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조현병 환자의 범죄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고등법원 형사재판부가 자폐장애 범죄에 대해 ‘법에 따라 치료감호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국가기관에 치료감호법의 입법 목적에 맞는 치료감호시설을 설치 운영할 것을 촉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정신과적 범죄와 이에 따른 치료감호시설에 관해 이제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하는 주목할 만한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과 범죄사실에 따르면 A(20대)씨는 4세 때 국립정신병원에서 유사자폐 진단을 받고, 6세에 자폐 2급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중증도 자폐성 장애가 있는데, 조현병 증세가 동반되고, 강박장애가 있다. 사회연령이 7세 수준이다.

A씨는 2018년 3월 재물손괴 및 상해, 폭행 등의 행위에 대해 책임능력 결여를 이유로 검찰에서 ‘죄가 안 됨’ 처분을 받았고, 검사는 치료감호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8년 7월 “A씨의 폭력성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24시간 보호와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설’에 입소하는 것으로써 치료감호와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A씨의 어머니가 경제적ㆍ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아들이 사회 내에서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고 보살필 것을 굳게 다짐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검사의 치료감호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A씨는 2018년 7월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출소해 시설에 입소했다. 그러나 시설에서 소란을 피워 4일 만에 퇴소 당했다.

그런데 2018년 8월 A씨는 자폐성 장애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4세 아이에게 상해를 가하고, 이에 항의하는 피해아이 아버지의 얼굴을 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사는 A씨를 상해죄ㆍ폭행죄로 기소하고, 치료감호를 청구했다.

1심 재판은 배심원 7명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들은 A씨가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을 5:2로 배척하고,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했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A씨에게 벌금 100만원 및 치료감호의 필요성이 있다는 평결과 양형의견을 제시했다.

1심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8년 12월 배심원들의 평결을 받아들여 A씨에게 벌금 100만원 및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별다른 이유 없이 피해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점,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 피해자 측이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피고인의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행히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중하지 않은 점,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에 이른 점, 피고인과 어머니의 처지가 매우 곤궁한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 다음, 피고인의 나이, 성행,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여러 양형조건들을 종합해 피고인에 대한 형을 벌금 100만 원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A씨 측은 “1심이 선고한 벌금 100만원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특히 국선변호인은 “A씨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고, 어머니가 강한 치료 의지를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A에게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성과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치료감호명령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제13형사부(재판장 구회근 부장판사)는 5월 23일 “A씨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며 1심과 같이 벌금 100만원 및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2019노10)

양형부당에 대해 재판부는 “원심의 양형 판단이 재량의 합리적인 한계를 벗어났다고 평가되지 않고, 나아가 피고인이 법원에서 주장하는 양형부당의 사유는 원심이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하면서 이미 충분히 고려한 사정들인 점 등을 종합하면 원심의 양형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도 없다”며 항소 기각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판결의 집행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에 대해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치료감호시설을 설립 운영할 것을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치료감호법)에서 정한 ‘치료감호대상자’는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고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자를 말한다. 피고인에 대해 치료감호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형법 제10조 제2항(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에 따라 형이 감경되는 심신장애인에 해당하고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성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폐성 장애 등으로 인해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상해죄, 폭행죄를 저질렀고, 형법 제10조 제2항에 따라 형이 감경되는 심신장애인”이라며 “피고인에게 재범의 위험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에게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는지에 관해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유일의 치료감호소인 공주 치료감호소에는 자폐장애로 진단받은 사람이 수용돼 있기는 하나, 약물 복용 외에 자폐장애를 위한 언어치료 및 심리치료 과정이 운영되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실시한 공주 치료감호소 전문의는 ‘낯선 환경이나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반응하거나 공격성을 드러내는 등 무분별한 행동 양상을 보일 수 있다’라고 했으나, 공주 치료감호소에는 자폐장애의 특성을 가진 사람의 적응을 위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위 전문의는 ‘자폐장애 환자의 사회 적응력 향상을 위해 지속적인 특수재활치료, 교육 및 훈련 등이 필요하다’라고 했으나, 공주 치료감호소에는 이러한 특수재활치료 과정도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즉, 현재 국가가 치료감호법에 따라 설립ㆍ운영하는 치료감호소로는 공주 치료감호소가 유일한데, 여기에서는 자폐장애를 가진 피치료감호자에게 단순히 약물 복용을 지시하는 외에 사회 적응력 향상을 위한 다른 치료, 교육, 훈련 과정을 전혀 운영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인에게 치료감호를 명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법 규정에 부합하는 판단으로 보일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치료감호법에서 정한 ‘치료감호시설에서의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인 자유의 박탈에 그치는 것에 불과하며, ‘특수한 교육ㆍ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해 적절한 보호와 치료를 함으로써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복귀를 촉진한다’는 치료감호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A씨의 어머니는 “피고인을 치료감호소에 수용할 경우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증상이 악화될 것이므로, 다른 시설에 입소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약물 복용만으로는 피고인의 자폐장애를 호전시킬 방안이 되지 못하는데도 피고인에게 치료감호를 명하는 것은 향후 증세가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피고인 및 가족에게 더 가혹한 처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위와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며, A씨에게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A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실시한 공주 치료감호소 전문의는 “피고인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 자극에 대해 충동적으로 반응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공격 행동 등의 행동 이상 등을 보이는 ‘자폐장애’ 환자로 사료된다.”, “자폐장애의 경우 근본적인 완치방법은 아직 없다고 알려져 있다. 자폐장애 환자의 사회 적응력 향상을 위해 지속적인 특수재활치료, 교육 및 훈련 등이 필요하고, 공격 행동 등 정신증세 완화를 위한 정신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피고인의 정신증세의 정도가 민간정신병원, 민간의 단기보호시설에서 감당할 수 없어 강제퇴거 조치를 필요로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른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사회 내 처우로는 재범방지에 효과적이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피고인의 공격 행동 등 파괴적 행동의 감소를 최우선의 치료 목표로 한 치료감호처분이 재범방지를 위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감정했다

재판부도 “피고인에게는 수차례의 소년보호사건 송치 및 범죄전력이 있는데,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출소한 지 20일도 지나지 않아 범행을 저지른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어머니의 강력한 보호 의지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통한 재범방지 및 사회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전문수사자문위원으로 지정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피고인의 경우 정신과적인 치료와 법적인 책임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재판부는 “치료감호법에서 정한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란 치료감호대상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치료감호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그러한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현재 피고인과 같은 자폐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설 및 프로그램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치료감호의 필요성 자체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끝으로 “법원으로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에 대해 치료감호를 선고할 수밖에 없으나, 판결의 집행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에 대해 치료감호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치료감호시설을 설립ㆍ운영함으로써 적정한 판결의 집행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근래 조현병 환자의 범행이 잇달아 보도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고, 처벌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며 “그러나 조현병 환자나 피고인과 같은 자폐성 장애 환자들에게 형벌을 부과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말했다.

법원은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현재 그 가족들만 온전히 부담하고 있는 정신적ㆍ경제적 고통을 국가와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치료감호소를 확충하고 운영실태를 내실 있게 함으로써 재범방지와 사회복귀를 도모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판결은 법원으로서는 현행법에 따라 피고인에 대해 치료감호를 선고할 수밖에 없으나, 치료감호를 포함해 현행 교정교화정책 전반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기대하고 촉구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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