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박정희 정부 시절 긴급조치로 인한 불법행위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은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헌법재판소가 재확인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청구인들은 1970년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긴급조치) 제9호 등을 위반했다는 범죄사실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세월이 흘러 청구인들은 2013년 국가를 상대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과 관련된 불법 수사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청구인 A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았으므로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나머지 청구인들의 청구는 기각했다.

청구인들은 항소를 거쳐 상고했으나, 2018년 7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패소가 확정됐다.

이에 청구인들은 2018년 8월 대법원 판결(2018다224385)을 취소해 달라며 그리고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청구 사유) 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 25일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에 대한 심판청구를 기각한다. 청구인들의 나머지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한다”고 판시했다. (2018헌마827)

헌재는 “헌법재판소는 2016헌마33 결정에서, 헌법소원이 금지되는 ‘법원의 재판’에 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고, 이로써 이 법률조항은 위헌 부분이 제거된 나머지 부분으로 내용이 축소됐다”며 “따라서 이 법률조항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청구인들이 제기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판단은 각하했다.

헌재는 “대법원 판결은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해석에 따라 국가의 책임을 부인한 판결일 뿐,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한 법원의 재판이 아니다”며 “따라서 대법원 판결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재판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그에 대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한편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조항에 대해 두 재판관은 “이 법률조항이 기본적으로는 헌법 가치에 어긋남이 없다 하더라도, 내용 중 법원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에 관한 부분, 위헌결정에 이르게 된 핵심적 이유에 반하는 재판에 관한 부분 및 국가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총체적 불법행위를 자행한 경우에 대해서까지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부인하는 재판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반대의견을 냈다.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은 “청구인 A씨가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음으로써 국가의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불법행위로 인해 입은 적극적ㆍ소극적 손해에 대해서는 일응 적절한 배상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나, 이를 통해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까지 적절한 배상을 받았다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 민주화보상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청구를 각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국가가 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권리를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총체적 불법행위를 자행했음이 명백한 사안에서 국가의 불법행위책임이 성립될 여지를 없애버린 것으로 청구인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심각히 침해한 것인바, 이는 취소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두 재판관은 “대법원 판결 중 청구인(A)를 제외한 나머지 청구인들에 관한 부분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행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부인한 부분은 2010헌바132 등 결정의 기속력에 반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긴급조치 제9호에 기초한 수사행위와 고문 등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부인한 부분은 국가가 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총체적’ 불법행위를 자행한 경우임에도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부인한 재판으로서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모두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한편,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이 사건은 이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고, 긴급조치 발령 및 그에 수반한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인한 대법원 판결이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 되는 예외적인 법원의 재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헌재의 종전 결정 등의 입장을 재확인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사건 대법원 판결 중 청구인(A)에 관한 부분에 관한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법률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선고했다고 할지라도 헌법재판소 결정 이전에 이미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그 판결이 확정된 이상, 위헌 결정의 소급효가 이미 확정된 재판에까지 미치는 것이 아니며, 위 법률조항을 적용한 재판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해 그 효력을 상실한 법률을 적용한 재판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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