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채 인천국제공항의 환승구역에서 체류하며 9개월 넘게 재판을 받아왔던 앙골라 국적의 난민가족이 ‘정식 난민심사에 회부해 달라’는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장기간 공항에서 살아야 했던 루렌도 가족에게 입국과 정식 난민심사의 길이 열린 것이다.

콩고 출신자라는 이유로 앙골라에서 박해와 차별을 받아왔던 루렌도 가족은 2018년 12월 28일 난민신청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러나 인천공항출입국ㆍ외국인청은 이들의 입국심사에서 입국목적이 불분명해 체류자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국불허 결정했다.

루렌도 가족은 난민인정신청을 했는데, 인천공항출입국ㆍ외국인청은 지난 1월 9일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을 해 정식으로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루렌도 가족의 난민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루렌도씨 부부와 미성년의 자녀 4명은 정식 난민심사도 받지 못하고 박해의 위험이 있는 본국으로 돌아갈 상황에 처하게 됐다.

공익변호사단체 ‘사단법인 두루’는 이러한 사정을 전해 듣고, 루렌도 가족을 대리해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공익변호사단체 두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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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두루의 변호사들(이상현, 이주언, 최초록)은 콩고 출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앙골라의 상황과 이러한 박해를 피해 급박하게 출국했던 루렌도 가족의 사정을 설명하며, 루렌도 가족에게 정식 난민심사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인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4월 루렌도 가족에게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한국에 입국해 270일 동안 공항에서의 생활 끝에 루렌도 가족은 승소하며 난민인정심사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됐다.

서울고등법원 제1-1행정부(재판장 고의영 부장판사)는 지난 9월 27일 루렌도 가족이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 취소 청구소송(2019누47119)에서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지난 1월 9일 원고들에게 한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난민인정신청서의 기재내용과 난민면담 과정에서의 진술내용은 앙골라의 정세 등에 부합한다. 원고들의 박해 주장이 명백히 사실에 반하는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원고들의 난민인정신청은 난민법 시행령의 ‘난민인정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처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인천국제공항에서 머무르고 있는 원고들의 건강상태와 생활여건 등에 비춰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 처분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해 이 처분으로 인해 원고들의 불이익이 훨씬 크므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난민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난민신청자를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해 난민법의 절차적 보호 하에 그 지위를 신중히 심사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정식 난민심사에 회부해 달라는 루렌도 가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으로 원고들은 난민의 지위에 있는지 여부를 심사받을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대한민국에서 난민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사실상 봉쇄됐다”며 “반면 원고들은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하도록 결정하더라도 이는 ‘난민신청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후 구체적인 사실조사를 거쳐 원고들에 대한 난민불인정결정을 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난민인정심사 회부를 위해 원고들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제12조에 따른 입국허가 또는 제13조에 따른 조건부 입국허가를 하는 것이 국가의 안전 및 사회절서의 유지라는 공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거나 행정청이 외국인의 입국에 관해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정책재량을 본질적으로 침해ㆍ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인용해야 한다”며 “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해 부당하므로 원고들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판결을 취소하고,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 이후에도 루렌도 가족은 아직까지 공항 환승구역에 머무르고 있다.

공익변호사단체 ‘사단법인 두루’는 “인천공항출입국ㆍ외국인청이 상고를 포기하거나, 루렌도 가족의 입국을 허가해야 하다”며 “그래야 비로소 루렌도 가족은 공항생활을 마무리하고 정식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루렌도 가족의 소송대리인(두루)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인천공항출입국ㆍ외국인청은 아직 상고 여부나 입국허가 여부에 대해 내부 논의 중이라고 한다.

공익변호사단체 두루는 “인권 침해적인 ‘공항체류’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관련해서, 지난 9월 18일부터 19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UN Committee on the Rights)의 대한민국 제5ㆍ6차 심의에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위원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공항 환승구역에 방치된 루렌도 가족의 아동들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요청한 바 있다”고 전했다.

두루는 “아직 상고 여부나, 루렌도 가족의 입국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항소심 판결은 장기간 공항에서 살아야 했던 루렌도 가족에게 입국과 정식 난민심사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두루의 이상현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루렌도 가족은 입국해서 난민심사를 받아야 할 것”이라며 “인천공항출입국ㆍ외국인청도 상고를 포기하고, 루렌도 가족의 입국을 허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조치를 통해서 루렌도 가족에 대한 정식 난민심사가 관련 법률의 절차적 보장 하에서 충실하고 신속하게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라고 전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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