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변호사시험 응시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일반적 행동자유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인격권 침해로 판단하고, 시험운영기관인 법무부 장관에게 시험운영방식의 개선 권고를 의결했다.

변호사시험(변시)에서는 화장실 이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시험시간이 2시간을 초과하는 민사법 기록형, 사례형 시험의 경우에만 시험 시작 후 2시간이 경과하면 시험관리관의 지시에 따라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

2019년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한 수험생 A씨는 “시험 중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험운영방식은 과도한 제한으로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법무부는 “변호사시험은 부정행위 방지, 시험의 공정성 및 집행의 안정성과 일반응시자들이 방해받지 않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 시험 시작 후 2시간 이내에서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며 “특히, 변호사시험 중 수험생들의 입장에서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소음으로부터 다른 수험생들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시험 중 화장실 이용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이는 변호사시험을 보는 수험생들 다수의 의견과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또한 “임산부, 장애인, 과민성 대장 방광증후군 등과 같이 화장실 이용이 불가피한 응시자는 원서접수 시 사유를 소명하면 따로 고사장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으며, 이 경우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지 않는다”며 “변호사시험에서 화장실 이용 제한에 최소한의 예외를 두고 있으며, 수험생의 입장에서도 수인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변호사시험은 4일간(1일 휴식) 총 10과목이 진행되고, 시험시간은 1시간 10분에서 길게는 3시간 30분까지 과목마다 차이가 있다. 수험생은 각 과목 시험시작 35분 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고, 시험 시작 20분부터는 이동이 금지된다.

시험시간 중에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며, 시험시간이 2시간을 초과하는 민사법 기록형(3시간), 사례형(3시간 30분) 시험의 경우 시험시작 후 2시간이 경과하면 시험관리관의 지시에 따라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판단했다.

인권위는 “용변문제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용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을 가는 행위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보호대상이 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인격권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시험 중 수험생의 화장실 이용을 허용할 경우 부정행위나 다른 수험생들의 집중력 보호와 관련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나 토익시험 등 시험 방식과 응시자의 성격이 상이한 다수의 시험에서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상의 우려들이 현실에서 중대한 사회문제로 제기된 적은 없다”고 짚었다.

또한, “인권위가 이미 결정한 공무원시험 등에서 화장실 이용의 제한을 완화 또는 폐지한 뒤에 이로 인한 시험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는 시험 중 수험생의 화장실 이용 허용 여부가 부정행위 방지나 다른 수험생의 보호 등에 핵심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변호사시험은 시험의 유형과 난이도의 특성 상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더라도 부정행위를 통해 이익을 볼 가능성이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무부는 변호사시험은 다른 시험에 비해 수험생의 집중력을 보호할 필요가 더 크다고 주장하지만, 논술형 시험을 포함한 미국변호사시험(Bar Exam)에서 화장실 이용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는 점, 시험 횟수 및 수험 분위기가 비교적 유사한 공무원시험에서도 시험시작 30분 이후부터 시험종료 20분 전까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완화하고 그 대상을 확대하고 있는 점에서 변호사시험만을 특별히 달리 취급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물론, 응시자들이 시험에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불가피하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헌법상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비록 극히 소수가 이용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누구나 그 대상자로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험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시험방법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짚었다.

인권위는 “변호사시험은 원서접수 시 사유를 소명한 응시자에게는 화장실 사용 후 시험을 계속 치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변호사시험의 경우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주어진 시험시간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 응시자에게 화장실 이용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본인의 시험시간을 희생하면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험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험 도중 예상치 못하게 용변문제가 발생한 수험생에게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억제해야 하거나 해당과목 시험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봤다.

인권위는 “변호사시험의 경쟁 정도와 시험 난이도를 고려할 때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해당 과목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상 시험 전체를 포기하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특히 변호사시험은 다른 시험과 달리 5년 내에 5회라는 응시기간 및 응시횟수의 제한까지 있어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해 온 응시자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선택지”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그 결과 변호사시험 수험생은 시험시간 중 긴급상황 발생 시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억제하거나 시험을 포기해야 하는 매우 극단적인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됨으로써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막대한 정신적, 인격적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시험의 공정성과 다른 수험생들의 보호라는 이유로 수험생들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용은 막연하고 제한적이라고 보이는 반면, 화장실 이용과 관련한 상황이 발생한 수험 당사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피해는 중대하며 구체적이기 때문에 현행 변호사시험에서 시험시간이 2시간 이내인 경우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호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에 법무부장관에게, 변호사시험 시 화장실 이용 제한으로 수험생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현행 시험운영방식을 개선할 것을 권고한다”고 제시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술자격시험 중 응시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것과 관련한 진정에 대해서도 인권침해라고 판단해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게 시험운영방식의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로리더 신혜정 기자 shin@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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