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역임한 김현 변호사는 법조계 고질적인 병폐인 ‘전관예우’ 타파와 대법관 사무부담을 가중시키는 대법원 사건적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시니어판사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사법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공동주최한 ‘사법신뢰의 회복방안 - 전관예우와 시니어판사 제도를 중심으로’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여해서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강현중 사법정책연구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문희상 국회의장과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축사를 했다. 그리고 김하중 국회입법조사처장이 환영사를 했다.

심포지엄 제1세션은 ‘전관예우 실태 및 해외제도’를 주제로 진행됐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전관예우 실태 및 근절방안 : 법조인과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주제로 발표했고, 이어 차성안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수원지방법원 판사)이 ‘해외의 전관예우 규제 사례와 한국에의 시사점’에 대해 발표했다.

이에 대한 토론자로는 판사 출신 주호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변호사 출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광수 변호사(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위원), 조서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변호사)이 참여했다.

또한 제2세션은 ‘시니어판사 제도’를 주제로 진행됐다. 김우진 사법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았고, 부장판사인 모성준 주 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사법협력관이 ‘법조일원화의 정착을 위한 시니어판사 제도의 도입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에 대한 토론자로는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강영호 서울중앙지방법원 원로법관(전 특허법원장), 김현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김영훈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이 참여했다.

토론자로 나온 김현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미국 워싱턴대 로스쿨 법학박사,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등으로 근무했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거쳐 제49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직을 역임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김현 전 대한변협회장
김현 전 대한변협회장

대한변협회장을 역임한 김현 변호사는 “저는 2013년부터 시니어판사제도 도입을 강력하게 초지일관 지지해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변호사는 “우리 국민은 고위공직자가 퇴임한 이후에 공직 경력을 이용해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라며 “특히 법원의 최고위직인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퇴임 후 영리업무에 종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라고 국민의 시선을 짚었다.

그러면서 “최근 대한변협이 4대 고위 전관인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에 대해서 2년 동안 변호사개업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김현 변호사는 “그런데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젊고 의욕 있는 분들이 대법관으로 퇴직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김소영 대법관은 퇴임 시 52세, 김영란 대법관은 54세, 김지형 대법관은 53세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안대희 대법관도 퇴임 당시 57세였다.

김 변호사는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개업을 하지 않는다면 이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 등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법은 미국 연방법원이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시니어판사 제도를 도입해 퇴임 대법관이 시니어판사가 돼서 대법원의 재판 업무를 적극 돕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김현 변호사는 “2018년에 접수된 (우리) 대법원 상고사건은 무려 4만 7959건(민사 1만 9156건, 형사 2만 3973건, 가사 702건, 행정 3866건, 특허 250건, 선거 10건)이고 처리한 사건은 4만 7195건에 달해 대법관의 사무부담이 엄청나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그 결과 70~80%에 가까운 사건들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해서, 재야 법조계와 국민들에게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중요한 상고사건 기록 검토를 실력 있는 시니어판사가 해준다면 현직 대법관의 업무는 경감되고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올라갈 것”이라고 봤다.

그는 “시니어판사는 자신의 희망에 따라 파트타임 근무도 가능하게 하고, 급여는 현직 대법관보다 약간 적은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현 변호사는 “대법원 사건 적체를 해결하려면 유럽과 같이 대법관을 50명 정도로 증원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일시에 증원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중간단계로 시니어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라며 “전통적으로 대법관 증원을 반대하는 법원의 입장까지 고려한 절충안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퇴임 대법관들은 평생 법원에서 재판업무에 종사해왔다. 이분들이 다른 업무도 잘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잘하는 일은 역시 재판업무다. 그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은 경륜과 소중한 경험을 사장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서 시니어판사 제도를 정착시킨 후에 범위를 넓혀서 퇴임 법원장과 고법(고등법원) 부장판사, 지법(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시니어판사가 될 수 있게 하면, 능력 있는 중견법관의 손실을 막고 전관예우의 가능성을 없애서, 사법서비스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 변호사는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제이지만 65세가 되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은퇴하거나 또는 15년 판사 경력이 있는 사람은 시니어판사가 될 수 있다. 은퇴하더라도 현직 판사와 같은 액수의 연금을 받기 때문에 시니어판사는 오로지 자기가 좋아서 일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시니어판사는 사무실과 직원 그리고 재판연구원(로클럭)의 지원을 받으나 원칙적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업무량은 현직 판사의 50% 정도라고 한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2006년에 연방 지방법원 판사의 36%(1018명 중 364명)가 시니어판사였고 이들이 지법 사건의 17%를 처리했다. 또 연방 항소법원 판사의 37%(292명 중 109명)가 시니어판사였고 17.1%의 사건을 처리했다.

김현 변호사는 “13년이 경과한 지금 시니어판사의 비중은 크게 늘었다. 2018년에 연방 지방법원 판사(974명)의 42%인 412명이, 항소법원 판사(292명)의 33%인 96명이 시니어판사이다. 2018년 시니어판사가 차지하는 업무량은 지방법원의 경우 무려 62.5%, 항소법원의 경우 53%의 사건을 처리한다고 하니 시니어판사 없이는 연방법원의 운영이 어려워질 정도다”라고 전했다.

그는 “시니어판사는 법관 정원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사법수요에 따라) 대통령이 유연하게 시니어판사를 임명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결국 미국에서도 판사보다 변호사의 수입이 높기 때문에 연방법원 판사가 사직하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판사로서 쌓은 경륜을 활용하기 위해 시니어판사를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 변호사는 “시니어판사 제도가 도입되면 앞으로 퇴임할 많은 대법관과 고위 법관들이 자신의 능력과 경륜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명예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니어판사 임명을 희망할 것”이라며 “최근 박보영 전 대법관이 시군법원 판사 근무를 자원한 것도 시니어판사의 취지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1월 대법관을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은 그해 9월부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시니어판사 제도가 도입되면) 전관예우의 해결책도 되고, 상고사건이 보다 신속히 처리돼 국민을 만족시킴으로써 사법개혁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라며 “시니어판사 제도를 도입하려면 약간의 법원 예산만 늘리면 된다. 우리 예산 당국은 사법복지에 너무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김현 변호사는 “선진국은 재판부마다 법정이 따로 있는 반면 우리는 법정이 부족해 재판부가 재판 날짜를 자주 잡기가 힘들다”며 “전관예우와 대법원 사건적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미국식 시니어판사 제도가 꼭 시행되기를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주제 발표하는 김제완 교수
주제 발표하는 김제완 교수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