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상당한 기간 동안 관리를 소홀히 해 불법상태를 방치해 온 국가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공권력 행사 제한의 필요성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은 지 50년이 지난 건물에 대해 미등기 불법 건축물이라며 매수인에게 자진철거와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행정청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다.

이번 판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에의 지적하며 재판부가 제시한 판단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청주지방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10월 B씨로부터 청주시 B구에 있는 임야 1653㎡와 그 지상에 있는 총면적 38.63㎡로 건축된 철근콘크리트조 법당 건물을 매수했다.

그런데 A씨가 매수하기 3개월 전인 2016년 7월 B구청이 건축물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건축물이 미등기 건축물임을 확인하고, 그해 10월과 11월 A씨에게 “건축법을 위반해 무단으로 지어진 법당 건물을 자진 철거하라”는 취지의 시정명령을 했다.

또한 B구는 2017년 2월 A씨에게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몇 차례 변경됐는데, 이행강제금은 72만 4000원이었다.

그러자 A씨는 “구청의 처분은 사실을 오인하거나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하는 등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위법이 있다”며 소송을 냈다.

A씨는 “이 사건 건축물은 1962년 이전에 건축된 건물로서, 구 건축법 부칙 경과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건축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며 “즉 불법건축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이 건축물의 종전 소유자인 B씨는 2012년 B구에 이 건축물의 건축물대장 등재를 위한 방법을 문의했는데, 당시 담당자는 ‘구 건축법 시행 후 신축ㆍ증축ㆍ개축된 부분을 철거하면 건축물대장 등재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고 한다. 이에 B씨는 2011년 6월 1962년 이후 추가로 설치한 부분을 철거했다.

그리고 A씨 또한 2012년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이 건축물이 불법건축물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신우정 부장판사)는 최근 A씨가 청주시 B구청장을 상대로 낸 건축이행강제금부과처분취소 청구소송(2017구합2894)에서 “피고가 원고에 대한 이행강제금 부과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원고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이 건축물의 안전ㆍ기능ㆍ환경 및 미관을 향상시킴으로써 공공복리를 증진시키려는 공익보다 과도해 원고에게 가혹하므로, 설령 피고의 주장과 같이 불법건축물이 맞더라도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관해 여러 이론적 입장이 있으나, 어떤 입장에 의하더라도 국가의 공법상 행위와 관련해 국민의 신뢰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또한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과 공공복리 등의 가치가 상호 충돌하고 대립하는 경우에는 어느 하나의 가치만을 선택해 나머지 가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고, 충돌하는 가치를 모두 최대한 실현시킬 수 있는 규범 조화적 해결방법을 사용함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이 시정명령 또는 이행강제금 부과처분을 함에 있어서 행정청은 위와 같은 규범 조화적 해결의 원칙을 바탕으로, 건축물의 안전ㆍ기능ㆍ환경 및 미관을 향상해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한 공익적 가치와, 건축물의 소유자가 가지는 재산권 등의 사적인 가치를 비교ㆍ형량해야 하고, 이를 통해 충돌하는 가치가 비례적으로 가장 잘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또 “그리고 그 결과 행정청이 추구하고자 하는 공익적 가치에 비해 개인의 사익이나 신뢰가 과도하게 침해된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처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만일 어떤 건물이 불법건축물로서 시정명령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관리를 게을리 해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불법을 적발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즉, 상당한 기간 동안 관리를 소홀히 해 불법상태를 방치해 온 국가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공권력 행사 제한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 논리의 연장선에서, 비록 시정명령 및 이행강제금 부과 등이 국가행정의 일환으로 공법적 작용이라고 하더라도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사법상의 시효(時效) 법리나 권리남용 금지 법리를 일정 부분 도입함이 요구된다”며 “나아가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는 공소시효(公訴時效) 제도를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과 같이 위법한 행위에 대한 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처분의 영역에서는 이와 유사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이어 “바꾸어 말하면, 국가가 ‘상당한 기간’ 동안 불법건축물 상태를 적발하지 못하고 이를 방치한 경우 위와 같은 시효, 권리남용 금지, 공소시효의 법리 등을 유추해 시정명령이나 이행강제금 부과 등을 행사할 권한이 제한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며 “특히 이는 불법건축물이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적발되지 않았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건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공리(公利)적 해악이 사실상 없거나 미약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러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행정청의 안이함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로서는 이와 같이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불법건축물을 발견한 경우, 과거의 잘못을 물을 것이 아니라 불법건축물 또는 무허가건물을 양성화시켜 그 후부터라도 적법하게 세금을 걷는 태도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며 “국가가 ‘상당한 기간’ 불법상태를 방치해 왔음에도 국민의 재산권 혹은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곧바로 시정명령 등의 강제적 수단으로 나아가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옳지 않은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또 “법정책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불법건축물에 대한 시정명령 및 이행강제금 부과를 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한다면, 국가로서는 불법건축물 색출 작업을 보다 엄격하게 하게 될 것”이라며 “다시 말하면, 불법건축물에 대한 시정명령 등의 권한행사 기간을 ‘상당한 기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건축물의 안전ㆍ기능ㆍ환경ㆍ미관 향상이라는 공익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건축물의 불법적인 상태를 직접 야기한 사람이 아닌, 그 대상자로부터 불법건축물을 양수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그와 같은 불법 상태의 야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볼 여지가 없는 한 그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건축물이 1966년도에 신축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피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이 건축물에 대한 최초의 시정명령은 그로부터 약 50년 후인 2016년 7월 비로소 이루어졌다”며 “즉, 이 처분은 불법건축물인 이 건축물의 상태를 50년 동안 방치해 온 피고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양수인에 불과한 원고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는 ‘상당한 기간’이 훨씬 지난 사안으로, 원고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가 됨은 물론 원고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며, 얻을 수 있는 공익 등을 감안할 때 비례원칙이나 최소침해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더욱이 피고는 원고가 불법상태 야기와 관련해 공모ㆍ가담했음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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