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박정희 정권 때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농부가 유죄 판결 44년 만에 그리고 사망한 지 무려 27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인받았다.

광주고등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1만 4000평의 논을 소유하고 농업에 종사하는 대농인 백OO씨(1929년 출생)는 1975년 9월 21일 전북 옥구군 옥구면 양수장 앞에서 양수장 기사 등 5명이 있는 자리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말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벼 병충해가 발생해 피해를 입자 “논에 나락이 다 죽어도 박정희나 농림부장관이 한 게 무엇이냐”, “박정희 개XX 잘 한 게 무엇 있느냐”, “박정권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는 유신헌법에 근거해 발령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을 이유로 기소됐고 1976년 2월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백씨가 항소했는데 그해 6월 광주고등법원은 “1심 형량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고 형이 확정됐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공포됐던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1974년과 75년에 걸쳐 차례로 공포된 지 약 40년만이다.

헌재는 “긴급조치는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헌법 개정 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참정권, 표현의 자유, 집회ㆍ시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을 부정ㆍ반대ㆍ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유신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ㆍ발의ㆍ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유언비어를 날조ㆍ유포하는 행위 등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비상군법회의 등에서 재판해 처벌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헌 결정 이후 검찰은 2017년 10월 26일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직권으로 이 사건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고법은 지난 3월 19일 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재심개시결정을 해 확정됐다.

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태호 고법판사)는 6월 13일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백OO씨(1992년 12월 사망)에 대한 재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신헌법 제53조에 근거해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는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1979년 12월)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돼 위헌ㆍ무효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침해된 기본권들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춰 보도라도 위헌ㆍ무효”라고 밝혔다.

이는 2013년 4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1초기689) 내용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위헌ㆍ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해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이 규정한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때’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며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에는 적용법령의 위헌 여부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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