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직장 선배로부터 기습적으로 강제추행을 당해 고소했는데 오히려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항소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고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단을 받았다.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사실에 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 내지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그 자체를 무고를 했다는 적극적인 근거로 삼아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해 무고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다.

대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A(30대 여성)씨는 2014년 6월 경찰에 B씨의 처벌을 원한다며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B씨는 방송국 직장 선배였다.

A씨는 “2014년 5월 B씨가 술집에서 자신의 옆에 앉아 팔로 허리를 감싸 안는 방법으로 추행하고, 술집에서 나와 함께 걸어가며 강제로 손을 잡는 방법으로 추행하고, 골목길 소파에 앉았다가 일어나려는 순간 팔을 잡고 끌어 앉히더니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으로 추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B씨에 대해 ‘혐의 없음’ 불기소결정을 했고, A씨가 항고했으나 기각됐다. 이에 A씨가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으나 이마저도 기각됐다.

그러자 이 사건 당일 A씨와 헤어진 직후 B씨는 “모든 것이 예상되지만 어쨌든 잘 들어가고 다시 내일 보자, 걱정되지만 일단 안녕”이라는 문자메시지를 A씨에게 보내고, 다음날에는 A씨에게 무릎까지 꿇고 사과했던 B씨의 태도는 변했다.

B씨는 “강제추행 허위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해 무고했다”며 A씨를 고소한 것이다. 검찰은 A씨에 대해서도 불기소결정을 내렸으나, B씨의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정식재판이 진행됐다.

이 사건은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는데, 1심은 A씨의 무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A씨가 억울해 하면서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2018년 1월 A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 유죄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A)이 B와 단둘이서 4시간 동안이나 함께 술을 마시고 그 후 상당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피고인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피고인은 B에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또 “둘이 술집에서 나온 뒤의 상황이 촬영된 CCTV 영상에는 B가 추행했다고 볼 만한 장면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피고인과 B가 자연스럽게 신체적인 접촉을 하는 듯한 장면이 다수 나타난다. 피고인의 고소내용에 의하더라도 B가 어떠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며 “만약 피고인이 갑작스러운 B의 행위로 실제 두려움을 느꼈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인데, 그와 같이 대처하지 않고 헤어질 당시 B가 뒤따라오는 상황에서 단순히 택시를 타고 떠났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고 유죄로 판단했다.

게다가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고소 동기에 대해 단지 B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으나, 사건 다음날 B가 무릎까지 꿇고 피고인에게 사과를 한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 보면, 고소 동기에 피고인의 주장도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며 고소 동기마저 의심했다.

사건은 A씨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단과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며 뒤집었다.

대법원 청사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월 11일 무고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18도2614)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판단해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무고죄는 타인에게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인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인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요건은 적극적 증명이 있어야 하고, 신고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 곧 신고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의 사실이라 단정해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으며, 신고내용에 일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범죄의 성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고 단지 신고사실의 정황을 과장하는데 불과하다면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종전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또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해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개별적ㆍ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짚었다.

이어 “위와 같은 법리는,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실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기소처분 되거나 무죄판결이 선고된 경우 반대로 이러한 신고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반해 무고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사실에 관해 불기소처분 내지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그 자체를 무고를 했다는 적극적인 근거로 삼아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됨은 물론, 개별적ㆍ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처했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 및 신고 경위 등에 관한 변소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이른바 기습추행의 경우도 포함되며, 이 경우의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특정되는 피고인의 고소내용 즉 사건 당일에 편의점에 들른 후 각자 택시를 타고 헤어지기 이전에 B가 갑자기 피고인에게 입맞춤 등을 했다는 것 역시 기습추행을 당했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며 “사건 당일 피고인에게 입맞춤을 했다는 점은 B 역시 인정하고 있다”며 “원심이 유죄인정의 근거로 밝힌 사정들은 피고인의 고소내용이 객관적으로 허위임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삼기에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입맞춤 등을 당하기 이전에 B와 손을 잡는 등 다른 신체접촉이 있었다거나 B의 유형력 행사나 협박성 발언이 있었는지, 피고인이 강제추행을 당한 직후 공포감을 느끼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는지 등은 피고인이 B로부터 일순간에 기습추행을 당했는지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설령 피고인이 사건 당일에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피고인은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갖는 주체로서 언제든 그 동의를 번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접촉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할 자유를 가지므로, 피고인이 주장하는 기습추행이 있기 전까지 B와 어느 정도의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해, 입맞춤 등의 행위까지 동의하거나 승인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가 피고인을 무고죄로 고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소대리인을 통해 개진했던 주장과 이 사건 제1심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 다르다는 점 역시 피고인이 B로부터 기습추행을 당했다는 것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게 한다”며 “반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무고의 동기가 있다고 본 사정은 무고죄 성립의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봤다.

B씨의 고소대리인은 A씨를 무고죄로 고소할 당시 “A씨가 강제후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사건 당일 편의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헤어지기 전까지) 이전에도 서로 감정에 이끌려 세 차례나 입맞춤을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런데 B씨는 이 사건 1심 법정에서 언제, 어디서, 몇 번이나 입을 맞추었는지 기억이 분명치 않다거나, 고소대리인이 한 종전의 주장내용과 사뭇 다른 취지로 증언해 불신을 산 것이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에는 무고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며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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