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공무원연금을 받는 남편과 이혼소송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연금분할’ 포기와 관련한 합의가 없었다면, 이혼배우자에게 연금분할을 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건은 이렇다. A씨는 공무원으로 퇴직하고 퇴직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남편을 상대로 2017년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고, 합의서를 기초로 이혼 조정이 성립됐다.

A씨는 2018년 10월 공무원연금공단에 전 남편이 수령하고 있는 공무원연금을 분할해 지급해 줄 것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공단은 “이혼소송에서 원고는 ‘앞으로 위자료, 재산분할 등 일체의 모든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됐으므로, 분할연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 통보를 했다.

이에 A씨는 “이혼소송에서 남편이 수령하는 공무원연금을 포기하는 내용의 합의를 한 사실이 없다”며 소송을 냈다.

공단과 이 소송 보조참가인(전 남편)은 “A는 이혼 과정에서 자신 명의 아파트 소유권을 참가인에게 이전하고 참가인으로부터 5000만원을 지급받으면 더 이상의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 내용으로 합의했다”며 “공단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맞섰다.

공무원연금법(분할연금 수급권자 등) 제45조 제1항은 ‘혼인기간이 5년 이상인 사람이 배우자와 이혼하였을 것(제1호), 배우자였던 사람이 퇴직연금 또는 조기퇴직연금 수급권자일 것(제2호), 65세가 되었을 것(제3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면 그때부터 그가 생존하는 동안 배우자였던 사람의 퇴직연금 또는 조기퇴직연금을 분할한 일정한 금액의 연금(분할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또 제2항은 ‘분할연금액은 배우자였던 사람의 퇴직연금액 또는 조기퇴직연금액 중 혼인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균등하게 나눈 금액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홍순욱 부장판사)는 A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분할연금 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2018구합90671)에서 “피고가 원고에 대한 공무원연금분할청구 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먼저 2018년 4월 26일 헌법재판소의 결정(2016헌마54) 선고를 언급했다.

헌재는 당시 “공무원과 이혼한 배우자에 대한 분할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민법상 재산분할청구에 따라 연금분할이 별도로 결정된 경우에는 그에 따르도록 한 공무원연금법 제46조의4는 분할연금 수급권자의 사회보장수급권 및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연금법상 분할연금제도는 공무원과 이혼한 배우자에게 공무원이 재직기간 중의 혼인기간에 취득한 퇴직연금 또는 조기퇴직연금 수급권에 대해 그 연금 형성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해 청산ㆍ분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상대방의 퇴직연금 또는 조기퇴직연금 수급권을 기초로 일정한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헌법재판소)”며 “이는 민법상 재산분할청구권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공무원의 배우자였던 사람이 피고로부터 직접 수령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라고 말했다.

이어 “특례조항(제46조, 분할연금 지급 특례)에서 정한 ‘연금분할이 별도로 결정된 경우’라고 보기 위해서는, 협의상 또는 재판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절차에서 이혼당사자 사이에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을 달리 정하기로 하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었거나 법원이 이를 달리 결정했음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혼당사자 사이의 협의서나 조정조서 등을 포함한 재판서에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에는, 재산분할절차에서 이혼배우자가 자신의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분할 비율 설정에 동의하는 합의가 있었다거나 그러한 내용의 법원 심판이 있었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이혼소송 과정에서 원고가 자신의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하기로 하는 별도의 합의가 있었다거나 그러한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혼당사자는 재산분할 과정에서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지만 반드시 이를 포함시켜 분할 비율 등을 별도로 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혼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권이 공무원연금법상 인정되는 고유한 권리임을 감안하면, 이혼 시 재산분할절차에서 명시적으로 정한 바가 없을 경우 분할연금 수급권은 당연히 이혼배우자에게 귀속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원고와 참가인(전 남편)은 이혼 조정조서 제4항에서 ‘원고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고, 원고와 참가인은 앞으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위자료, 재산분할 등 일체의 모든 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정했는데, 이는 향후 재산분할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은닉된 상대방의 재산이 발견되더라도 서로에 대해 재산분할 청구, 위자료 청구 등을 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으로 보이고, 원고가 피고에 대해 분할연금 수급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까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는 공무원연금법 제45조 제1항이 정한 분할연금 수급권자에 해당하고, 이혼소송 과정에서 연금분할이 별도로 결정된 사실도 없으므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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