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시청자가 제작해 전문채널에서 방송한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 재평가하는 내용을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는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13년 1월 방송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그해 8월 제재를 가한 지 무려 6년이 넘어서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재단법인 시민방송(RTV)은 2013년 1월 자신이 운영하는 시청자제작 영상물 방송 전문 텔레비전 채널(‘퍼블릭 엑세스’ 전문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시청자(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 프로그램과 ‘백년전쟁 - 프레이저 보고서(제1부)’ 프로그램을 수십 회에 걸쳐 방송했다.

‘백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 방송은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13개 정도의 에피소드를 삽입해 이를 토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백년전쟁 - 프레이저 보고서(제1부)’ 방송은 미국에서 작성된 프레이저 보고서의 내용에 기초해 한국의 경제발전이 주로 미국의 동아시아 반공정책에 의해 수출주도형으로 전환됨에 따른 결과라는 견해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는 2013년 8월 시민방송에게 “이들 프로그램이 방송심의규정 중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사자 명예존중에 관한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당 방송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를 명하고, 제재조치를 받은 사실에 대한 고지방송을 명했다.

이에 시민방송(RTV)은 각 제재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시민방송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시민방송이 항소했는데, 서울고등법원은 2015년 시민방송의 항소를 기각하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처분은 적법하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각 방송은 구성, 내용, 편집 등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관점이나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편집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했고, 이승만ㆍ박정희 대통령을 희화화함으로써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각 방송은 특정 자료만을 근거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전직 대통령들을 폄하했고, 그 정도가 상당히 중하다”면서 “퍼블릭 액세스 채널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채널사용사업자로서 원고의 방송법상 공정성과 객관성 준수에 대한 책임이 경감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제재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그로 인해 침해받는 원고의 언론의 자유, 퍼블릭 액세스 및 국민의 알권리의 침해가 훨씬 커서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시민방송이 상고했고, 대법원은 주요사건으로 봐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관들의 의견도 7 대 6으로 팽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1일 시민방송(RTV)가 백년전쟁 상송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

전원합의체는 “방송심의제도의 근거법령과 취지, 각 방송의 매체별, 프로그램별 특성,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 등에 비추어 ‘각 방송이 방송의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 유지의무와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다수의견에 김명수 대법원장, 김선수ㆍ김상환ㆍ김재형ㆍ노정희ㆍ민유숙ㆍ박정화 대법관 등 7명이 있었다.

대법관 다수의견은 “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구체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해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을 심사한다면, 방송법의 취지 및 공정한 여론의 장을 형성하고자 하는 방송의 역할을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따라서 방송내용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심의할 때에는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다수의견은 “시청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은 방송내용의 진실성과 신뢰도에 대한 기대의 정도나 사회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방송프로그램과 다를 수밖에 없다”며 “시청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의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 심사를 할 때는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에 비해 그 심사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어 “교양 프로그램이나 오락 프로그램이 방송의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 유지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심사할 때는 그 특성을 고려해 보도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각 방송은 시청자의 자유로운 접근이 제한된 유료의 비지상파 방송매체 및 퍼블릭 액세스 전문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고, 시청자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므로, 무상으로 접근 가능한 지상파방송이나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 또는 보도 프로그램과 달리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심의규정상 방송의 ‘객관성’이란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증명 가능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사실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각 방송은 제작자가 기획에서 방송에 이르기까지 사실 확인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투입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사료에 기초하고 있으며, 각 방송의 내용과 구성, 인터뷰 대상자의 지위나 경력 등 각 방송이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기존에 입론된 역사적 사실과 그 전제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 정도에 그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또 “‘공정성’이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전달함에 있어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며 “제작자의 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진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모두 반영한 역사 다큐멘터리만 방송해야 한다면, 주류적 통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는 방송에서 다루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 역사적 관점에 대한 단순한 나열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방송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수의견은 “심의규정상 방송의 ‘균형성’이란 관련 당사자나 방송 대상의 사회적 영향력, 사안의 속성, 프로그램의 성격 등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평하게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며 “역사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방송의 균형성을 선거방송이나 보도방송과 같이 한 프로그램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나 관점에 대해 각각 동등한 정도의 기회를 기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방송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송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사자 명예존중과 관련해 다수의견은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 후대에 의한 평가가 따르고, 이러한 평가는 각자의 가치관이나 역사관에 따라 다양하게 때로는 상반되게 나타난다”며 “상반되는 평가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일방의 타방에 대한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며 논쟁을 거쳐 역사에 대한 주류적 평가가 자리 잡고, 다시 주류적 평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재평가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주장하고 이를 반박하는 논쟁이 이어지는데, 이와 같은 역사적인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관련 법령의 내용과 체계 등을 종합해 보면, 방송내용 중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공인에 대해 명예가 훼손되는 사실이 적시됐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또한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으로서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방송법 제재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방송내용은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등의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서,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나, 방송 전체의 내용과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관 다수의견은 “각 방송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관련자 및 전문가와의 인터뷰 등을 기초로 했다는 점에서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고 평단했다.

◆ 조희대ㆍ권순일ㆍ박상옥ㆍ이기택ㆍ안철상ㆍ이동원 대법관 반대의견

반면 조희대ㆍ권순일ㆍ박상옥ㆍ이기택ㆍ안철상ㆍ이동원 대법관 등 6명은 “각 방송은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 유지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반대 대법관들은 “각 방송은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을 취사선택해 방송내용 자체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 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전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ㆍ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또 “각 방송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과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위해 제작자가 선별한 자료만을 근거로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료의 전체 맥락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일부 표현만을 발췌ㆍ인용해 단정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방송했다”며 “더군다나 원고는 객관성이 의심되는 자료들 중에서도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게 유리한 부분은 누락하고 편집의도에 부합하는 일부분만을 발췌해 사용했다”고 말했다.

또 “각 방송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방영한 것이 아니라 추측이나 과장, 단정적 표현 및 편집기술을 통해 사실관계와 평가를 자신의 관점으로 왜곡시켜 역사적 인물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했다”고 판단했다.

반대 대법관들은 “각 방송에는 특정 인물에 대한 날선 비판과 조롱만이 있을 뿐이지 공정성ㆍ균형성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다”며 “각 방송은 모욕적 표현으로 사자를 조롱하는 내용으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사자 명예존중을 규정한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반대 대법관들은 “각 방송에서 피고가 제재사유로 삼은 사실이나 논평은 역사적 인물인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명예를 훼손시키는 내용으로서, 그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각 방송은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부분만을 발췌해 마치 그 부분만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방영함으로써 방송내용이 공익과는 무관하게 주로 이승만, 박정희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려는 악의적인 목적이나 동기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결론적으로 “각 제재처분의 처분사유는 각 방송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을 갖추지 못했고, 사자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라며 거듭 언급했다.

반대 대법관들은 “각 방송을 한 번이라도 시청했다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개인의 사생활 등 역사적 평가와 무관한 내용이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있고, 정치적ㆍ정책적 과오를 지적하는 부분 역시 조롱과 모욕적인 표현과 화면구성을 통해 희화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따라서 각 방송은 방송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을 갖추지 못했고,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준수하지도 못해 각 제재처분이 적법하다는 원심판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반대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을 따를 경우, 선별되고 편향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특정 역사적 인물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내용의 방송을 하더라도 ‘역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취하기만 하면 방송법에 따라 아무런 제재조치를 할 수 없게 되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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