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경찰, 저유소 화재 피의자에 자백강요”…진정 낸 민변 반응은?
인권위 “경찰, 저유소 화재 피의자에 자백강요”…진정 낸 민변 반응은?
  • 신종철 기자
  • 승인 2019.05.2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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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과정에서 경찰관이 이주노동자인 피의자에게 반복적으로 ‘거짓말 아니냐’고 하거나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헌법 제12조에서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이름 일부,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의 종류를 언론사에 공개해 신원이 주변에 드러나도록 한 것은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에 소속 경찰서장에게 해당 경찰관에 대해 주의조치하고, 향후 유사사례의 재발방지를 위해 소속 직원들에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과정에서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 확보를 위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또 지방경찰청장에게는 직원들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8년 10월 7일 발생한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피의자신문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거짓말 하는 거 아닌가요?’라면서 진술을 강요했고, 언론사 기자들에게 피해자의 이름,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의 종류를 기재한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피해자는 2018년 10월 8일 긴급체포 된 이후 28시간 50분(열람시간 포함)동안 총 4차례의 피의자조사를 받았는데 피의자신문조서 기록상으로는 경찰관이 총 62회(1차 1회, 2차, 0회, 3차 5회, 4차 56회)에 걸쳐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말이 아니냐고 되묻거나 ‘거짓말하지 말라’ 혹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4차 피의자신문의 영상녹화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찰관이 피해자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총 123회에 걸쳐 거짓말 발언을 했다. 이를 유형별로 정리하면 ▲피해자가 이미 모순점을 지적하는 질문에 답변을 했음에도 다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거나 ‘거짓말 아니냐’고 반복하는 경우가 60회 ▲거짓말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변했음에도 다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거나 ‘거짓말 아니냐’’고 반복하는 경우가 20회 ▲모순점 지적과 무관하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거나 거짓말이 아니냐’고 반복한 경우가 32회로 확인됐다.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위원장 최혜리)는 헌법 제12조 제2항은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있고, 형사소송법과 범죄수사규칙의 관련 규정을 판단기준에 비추어보면, 경찰관이 피의자신문과정에서 진술을 강요하거나 진술의 임의성을 잃게 할 염려가 있는 언동을 함으로써 피의자의 진술할 권리, 진술을 거부할 권리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그런데 경찰관의 거짓말 발언은 피해자가 피의자로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진술할 때나 피의자 진술 자체를 부정하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으로 현행 형사사법체계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신문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의자신문은 체포 구속 여부와 무관하게 임의조사에 해당하고, 이 과정에서 설사 명백한 증거가 있더라도 피의자 진술과 배치되는 객관적 진실은 그 자체로 피의자 진술을 탄핵하는 증거로서 가능한 것이지, 피의자의 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를 근거로 압박과 강요를 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없다고 봤다.

아울러 인권위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고, 언론사의 취재 등으로 국민에게 상당히 알려진 사건으로 피의사실 공표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피의자의 이름,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의 종류까지 상세하게 공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국가 주요기반시설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이지, 공적인 인물이 아닌 이주 노동자의 신상정보라고 보기 어렵고, 설사 국민적 관심사가 개인의 개인정보에 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수사기관 스스로 무죄추정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공표행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관의 피의자 신상정보 등의 공개로 인해 피해자 개인은 물론이고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무관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실화의 가능성에만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게 해 안전관리 부실 문제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도 초래했다”는 것이 인권위의 판단이다.

◆ 민변 “인권위 결정 환영하나, 피의자 ‘통역을 받을 권리 침해’ 미인정은 아쉽다”

이에 진정을 제기했던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이날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 경찰의 피의자에 대한 진술강요, 사생활 침해 등 인권침해를 인정한 국가인원위원회 결정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민변은 “경찰의 진술강요는 수사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특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경찰 조사는 대부분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후의 형사 절차에서 자백을 배척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고, 형사절차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방어권행사는 유명무실해 왔다”면서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압적 수사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변은 “경찰은 2018년 10월 8일 ‘북부청 홍보계 취재안내 2보’라는 제목으로 피의자의 성명 일부,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의 종류를 기재한 문자메시지를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냄으로써 피해자의 신원이 언론에 공개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변은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서 아쉬운 점은 피의자의 ‘통역을 받을 권리 침해’가 인정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변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 당시 피의자에게 ‘한국말을 잘하는데 왜 통역이 필요하냐’라고 반문했고, 결국 피의자는 통역 없이 수사를 받을 뻔했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통역의 존재는 필수적인 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수사과정에서부터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없는 점, 수사과정에서 전문 통역인의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인 점을 고려할 때, 피의자의 ‘통역을 받을 권리’ 침해 역시 중요한 쟁점이라고 짚었다.

이렇게 아쉬움을 표시한 민변은 “현실에 존재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여러 잘못된 수사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나아가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와 영상을 대조했을 때 부적절한 삭감, 수정, 변경 조치가 다수 확인되는데 이에 대한 상세한 언급이 없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변은 “현재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은 검찰조사를 마치고 검찰의 기소여부를 기다리고 있다”며 “우리는 이제라도 검찰조사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이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날린 풍등’에 대한 집중이 아닌, 우리 사회의 ‘부실한 안전관리’를 개선하는데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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