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감사결과 감사원이 문책을 요구하자, 자신이 억울하게 징계를 받고 승진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크며 회사로부터 구상권 청구까지 당할지 모른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자살한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 직원에 대해 대법원이 업무상재해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5월에 있었다. 그런데 1심과 2심 법원에서 업무상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사건을 대법원이 업무상재해를 인정한 판결이고, 근로자들의 스트레스와 자살에 관한 업무상재해를 인정하는 주목해야 할 판결이어서 대법원 판결을 자세히 보도한다.

이 사건 항소심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2016년 10월 20일 나왔는데, 대법원은 2년 9개월 정도 심리한 후에 업무상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심과 2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A씨는 1991년 서울메트로에 입사해 근무하면서 서울시장과 회사 사장으로부터 6회에 걸쳐 표창을 받았다. 물론 재직기간 동안 징계를 받은 적은 없었으며, 평소 밝고 유쾌했으며 동료들과도 원만히 지냈다.

그런데 감사원이 2010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서울메트로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해 스크린도어 설치공사와 관련해 시공업체의 폐업으로 17억 240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돌려받지 못한 손실을 입은 사실을 발견했다.

감사원 감사 후 A씨를 포함한 담당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가조사를 실시했고, A씨에 대해 2회의 추가조사를 실시했다. 그런 다음 서울메트로에 2011년 11월 A씨 등에 대해 정직 처분을 하라는 취지의 문책요구서를 보냈다.

A씨는 감사원의 문책 요구에 매우 억울해하면서 재심을 청구하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포기했다. 문책 요구를 받은 직원들 중 나머지 3명은 2012년 2월 정직 1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가, 이후 자체상벌위원회에서 모두 감봉 3개월로 감경됐다.

A씨는 감사원의 감사가 있기 전까지 불안, 우울 등의 증상으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으나, 2011년 11월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알게 된 후 잠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게다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사무실에서도 자주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이 발견됐다. 또한 A씨는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고 업무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동료 직원에게 “회사 사람들이 모두 나를 범죄자 취급하며 욕하는 것 같다.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쳐다보면서 수군거리는 게 확실히 느껴지고 다들 손가락질 하는 것 같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고 한다.

20년 넘게 근무한 A씨는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은 상태에서 승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는데, 감사원의 문책요구에 따른 징계로 승진에서 누락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많이 했고, 회사로부터 입은 손실액에 대해 구상권 행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불안해했다고 한다.

A씨는 2011년 11월 회사로부터 감사원의 문책요구서를 받은 후부터는 불면이 더욱 심해졌고, 배우자에게 “세상에 난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네 눈에도 내가 파렴치범으로 보이지?”라는 말을 했으며,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밤새 소파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담배를 사러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서 다시 담배를 사거나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문책요구서를 받은 다음날 A씨는 등산을 가겠다고 집을 나갔다가, 그 다음날 등산로에서 자살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에 유족은 남편이 감사 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 발생했고,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재해를 인정해달라는 취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A씨의 업무 강도에 변화가 없었고, 함께 문책을 받은 직원들과 비교할 때 평균 근로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 그러한 선택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유족이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의 판단은 하급심과 달랐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지난 5월 10일 사망한 서울메트로 직원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2016두59010)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환송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는 노정희, 안철상, 김상환 대법관이 관여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감사원이 자신을 조사하고 문책을 요구하자, 자신이 억울하게 징계를 받고 승진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크며, 아울러 회사로부터 구상권 청구까지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

이어 “이후에 이어진 망인의 발언이나 행동 등에 비춰 보면 그가 스트레스로 인한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계속적으로 느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자살 직전에는 이상 행동에까지 이르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평소 밝고 유쾌했고, 동료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 전까지는 우울증 등 신경정신병적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전혀 없었으므로, 업무 외의 다른 요인으로 위와 같은 증세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런 사정들을 종합하면, 망인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실에 이르게 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망인이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의 원인과 정도, 망인의 우울증이 발생한 경위, 자살 모렵 망인의 정신적 상황 등에 관해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망인에게 노출된 업무상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심화시킬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상 재해에서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어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며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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