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대법원이 ‘박정희 긴급조치’가 위헌ㆍ무효로 판단하면서도 불법행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긴급조치 선포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던져준 판결”이라고 혹평했다.

한상희 교수는 “법원도 적어도 긴급조치가 국가범죄로서 기능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점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으며 “법원은 자신의 재판에 적용될 법이 잘못된 것인지의 여부는 법원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1층 회의실에서 ‘긴급조치와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이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자로 참여했다.

심포지엄 기념촬영
심포지엄 기념촬영

먼저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키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10월 27일부터는 ‘10월 유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새로운 개헌안을 공고하고,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에 붙여 통과시킴으로써 이른바 ‘유신헌법’이 제정돼 그해 12월 27일부터 시행됐다.

유신헌법 제53조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에 관한 규정을 뒀다. 유신헌법에 기한 대통령 긴급조치는 총 9차례 발령됐다. 그 중 일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하는 것이었다. 위헌 여부에 관해 많이 논란이 됐던 것은 처벌규정을 담고 있던 긴급조치 제1호, 제4호, 제9호다.

1974년 1월 8일 공포된 긴급조치 1호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와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도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및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금지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건,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도 금하며,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1975년 5월 13일 공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해 전파하는 행위,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ㆍ반대ㆍ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ㆍ청원ㆍ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그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한상희 교수는 심포지엄 발제에서 2015년 3월 26일 대법원 제3부의 판결(2012다48824)을 언급하면서 “이 사건은 가장 전형적인 국가폭력의 문제를 다루었다”며 “긴급조치 선포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던져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은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A씨는 1978년 6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소속 공무원들에 의해 당시 서울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 건물에 끌려가 20여일 간 친구에게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 등에 대한 이유에 대해 조사를 받으면서, 법관의 영장 없이 구금돼 있었다. 이에 A씨는 대한민국에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항소심인 대전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심준보 부장판사)는 2012년 5월 3일 원고 패소 1심을 뒤집고, A씨의 손을 들어주며 원고 승소 판결(2012나974) 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상의 기본원리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긴급조치 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또 “대통령이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한 행위는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한 대통령에게 고의 내지 과실이 인정되며, 유신헌법에 기초하더라도 명백히 위헌적인 내용의 긴급조치를 발령한 대통령의 행위에 대하여는, 법원이 긴급조치의 위헌성과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위법성을 인정해 위헌적인 긴급조치로 인해 피해를 받은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A씨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했다.

대법원 청사
대법원 청사

그러나 피고 대한민국이 상고한 사건에서, 대법원 제3부는 2015년 3월 26일 판결(2012다48824)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ㆍ무효로 선언됐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런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며 판단했다.

이와 관련 한상희 교수는 “이 판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선포행위가 국가배상의 원인이 되는 불법행위를 이루는가에 대한 판단은 겨우 6줄짜리 한 문장으로 처리된다”며 “한 마디로 밑도 끝도 없는 판단”이라고 비난했다.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 교수는 “대법원 판결문은 법리에도, 선례에도 맞지 않는, 문자 그대로 순 억지의 판결”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긴급조치는 위법인데 그것을 선포한 행위는 불법행위가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하려면 적어도 선포자인 대통령에게 고의도 과실도 없이 오로지 아주 순수하게 국가를 위한 일념으로 그렇게 했다는 증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판결은 그런 증명의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다.

한상희 교수는 “판결의 내용은 간단하다”며 “유신체제 하에서 전형적인 국가폭력으로 집행됐던 긴급조치가 비록 최근의 민주화 추세에 따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의해 계속 위헌무효라 선언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선포한 대통령의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통치행위기 때문에 법원이 판단할 수 없으며, 또 긴급조치에 따라 영장 없이 구금해 수사를 진행하고 기소하고, 법원이 유죄판결을 해 징역과 자격정지로 원고들의 신체와 정신과 일상을 파괴해 버린 행위는 국가배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판결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통치행위의 담론과 함께 불법행위에 관한 도그마를 교묘히 조작하면서 유신체제 하에서의 국가폭력을 새삼 정당화함으로써, 그 사악한 권위주의체제로 회귀하고자 하는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퇴행적 모습을 반복하는 한편, 촛불집회로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행로를 거스르는 또 하나의 반동을 구축한다”고 비난했다.

윤진수 교수, 김형태 변호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진수 교수, 김형태 변호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교수는 발표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선포했을 때, 그 과정들은 긴급조치라고 하는 불법적인 어떤 행위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의역하고 인용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라며 “그렇다면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한다면, 긴급조치를 선포한 행위 역시 마찬가지 위헌적인 또는 불법행위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교수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고도로 면밀하게 검토해서 위헌적이지 않도록 했는데, 결과적으로 위헌이 됐다는 경우는 면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왜냐하면 대통령은 혼자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부(府)라고 하는 엄청나게 많은 청와대 비서실을 비롯해서 모든 행정공무원의 보좌를 받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위법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교수는 “(대법원이 판결에서) 굳이 딱 6줄로써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불법행위성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법리다”라고 연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분명히 잘못된 명령이 있었고, 그 잘못된 명령에 의해서 마치 ‘아이히만’(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이 유대인을 수용소에 보내는 것과 똑같은 구조로서, 아무런 스스로의 판단도 않은 채, 해야 하는 판단도 거부한 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국법을 준수해야 하는 공무원이 기계적으로 명령을 이행했던 그 행위에 대해서”라고 짚었다.

한상희 교수는 “물론 (긴급조치)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중앙정보부 요원에 대해서, 또는 법원의 판사에 대해서 ‘당신은 왜 그때 목숨 내놓고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없을 것이다”라면서도 “그러나 그런 행위를 2019년 지금 현재 판단하는 법원의 입장에서는 판단은 다른 관점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중앙정보부 직원이 무서워서 판단하지 못한 또는 머릿속에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두뇌를 갖지 못해서 판단하지 못했던 아이히만처럼 그런 부분을 그대로 지금 현재 반복할 것이 아니라, 2019년에는 2019년의 법리를 가지고 지향점을 가지고, 그것을 그 당시에 적용시켜야 한다. 이게 과거사청산의 문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상희 교수는 “아이히만이 그 당시는 합법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위법이고 불법이었다”며 “이 논리는 지금 우리 법원이 기억해야 할 법리가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지금 현재는 김재규의 명령에 따랐던 사람들도 처벌 받았다. 박종철 사건도 마찬가지다. 명령에 복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았다”며 “지금 현재의 법리는 그것”이라고 직시했다.

한상희 교수는 위법한 직무명령에 대한 공무원의 복종의무에 대해 “중앙정부부장 김재규의 명령을 받은 중앙정보부 비서실장과 직원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원들을 사살한 사안에 대해 상관은 부하에게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원은 없으며, 부하는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제시했다.

한 교수는 “공무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명령이 위법한 것이라 판단할 경우 그 이행을 거부해야 한다. 법치주의는 이를 요구하는 헌법명령이다. 최근 문화체육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 의무위반에 대한 단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며 “법원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판에 적용될 법이 잘못된 것인지의 여부는 법원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교수는 “그렇다면 잘못된 위헌적인 긴급조치라는 명령에 무비판적으로 기계적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복종했던 또 다른 한국판 아이히만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위법하다는 판단은 그 때는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이것이 우리나라의 국법을 바로잡는 국가의 합법적인 판단이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한 교수는 “그러할 때 우리는 과거사 청산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참으로 아쉬웠던 게 적어도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현 정부 하에서 이런 (과거사 피해자) 보상청구에 관해서 철저하게 과거의 국가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서 배상의 길을 막아두는 이 정부의 행태는 저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김형태 변호사와 한상희 교수
김형태 변호사와 한상희 교수

그는 “법리적인 장애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피고인 국가가) 소멸시효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지 등이다. (국가가 소멸시효 주장) 왜 그런 행동으로 나왔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실제로 과거사 피해자들의 재심사건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국가는 피해자들에 대해 소멸시효완성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인해 왔다.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제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교수는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통치행위도 사법심사의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1964년 6.3사태 때 대법원의 판결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급조치에 대해서 적어도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규정이 적용되기 이전의 단계까지는 법원이 판단했어야 했다.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법원의 판단이탈”이라고 질타했다.

6.3사태는 1964년 6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진압한 사건이다.

한 교수는 “법원도 적어도 긴급조치가 국가범죄로서 기능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점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바로 그 점 때문에 법원의 판단 자체도, 재판 자체도 뭔가 불법행위성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윤진수 교수, 김형태 변호사, 한상희 교수, 정태호 교수
윤진수 교수, 김형태 변호사, 한상희 교수, 정태호 교수

한상희 교수는 “물론 가장 중요하게는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긴급조치) 행위가 불법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지금 현안에 관련된 모든 것이 해결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 박종우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과 달리 하급심에서는 인정하는 판결들이 선고되고 있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국가배상책임의 존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통해 혼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박종우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박종우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발제자로는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긴급조치의 발령은 불법행위인가?”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긴급조치 발동에 수반된 수사 및 재판행위의 불법행위성”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가 “긴급조치 판결과 피해자 인권침해 및 해결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자리에서 윤진수 교수는 “대법원은 이제라도 판례를 변경해, 대통령이 위헌인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이 불법행위가 되고, 그로 인한 피해자는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또 “이미 국가배상청구가 기각된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일괄적으로 보상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국회에 촉구했다.

이용우 서울변호사회 인권이사가 심포지엄 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토론자로는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 교수,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백가윤 국제인권활동가, 양민호 위원장(긴급조치 사람들 민사재심대책위원회)이 참여했다.

한편, 방청석에는 이대수 외국어대 명예교수, 송병춘 변호사 등이 참석해 경청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