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수영장에서 하나의 수영조에 어린이용 구역과 성인용 구역을 같이 설치해 어린이가 성인용 구역에서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수영장 관리자는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결은 수영장 관리자에게 어린이 사고 방지를 위한 위험방지조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A군(사고 당시 만 6세)은 2013년 7월 엄마, 누나 등과 함께 서울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야외 수영장에 놀러갔다. 이 수영장은 하나의 수영장에 수심 1.2m의 성인용 구역과 수심 0.8m의 어린이용 구역을 같이 두었고, 두 구역은 코스로프(course rope)로만 구분돼 있었다.

왼쪽이 성인. 로프로만 구분한 수영장
왼쪽이 성인. 로프로만 구분한 수영장

수영조의 벽면에는 수심 표시는 돼 있지 않았다. 키가 113cm이었던 A군은 수영조의 성인용 구역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응급조치와 함께 병원에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익수로 인한 뇌손상으로 사지마비, 양안 실명 등 중상해를 입었다.

이에 A군의 가족이 사고발생 책임의 원인을 물어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3억 3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안전관리의무 위반을 위한 불법행위책임과 수영장의 설치 보존상 하자로 인한 공작물책임 등을 묻는 것이었다.

1심인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15년 7월 A군 가족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며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2017년 2월 A군 가족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어린이용 풀(80cm)과 성인용 풀(120cm)의 높이 차이는 40cm 정도로 아주 큰 차이는 아닌 점, 어린이용 구역과 성인용 구역을 반드시 물리적으로 구분해 설치해야 한다는 관련 규정은 없으므로, 수영조를 구분해 설치하지 않은 것을 수영장의 설치 보존상의 하자라고 볼 수 없고, 수영조의 벽면에 수심 표시를 하지 않은 것과 사고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A군 가족이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성동구도시관리공단에 민법 제758조에 1항에 따른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한 공작물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다.

대법원의 판단은 하급심과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1월 28일 수영장에서 익수 사고를 당한 어린이와 가족이 수영장을 관리하는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민법 제758조 제1항은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있다”며 “이 규정의 입법취지는 공작물의 관리자는 위험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다해야 하고, 만일에 위험이 현실화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하다는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한 사고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만이 손해발생의 원인이 되는 경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가 사고의 공동원인 중 하나가 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체육시설의 설치ㆍ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서 정한 시설 기준의 내용 및 체계를 살펴보더라도, 운동시설인 수영장과 편의시설인 물 미끄럼대, 유아 및 어린이용 수영조는 구분해 설치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어린이는 사리분별력이나 주의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쉬우므로, 성인용 수영조와 어린이용 수영조를 물리적으로 분리함으로써 성인용 수영조에 어린이 혼자 들어가 물에 빠지는 사고 위험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또 “어린이가 물에 빠지는 사고로 발생하게 되는 피해의 정도와 수영장 관리자가 사고방지를 위해 부담하게 되는 비용을 비교하면 전자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수영장 수심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 역시 관련 법령을 위반한 것이고, 사고는 결국 원고의 키(113cm)를 넘는 성인용 구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사고가 하자와 관련 없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수심표시와 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국, 이 수영장에는 성인용 수영조와 어린이용 수영조를 분리하지 않고, 수심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하자가 있고, 이러한 하자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이상, 피고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보호감독의무를 부담하는 부모의 주의의무 위반이 사고의 발생에 공동원인이 되었더라도, 피고에게 수영장의 설치ㆍ보존상의 하자로 인한 책임을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성인용 수영조와 어린이용 수영조를 분리하지 않고 동일한 수영조에 설치한 채 코스로프(course rope)로만 구분해 놓은 것은 ‘그 자체로’ 설치ㆍ보존상의 하자가 된다고 본 것”이라며 “이 판결은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법경제학에서 논의되는 핸드 공식을 실제로 재판에 적용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 따르면, 앞으로 하나의 수영조에 어린이용 구역과 성인용 구역을 같이 설치해 어린이가 성인용 구역에서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수영장 관리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사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판결은 수영장 관리자에게 어린이 사고 방지를 위한 위험방지조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주문하고 그에 필요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안전한 나라’ 나아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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