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부모의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법원은 부모의 동의가 성별정정허가 여부 판단에 필수가 아님을 설시하면서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했다.

그 동안 법원은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허가신청 시 부모의 동의서를 첨부하도록 한 대법원 예규에 따라 동의서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법원이 성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동의 여부가 성별정정허가에 필수 요건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 따르면 성전환수술을 받아 여성의 신체외관을 하고 여성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A씨는 20대 후반의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여성으로서의 성별정체성을 갖고 현재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성전환수술 등 의료적 조치도 받는 등, 일반적으로 법원의 성별정정허가를 받기 위한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다만 A씨는 대법원 예규가 요구하는 서류 중 부모 동의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A씨의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A씨의 정체성을 완강히 거부했고, 그 결과 A씨는 현재 부모와 관계가 단절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A씨의 성별정정허가신청에 대해 1심인 인천가정법원 부천지원은 기각결정을 내렸다.

‘희망을 만드는 법’ 측은 “결정문에는 기각에 대한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으나, 부모의 동의서를 첨부하지 않은 것이 이유로 추정된다”고 봤다.

이에 A씨가 항고했고, 2심인 인천가정법원 제1가사부(재판장 정우영 부장판사)는 지난 7월 1일 1심 결정을 취소하고, ‘남’에서 ‘여’로 A씨에 대한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신청인의 성별정정에 부모가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으나, 성년자녀에 대한 부모의 동의 여부가 성별정정 허가에 필수 요건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이미 신청인이 오랜 기간 여성의 주체성과 자아를 가지고 생활해 왔고 자신의 상태에 관해 고민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린 이상, 부모가 성별정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신청인의 성별정정을 불허할 직접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렇기에 신청인의 성별정정허가신청은 이유 있음에도 이를 달리 한 1심 결정은 부당해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희망을 만드는 법’ 측은 “이번 결정은 부모의 동의 여부가 성별정정에 필수가 아님을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6년 제정된 대법원 예규는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허가신청 시 부모의 동의서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희망을 만드는 법’ 측은 “부모의 동의서 제출은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2004스42)에서 성별정정을 위한 요건으로 설시한 내용이 아님에도 예규에 구체적 근거 없이 삽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비교법적으로 봐도 성년의 성별정정에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부모의 동의가 필수가 아니라는 본 결정의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희망을 만드는 법’ 측은 “그럼에도 그 동안 대법원 예규에 근거해 많은 법원들에서는 부모의 동의를 요구했다”며 “이는 종교적 이유나 사회적 낙인으로 부모에게 자신을 이해받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이 많은 현실에서 성별정정의 실질적 장벽이 돼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트랜스젠더 70명을 대상으로 한 성별정정경험 조사(희망을 만드는 법 수행)에서도 45.7%가 부모의 동의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희망을 만드는 법’ 측은 “무엇보다 동의서 요구는 가장 가까운 존재라 할 부모에게마저 이해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트랜스젠더에게 이중의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성별정정을 허가한 대법원 결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렇기에 본 결정이 하나의 사례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법원의 성별정정허가 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미 국제적으로는 성별정정이 트랜스젠더가 존엄과 평등을 향유하기 위한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고, 아르헨티나, 덴마크,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성별정정을 보장하는 국가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희망을 만드는 법’ 측은 “이러한 상황에서 트랜스젠더가 처한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해 오히려 고통을 가하고 있어 현행 대법원 예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나아가 국회와 정부 역시 이러한 상황에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성별정정 특별법을 제정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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