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남편의 동의에 따라 타인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시험관시술)으로 출생한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될까? 이에 관해 대법원에서 처음 다룬다.

종래 대법원은 별거, 해외거주 등 부부 간 동거의 결여라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만 친생추정 원칙을 부정할 수 있는 예외로 인정해 왔다.

대법원에 따르면 남편인 A씨와 아내 B씨는 결혼을 했으나 A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이에 A씨의 동의에 따라 1993년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시험관시술)을 통해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생각해 이번에도 부부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이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A씨는 둘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에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DNA) 검사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이 확인됐다.

1심은 “부인이 남편의 자식을 임신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해 원고(A) 패소 판결했다.

2심은 첫째 아이와 관련해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원고(A)가 동의한 이상 원고의 친생자로 추정되고,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는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한 것으로 선해하더라도, 원고가 동의한 이상 금반언의 원칙에 따라 친생부인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둘째 아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부부 사이의 동거의 결여뿐만 아니라 유전자형 배치의 경우에도 친생자 추정의 효력은 미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나, 이 사건의 경우 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모두 갖추어 원고와 둘째 아이 사이에는 양친자관계가 유효하게 성립되었고, 파양에 의해 양친자관계를 해소할 특별한 사정이 없으므로 이 소는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대법정
대법원 대법정

이에 A씨가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이 ‘친생추정’ 사건을 대법원장 및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에 회부하고, 5월 22일 오후 2시부터 대법원 청사 2층 대법정에서 공개변론을 실시한다.

공개변론은 2시부터 약 120분 동안 대법원 홈페이지, 네이버 TV, 페이스북 Live,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 방송중계 예정이다.

변론의 쟁점은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배우자인 남편이 동의해 출생한 자녀의 경우 민법 제844조 제1항에 따라 그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되는지, 아니면 친생자 추정의 예외가 인정되는지 여부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처음 다루어지는 사안이다.

또 부부 사이의 동거의 결여뿐만 아니라 유전자형 배치의 경우에도 친생자 추정의 예외가 인정되는지 여부인데, 친생추정의 예외 범위에 관한 기존 판례의 재검토 된다.

논쟁의 요지는 민법 제844조, 제847조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이 추정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친생부인의 소를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친생추정 제도는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정된 것으로서, 친생추정이 되지 않는다면 자녀가 혼인 중인 여성에게서 출생하더라도 일일이 남편의 자녀임을 증명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친생부인의 소는 원고적격과 제척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으므로, 이와 같은 제도 하에서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출생한 자녀가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한 경우에도 진실한 혈연관계를 회복할 수 없게 되는 등 불합리가 발생한다.

이에 종래 대법원은 부부가 동거해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 친생추정이 적용되는 것이고, 부부의 한쪽이 장기간에 걸쳐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는 경우 등 동서의 결여로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봐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해 왔다.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83년 7월 12일 선고(82므59)한 판결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형의 배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돼 친생추정의 근거 중 하나인 증명 곤란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었고,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AID) 등 새로운 형태의 임신과 출산 모습이 나타났으며, 친생추정 규정을 근거로 한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의 형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변화됐다.

이에 따라 친생추정을 과학적ㆍ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유전자형의 배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거나(혈연설), 이에 더해 가정의 파탄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가정파탄설)는 등 기존 법리와는 다른 요소를 기준으로 친생추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이미 형성된 사회적 친자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기존 법리가 타당하다는 견해도 여전히 많다.

즉 종래 판례의 법리에 따르면 제3자의 정자에 의한 임신ㆍ출산, 유전자형 배치 등이 확인됨으로써 혈연관계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친생부인의 소의 제척기간이 지난 경우에는 더 이상 친생자 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가 타당한지 문제되는 것이다.

기존 법리는 판례에 의해서 형성돼 장기간 법률상 친생자 관계 형성의 기준이 돼 왔으므로 그 변경 여부는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는 가족관계의 형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부양, 상속 등의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새로운 임신과 출산 모습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ㆍ법적ㆍ의학적 문제와 관련 제도에 미칠 수 있는 파장도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 모습, 기존 법리가 변경될 경우 가족관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에 관해 알아보고 일반 국민의 의견을 포함해 각계의 의견을 널리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대법원은 봤다.

이에 대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 법무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한국민사법학회, 한국가족법학회, 한국가족관계학회, 한국헌법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한국젠더법학회, 한국공법학회, 한국법철학회,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다.

또한 이날 공개변론에 민사법ㆍ가족법 전문가인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차선자 교수와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현소혜 교수를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불러 친생추정의 법리와 공공의 이해관계에 관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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