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는 5일 “집배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장시간 중노동과 아파도 쉴 수 없는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지금 당장 집배원 인력증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집배 노동자들인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는 오는 9일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이날 우정사업본부와의 조정회의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최종 파업 여부는 오는 8일 결정하기로 했다.

이번 성명에 대해 서울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이용우 변호사는 기자에게 “집배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사안의 심각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성명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2017년 7월 집배원 21년차 A씨(47)가 안양우체국 앞에서 장시간ㆍ중노동과 주먹구구식 배달구역 변경 등에 항의하며 분신ㆍ사망했다. 2016년 12월 가평우체국 집배원 B씨(49)는 연말 폭주한 배달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내리다 다세대 주택에서 과로로 숨진 채 발견됐다. 2016년 7월 청송현동우체국에서 일하던 9년차 집배원 C씨(34)는 장마철 악천 후 속에서 우편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서울변호사회는 “이처럼 집배원의 과로사, 사고사, 과로자살 등은 이것만이 아니고,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며 “최근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들의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93%의 압도적 찬성률이 나왔다. 이는 그동안 우정노동자들의 장시간 중노동에 대한 불만이 폭발 일보 직전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사진=우정노조 홈페이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발표 기자회견하는 우정노조 / 사진=우정노조 홈페이지

그동안 집배원들의 각종 사망사고가 보도될 때마다 그들의 처절한 근무환경에 대한 지적이 있어 왔다.

최근 노사,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인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의 조사결과도 이러한 사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사결과 집배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2017년)이었다. 이는 한국의 임금 노동자보다 87일, OECD 평균보다 123일 추가 노동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확인됐다.

서울변호사회는 “집배원들은 비수기(폭주기 제외한 평시), 폭주기(매월 후반), 특별소통기(명절, 선거 등) 마다 노동시간이 고무줄처럼 들쑥날쑥 이어서 과로 요인인 불규칙 노동과 업무량 쏠림 현상에 심각하게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나아가 매일 우편물 상차ㆍ하차, 우편물 분류와 정리, 담당 구역별 우편물 배달과 수집 등의 과중한 업무를 적은 인력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완수해야 하는 심각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집배원은 근무시간 내내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의 심박수를 보이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서울변회는 “더욱이 팀원의 휴가나 병가로 인한 겸배(배달물량 떠안기), 배달구역의 주먹구구식 변경, 새로운 주소지와 배달경로 파악 등으로 고충을 겪고 있고, 여기에 일시적으로 폐지된 집배원 토요근무가 2015년부터 다시 부활돼 노동강도는 더욱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아가 집배원은 배달과정에서의 마찰 등으로 민원인에게 고소까지 당하는 등 각종 민원에 시달리고, 지속적인 오토바이 운전업무로 인한 긴장, 오(誤)배달 우려 등에 대한 스트레스 등도 심각하다”며 “이와 같은 이유로 집배원의 직무스트레스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서울회는 “더욱이 집배원은 하루 휴게시간 34.9분, 연차휴가 사용률 27%(5.6일)로 피로를 회복할 여지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러한 장시간 중노동은 결국 집배원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실제 집배원의 산업재해율은 1.62%로 전체 공무원 평균인 0.49%과 위험직군인 소방관의 1.08%보다 훨씬 높게 조사됐다”고 제시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166명의 집배 노동자가 근무 중 교통사고, 과로사 등으로 사망했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9명의 집배 노동자가 사망했다. 나아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집배원의 노동재해율(=노동재해 건수/노동자 수)은 전체 노동자 평균의 4.3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집배원의 과로 및 스트레스, 높은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식습관 변화, 피로회복 시간 부족 등으로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이 높고 근골격계 질환과 사고 관련 외상 위험도 현저하다고 조사됐다.

서울변회는 “우편이 아닌 죽음을 배달하는 집배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집배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짚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집배원의 심각한 장시간 중노동 문제는 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더 잃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개선방안은 명확하다”며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배원 증원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회는 “인력증원은 현 정부의 비정규직 축소 및 상시지속적 일자리의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방침에 맞게 계약직 또는 민간위탁이 아니라 반드시 정규직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장시간 중노동의 주요 원인인 토요근무도 완전 폐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노사, 전문가, 시민사회, 소비자 등의 참여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회는 “나아가 과도한 경쟁을 야기하는 불합리한 성과 지표도 개선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며 “이미 사회적 합의기구인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은 이와 같은 내용을 포함한 ‘7대 정책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고, 우정사업본부 노사는 이를 성실히 이행하기로 합의까지 했다”고 상기시켰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현실이 이러함에도 작년 국회에서는 끝내 밀실논의로 집배원 증원 예산을 예산결산 소소위에서 누락했고, 우정사업본부는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스스로 합의한 권고안마저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정부와 국회는 지금 당장 집배원 인력증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변호사회는 “우정사업본부는 회계 구분을 이유로 재정적자를 주장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2018년도에만 4500억원의 경영수지 흑자를 기록한 우정사업본부는 지금이라도 스스로 합의한 권고안 이행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가기관에서조차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효율성과 성과만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면서다.

서울변회는 “이번 집배 노동자들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장시간 중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상징적인 사안으로 본다. 어떠한 가치도 생명과 안전, 건강과 인권에 우선할 수 없다. 현 대통령마저 노동자의 사망재해는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의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한 바 있다”며 “집배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장시간 중노동과 아파도 쉴 수 없는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서울회는 “이번만은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한 명의 집배원이라도 더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며 “본회는 집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적정 인력 확보 문제를 포함해 향후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과 인권, 사회적 재난 등 중대한 사회적 의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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