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조정 안건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학회는 “경찰의 1차적 수사종결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검찰의 수사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 교수, 법학교수, 변호사, 판사, 검사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학회 임원명단에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을 역임한 변호사들이 고문으로 이름이 올랐고, 기관부회장으로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당연직으로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이 포함돼 있다. 학회 각 분야 이사에도 검사장들과 검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학회는 “어떠한 정파적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우리의 의견이 검찰개혁을 훼방하거나 지연하려는 의도로 곡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대학에서 형사소송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의 입장에서 수사권조정이 형사절차의 본질을 훼손하고 원래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염려하는 진심에서 나오는 호소”라고 밝혔다.

10일 발표한 ‘수사권조정 논의에 대한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입장’에서 “우리는 형사소송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로서 최근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수사권조정 논의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해 왔다”며 “그런데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입법과정은 절차와 내용에 있어 우리의 소망과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학회는 “이에 국민과 국가의 앞날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떨칠 수 없어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며 “이는 결코 어느 일방을 편들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형사사법제도가 수립되기를 바라는 학자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장문을 낸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첫째 “절차적 정당성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형사사법제도는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다. 현재 논의되는 내용은 이러한 제도에 근본적인 변혁을 시도하는 것으로서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바탕 위에서 입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절차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며 “정당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마련된 입법은 가사 그것이 내용적으로 수긍할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절차적 정의를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에 반해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컨대,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할 수 없는 두 분야의 특정 법안을 함께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가져가는 것은, 국가의 근간인 형사사법제도를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봤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두 번째로 “경찰의 1차적 수사종결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회는 “수사권조정은 사법절차의 근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소제기 여부에 관한 결정은 기소뿐만 아니라 불기소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현행 형사소송법은 준사법기관인 검사로 하여금 하도록 하고 있다”며 “기소뿐만 아니라 불기소 역시 사법적 결정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양자는 논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므로, 법관과 유사한 자격과 신분보장이 되는 검사가 준사법기관으로서 수사종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탄핵주의 형사소송구조에서 바람직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경찰에게 불송치결정이라는 일종의 불기소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법절차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나아가 검사의 개입 없는 경찰의 불송치결정은 독자적 수사종결권으로서 통제받지 않은 권력으로 남용될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학회는 “그동안 검찰이 비판받아 온 문제의 핵심도 바로 이 점에 있었다. 이제 경찰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그러한 위험을 단순히 이전하는 것이거나, 더욱 키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현재 통제방안이라고 제시된 것들은 미흡하거나 실질적으로 공허해 이러한 위험을 없애지 못한다”고 봤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경찰의 수사종결권은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한다는 수사권 조정의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고,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방안”을 촉구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수사권조정 논의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는 주로 검찰의 직접수사와 관련해 지적돼 왔다”며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사권조정 방안에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등으로 제한하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단순히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유보된 직접수사권은 정치적으로 민감할 여지가 많은 사건들에 대한 것으로서, 여기에 검찰의 수사권이 집중됨으로써 수사의 비례성이 약화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따라서 검찰의 직접수사권의 제한이나 범위 설정에 관한 논의는 반드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관한 논의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네 번째로 “수사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을 촉구했다.

학회는 “그동안 검찰의 각종 권력남용과 비리 문제는 검찰에 집중된 권력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며 “따라서 검경 수사권조정 논의에 앞서 검찰권 남용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런데 이러한 통제장치는 검찰의 권한을 일부 분리해 공수처나 경찰에 이전한다고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 이전은 문제의 전이나 악화를 가져올 뿐이다”라면서 “수사권이 어느 기관에게 있든 수사권과 각 기관 수사권의 총량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통제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이에 관한 논의가 수사권 분산 논의에 앞서 이루어져야 비로소 수사권 분산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현재의 수사권조정 논의는 하나의 기관에 집중되었던 권한이 또 다른 기관으로 이전되는 것일 뿐, 각각의 기관이 더욱 공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거나, 견제장치가 더욱 강화되었거나, 이를 통해 기본권이 더욱 보장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자칫 검사의 공소권 행사는 더욱 부실해지고, 준사법적 통제기능은 더욱 약화되는 한편, 다른 기관에게 이전된 수사권한은 통제장치 없이 남용될 염려가 더욱 커졌다”며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우리는 검찰개혁이 시대적 과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검찰개혁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며 “우리의 의견이 곧 검찰개혁을 훼방하거나 지연하려는 의도로 곡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회는 “또한 어떠한 정파적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우리의 입장은 형사소송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의 입장에서 수사권조정이 형사절차의 본질을 훼손하고 원래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염려하는 진심에서 나오는 호소일 뿐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수석부회장은 “이번 수사권조정에 대한 입장문 발표는, 대학에서 형사소송법을 강의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서, 국민의 인권과 관련된 법안은 좀 더 신중한 처리를 당부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순수한 학자의 양심이 곡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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