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기사의 신고를 믿고 음주운전을 전제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한 것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취소돼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주차문제로 고객과 다툰 대리운전기사가 나쁜 감정으로 허위신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월 22일 새벽 1시까지 사무실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승용차로 귀가하기 위해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해 대리운전 기사를 요청했다.

대리운전기사가 A씨를 태우고 승용차를 운전해 A씨의 아파트에 도착했는데, 주차문제로 A씨와 대리기사 사이에 말다툼이 발생했고, 대리기사가 대화 내용 일부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녹음했다.

대리운전기사가 승용차를 최종적으로 주차하고 하차한 뒤, 휴대전화 카메라로 번호판등과 차폭등이 켜져 있던 A씨의 승용차 뒷부분을 촬영했다.

이후 대리운전기사는 2회에 걸쳐 112에 A씨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A씨에 대한 음주측정을 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059%로 측정됐다.

결국 A씨는 이날 새벽 2시 17분경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를 약 1m 운전했다는 범죄사실로 지난 3월 29일 검찰로부터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이에 A씨는 “기소유예처분이 자신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A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검찰이 A씨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며 인용 결정(2019헌마674)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헌재는 “청구인(A)의 음주운전 사실을 입증할 증거로는 대리운전기사의 진술이 유일한데 그가 제출한 녹음파일에 따르면, 대리운전기사가 청구인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등 청구인에 대한 나쁜 감정으로 허위 신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대리운전기사가 승용차의 시동을 켜 둔 채 하차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청구인이 시동을 끄기 위해 운전석에 앉았을 개연성이 있는 점, 대리운전기사가 하차한 후 걸어간 방향을 감안하면 승용차의 뒷부분이 아닌 운전석 측면이나 승용차의 앞부분을 촬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점, 차종에 따라서는 시동이 꺼진 후에도 상당 시간 동안 자동차의 번호판등이나 차폭등이 켜져 있다가 꺼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대리운전 기사가 촬영한 사진에 승용차의 번호판등과 차폭등이 켜져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시동이 걸려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헌재는 “녹음파일에는 청구인이 운전했음을 직접적으로 인정할 만한 내용이 없는 점, 청구인이 주차된 승용차를 1m 운전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대리운전기사의 진술은 선뜻 믿기 어렵고, 달리 청구인의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 헌재는 “음주운전의 증거로서 음주운전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신고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함에 있어 신고자가 신고를 하게 된 경위, 신고자와 피신고자의 관계나 감정상태, 신고 내용이 객관적인 주변 상황과 합치되는지 여부, 피신고자에게 음주운전을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여러 정황에 비추어 신고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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