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버스기사가 19일 연속해 근무하고 세차하다 쓰러져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과 하급심(1심ㆍ2심)은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업무상재해로 판단했다.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대기 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또한 휴게공간이 설치돼 있지 않아 차량이나 주차장에서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대기시간’은 온전한 휴식시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A씨(60대)는 2015년 1월부터 전세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했는데, 그해 6월~8월 메르스 질병으로 행락객이 급감해 버스 운전업무를 하지 못하다가 메르스 질병 확산이 줄어든 2015년 8월 중순부터 다시 버스 운전업무에 종사했다.

이후 A씨는 체험학습, 관광 등의 수요가 한꺼번에 몰려 2015년 9월 15일부터 10월 3일까지 19일 동안 휴무 없이 계속 전세버스를 운전했다.

A씨는 2015년 10월 3일 오전 10시 15분경부터 4일 오전 1시 30분까지 기존에 해오던 전세버스 운전업무가 아닌 셔틀버스 운전업무를 했다. 차량 소재지에서 셔틀버스 운행장소로의 왕복 이동시간을 포함해 15시간 15분 동안 버스를 운전했다.

A씨는 이날 셔틀버스 운행을 마치고 셔틀버스를 운전해 집 앞에 도착해 버스를 그곳에 세워두고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다가 10월 4일 오전 7시 15분경 셔틀버스를 운전해 오전 8시 출근해 버스를 세차하던 중 쓰러져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사망했다.

이에 망인(A)의 배우자가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이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은 “장시간 대기시간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망인이 과중한 업무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전세버스를 운전했던 관계로 외부관광지 등 일정하지 않은 곳에서 대기했고, 대기한 장소에는 휴게실 등의 휴게공간이 설치돼 있지 않아 차량 또는 주차장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에 유족이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의 판단은 하급심과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4월 11일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대기시간, 휴게시간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단이어서 지난 4월 판결이지만 자세히 살폈다.

재판부는 “버스 운전기사는 승객들의 안전 및 교통사고의 방지를 위해 긴장하고 집중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적지 않은 정신적ㆍ육체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망인은 전세버스 수요의 갑작스러운 증가로 사망 전날까지 19일 동안 휴무 없이 계속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망 전날부터 1주일간은 사망 전 4주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인 47시간 7분을 크게 상회하는 72시간이나 근무하는 등으로 업무상 부담이 단기간에 급증함으로써 육체적ㆍ정신적 피로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망인의 근무시간에 대기시간이 포함돼 있기는 하나, 휴게실이 아닌 차량 또는 주차장에서 대기해야 하고, 승객들의 일정을 따르다보니 대기시간도 규칙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시간 전부가 온전한 휴식시간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망인은 사망 전날 전세버스 운전이 아닌 셔틀버스 운전 업무를 했는데, 양 업무는 운행 주기, 운행구간, 승객의 승차ㆍ하차 빈도 등에 큰 차이가 있었을 뿐 아니라 망인이 야간근무 3시간 30분을 포함해 15시간 넘게 운전을 했고, 사망 당일 새벽 1시 30분경 귀가한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오전 8시경에 출근해 버스를 세차하던 중 쓰러져 오전 9시 28분경 사망에 이른 일련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의 업무내용이나 업무강도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고 발병 당시에 업무로 인한 피로가 급격하게 누적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망인이 수행한 운전 업무 이외에 달리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아볼 수도 없으므로, 망인의 나이(61세), 흡연습관 등 망인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다른 위험인자를 고려하더라도 위와 같은 운전업무로 단기간에 가중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망인의 급성심근경색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원심은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원심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재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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