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장손(손자녀)의 자녀에 대한 취업지원 시 장손을 ‘장남의 장남’으로만 보는 것은 차별로 판단, 성평등에 부합하도록 구제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2일 밝혔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A씨의 아버지의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로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A씨의 할머니는 맏딸이고 그 아래로 아들이 2명 있었으나 6ㆍ25 전쟁 때 북한으로 갔고 막내딸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A씨는 “따라서 맏딸의 아들인 A씨의 아버지를 독립운동가의 장손으로 봐야 함에도, 국가보훈처가 남성의 아들을 장손으로 우선 인정하고 여성의 아들은 장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별에 따른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가의 맏딸의 아들은 장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독립유공자의 증손자인 본인이 취업지원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의 ‘장손’은 사전적 의미와 사회관습에 근거해 ‘장남의 장남(1남의 1남)’으로 보는 것이 원칙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의 개정 연혁과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재결례를 근거로 ‘장손’이란 호주승계인을 대체하는 개념으로서 명칭만 변경된 것이므로 ‘장남의 장남’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훈처는 “기존의 행정 선례에 반해 판단하는 경우 그 동안 이루어진 행정관행의 존속을 믿는 국가유공자 유족의 신뢰를 깨뜨리는 것으로 행정상 신뢰보호의 원칙, 법적 안정성의 관점이나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독립유공자 슬하에 남자 자녀가 모두 후손 없이 사망한 경우 1녀의 장남은 취업지원과 관련한 독립유공자의 ‘장손’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지침을 2018년 3월부터 시달하는 등 차별요소를 최대한 줄여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미 호주제 폐지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호주제는 가족 내에서의 남성의 우월적 지위, 여성의 종속적 지위라는 전래적 여성상에 뿌리박은 차별로서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에 지나지 않으며,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과 전통문화란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위원장 정상환)는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의 기능이나 가족원의 역할분담에 대한 의식이 현저히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가통(家統)의 정립이 반드시 남계혈통으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관념에 의거해 ‘장손’의 개념을 기존의 호주제에 근거한 ‘호주승계인’, 남성으로 한정하는 것은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차별시정위원회는 “본건과 같이 진정인(A)의 아버지의 외할아버지의 남자 자녀들은 모두 월북해 국내에 자손이 없고 진정인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여동생은 일본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에 진정인의 아버지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국내에 거주하는 경우에 그 후손에게 ‘취업지원’을 거부한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건과 같은 경우를 2018년 3월 지침과 굳이 달리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따라서 진정인과 같은 경우에 진정인을 포함한 그의 형제자매 중 1명이 취업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구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독립유공자 지정취업제도는 독립유공자의 장손이 질병 등을 이유로 직접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 그의 자녀 중 1명을 지정해 장손을 대신해 취업지원 혜택을 받는 제도로서 지정권자인 장손의 자녀 중 성별 또는 나이에 상관없이 임의 지정이 가능하다.

국가보훈처의 심사결정을 거쳐 취업지원 대상자로 지정을 받은 자는 채용시험 가점 부여, 의무고용, 특별채용 등의 취업지원 혜택을 받게 된다.

독립유공자 취업지원 대상자 지정권자(장손)는 2019년 3월 8일 기준 총 228명 중 남성은 222명(97%), 여성은 6명(3%)이다. 취업지원 대상으로 지원을 받는 자(장손의 자녀) 228명 중 남성은 174명(76%), 여성은 54명(24%)이다.

‘지정권자’와 ‘지원을 받는 자’의 성비 차이가 나는 이유는 지정권자의 경우 남성의 아들을 ‘장손’으로 우선 지정하는 반면, ‘지원을 받는 자’는 지정권자가 그의 자녀 중 성별 또는 나이에 상관없이 임의 지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로리더 신혜정 기자 shin@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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