 섞어 일본 기업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으로, 일본측의 책임을 세탁해주는 세탁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한국의 대법원뿐만 아니라 일본의 사법부도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데, 한국 국회가 패소기업이 내는 돈 마저 자발적 기부금이라고 법률에서 정한다면 이는 한국과 일본 사법부의 판결에도 반한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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