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의뢰인이 소송위임계약에서 약정한 변호사보수액은, 변호사 보수가 부당하게 과다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감액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재확인됐다.

OOOO공제회 회원들은, 임원의 500억원 상당의 횡령 및 그로 인한 단체의 파산 등으로 손해를 입은 것과 관련해, 변호사를 선임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관리ㆍ감독상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청구를 하기로 했다.

이에 공제회 회원들로부터 위임을 받은 A씨 등은 B변호사와 사이에 위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관해 소송위임계약을 체결하면서, 변호사 보수를 착수보수금 3500만원과 부가가치세 350만원 합계 3850만원으로 정했고, 그중 20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소송에서 패하자 A씨 등은 변호사에게 지급하기로 한 1500만원을 줄 수 없다며, 먼저 지급한 2000만원으로 하자고 요구했다. 이에 B변호사는 소송위임계약에서 약정한 변호사 보수 중 미지급금의 지급을 구하는 약정금 소송을 냈다.

A씨는 “변호사 보수가 부당하게 과다해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2000만원 미만으로 감액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원고(변호사)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변호사 보수가 부당하게 과다해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변호사 보수를 2000만원으로 감액한 다음, 감액된 변호사 보수 채권이 모두 변제돼 소멸했다고 판단해, 원고의 변호사 보수 청구를 배척했다.

이에 변호사가 항소했으나, 항소심도 변호사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사진=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사진=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신 대법관)는 5월 17일 B변호사가 A씨 등을 상대로 낸 약정금청구소송(2016다35833)에서 원심판결 중 원고(변호사) 패소의 변호사 보수 청구구분을 파기 환송하며,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관 11명의 다수의견은 “신의성실의 원칙 및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호사 보수 청구의 제한할 수 있으나, 이 사건 소송위임계약에서 정한 변호사 보수는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파기환송했다.

종래 대법원 판례는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위임사무를 완료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약정 보수액 전부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의뢰인과의 평소 관계, 사건 수임 경위, 사건처리 경과와 난이도, 노력의 정도, 소송물 가액, 의뢰인이 승소로 인해 얻게 된 구체적 이익, 그 밖에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고려해, 약정 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보수액만을 청구할 수 있다.

재판부는 “사법(私法)의 기본원리인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도 아무런 제한 없이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급부의 교환에 그치는 매매와 같은 계약과 달리,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상대방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위임이나 신탁과 같은 계약에서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나아가 영리추구가 목적인 상인의 영업활동과 달리,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변호사 직무의 특성상 소송위임계약에서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은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며 “변호사 보수가 반드시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적정 수준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또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 규정의 흠결을 보충해 구체적 타당성을 도출하는 기능을 할 수 있고, 과도한 변호사 보수 청구를 적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 보수에 관한 약정이 없는 경우 변호사가 위임인을 상대로 적정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과도 균형이 맞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법원이 적정한 결론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대어 당사자 사이의 계약 내용을 함부로 수정ㆍ변경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은 변호사 보수 청구 제한의 법리를 발전시켜 오면서, 이러한 법리가 계약자유의 원칙을 제한ㆍ수정하는 예외적인 것이므로 그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고, 보수 청구를 제한하는 경우 그에 관한 합리적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며 “이러한 판례를 통해 변호사 보수에 대해 신의칙을 적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우려는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그러면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원심이 제시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변호사 보수가 부당하게 과다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재판부는 “이 사건 소송위임계약에서 약정한 착수보수금은 1인당 10만원이다. 원고는 위 금액이 피고 측이 관련 형사고소사건의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지급한 금액과 같고 피고 측이 먼저 원고에게 제의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피고들은 원심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고 제기 소송은 소외인의 500억원이 넘는 횡령과 그로 인한 OOOO공제회의 파산으로 공제회에 퇴직금 등을 불입했던 피고들을 포함한 회원들이 손해를 입은 것과 관련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공제회 등에 대한 관리ㆍ감독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라며 “원고 제기 소송의 소가가 3억 6700만원인 것은 원고 1인당 청구금액이 100만원이었기 때문인데, 1인당 청구금액 100만원이 부당히 고액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10%인 10만원을 1인당 착수보수금으로 정한 것도 고액의 변호사 보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 제기 소송은 검찰과 금융감독기관(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직무유기 등을 다투는 것으로 쟁점이 단순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고, 소 제기 후 판결선고 시까지 소송 기간도 1년 5개월 이상 걸렸다”며 “원고는 소송 과정에서 준비서면을 7번 제출하고, 서증을 5번 제출했으며, 9번의 사실조회신청을 하는 등 소송수행을 했다”고 사건의 난이도와 변호사의 역할수행을 짚었다.

재판부는 “원고 제기 소송에서 원고는 결과적으로 패소판결을 받았으나, 다른 변호사들도 동일한 내용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판결을 받기는 마찬가지여서, 특별히 원고의 소송수행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며 “또한 착수보수금은 소송결과와는 무관하게 소송위임사무를 완료한 경우 전부 청구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여러 가지 사정도 살펴본 재판부는 “결국 원심의 판단에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형평의 관념에 기초한 변호사 보수 청구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심판결 중 착수보수금과 부가가치세에 관한 약정금 청구 부분에 관한 상고는 이유 있으므로 이 부분을 파기해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고, 나머지 상고는 이유 없어 모두 기각해 판결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는 김신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의 별개의견이 있었다.

두 대법관들은 “법률에서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한 사적 자치 및 계약자유의 원칙상 계약 내용대로 그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 법률행위의 무효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민법에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형평의 관념은 당사자가 계약으로 정한 변호사 보수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따라서 신의성실의 원칙 및 형평의 관념에 의해 변호사 보수를 감액한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판결의 의의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종래 대법원 판례는 당사자가 약정한 변호사 보수가 부당하게 과다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변호사 보수의 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며 “이 판결은 위 법리의 타당성을 재확인하는 것으로서, 사적 자치 및 계약자유의 원칙도 아무런 제한 없이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 및 형평의 관념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다만 법원이 적정한 결론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신의성실의 원칙 및 형평의 관념에 기대어 당사자 사이의 계약 내용을 함부로 수정ㆍ변경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해야 하고, 계약자유의 원칙을 제한ㆍ수정하는 예외적인 것이므로 그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 또한 명백히 밝힘으로써,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우려에 대한 해소 기준도 제시했다”고 전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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