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國旗)를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105조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정이 나왔다.

재판관 4명이 합헌 의견을 냈고,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5명으로 많았으나,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 6명에는 이르지 못해 결국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청구인 A씨는 2015년 4월 집회 참석 중 인근에 정차하고 있던 경찰버스의 유리창 사이에 끼워져 있던 종이 태극기를 빼내어, 집회 통제 중인 경찰관을 향해 치켜들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태웠다.

검사는 A씨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태극기를 불태운 것으로 보고 형법 제105조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제1심 법원은 “A씨에게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해 현재 항소심 공판절차가 진행 중이다.

A씨는 1심 공판절차 계속 중 “형법 제105조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6년 3월 이에 대한 위헌 확인을 구하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형법 제105조(국기, 국장의 모독)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105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고 7일 밝혔다.

명확성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는 경우에 성립한다. ‘대한민국을 모욕’한다는 것은, ‘국가공동체인 대한민국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만한 추상적 또는 구체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심판대상조항이 다소 광범위한 개념을 사용했더라도,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 일반적 해석방법에 따라 보호법익과 금지 행위,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는 이상,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에 대해 “국기는 국가의 역사, 국민성, 이상을 반영하고 헌법적 질서와 가치, 국가정체성을 표상하며,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가지는 독립성과 자주성을 상징하고, 국제회의 등에서 참가자의 국적을 표시하고 소속감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4명의 재판관들은 그러면서 “만약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 국기 훼손행위를 금지ㆍ벌하지 않는다면, 국기가 상징하는 국가의 권위와 체면이 훼손되고, 국민의 국기에 대한 존중의 감정이 손상될 것”이라며 “국가의 권위와 체면을 지키고, 국민의 존중의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기훼손행위를 형벌로 제재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단순히 경범죄로 취급하거나 형벌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제재해서는 입법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을 요구함으로써 범죄 성립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며 “형법 제정 이후 국기모독죄로 기소ㆍ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 없이 우발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정치적 의사표현의 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국기훼손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반면, 5명의 재판관들은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일부 위헌의견을 낸 이영진ㆍ문형배 재판관은 “국가를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ㆍ벌함으로써 국기가 상징하는 국가의 권위와 체면이 훼손되고 국민이 국기에 대해 가지는 존중의 감정이 손상되는 것은 막아야 하겠지만,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처벌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재판관은 “국가기관이나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공용에 공하는 국기’는 국가 상징물로서 특별히 중요한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훼손은 처벌하되, 그 밖의 국기에 대한 훼손은 처벌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석태ㆍ김기영ㆍ이미선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세 재판관은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국기를 훼손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며 “국기를 훼손하는 행위는 어떠한 정치적인 사상이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이러한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하는 것은 단순히 국기의 손상ㆍ제거ㆍ오욕이라는 표현의 방법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내용을 규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표현의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중대한 공익의 실현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허용된다”고 덧붙였다.

세 재판관은 “‘모욕’ 개념이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범위가 광범위해 다소 경멸적인 표현이 수반된 ‘비판’도 ‘모욕’으로 평가될 수 있고, 특정 집권세력에 대한 모욕을 의도한 것이 ‘국가’에 대한 모욕으로 평가될 여지도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국민의 국가에 대한 정치적 의사 표현은 국가의 의사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그에 대한 규제는 최소화될 필요가 있다”며 “국민이 국가 등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경멸적인 표현방법을 사용해 국가를 모욕했다고 하여 이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밝혔다.

세 재판관은 “국가상징물로서 특별히 중요한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공용에 제공되는 국기에 대해서는 훼손행위를 처벌할 필요가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형법상 손괴죄 등을 통해 처벌할 수 있으므로, 필요한 처벌의 공백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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