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사업주가 개최한 회식 후 음주운전을 한 동료직원의 차량에 탑승했다가 교통사고로 인해 상해를 입은 경우 ‘업무상재해’에 해당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가설구조물 해체 업체 소속으로 공장 건설현장에서 비계공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18년 1월 11일 근무를 마친 후 직원들 10여명과 함께 이천시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 회식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이후 A씨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동료 직원(B)이 운전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동승했다. 그런데 B씨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고속도로 굴다리 옹벽을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냈다.

이로 인해 A씨는 외상성 쇼크, 뇌진탕, 경추 및 흉추의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이에 A씨는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2018년 7월 “회식은 퇴근 이후 근로자의 자율의사에 따라 업무종료 후 저녁식사(음주 포함)가 이루어져 업무의 연장이라 볼 수 없으며, 교통사고는 동료근로자가 음주한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운전을 제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승해 발생한 교통사고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 결정을 했다.

이에 A씨는 “회식은 사업주가 주최한 것으로 사회통념상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따라서 회식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은 이상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이 업체는 사장과 소속 근로자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업체가 임차한 숙소에 거주하면서 현장으로 출퇴근을 했다. 사장(P씨)은 직원들의 출퇴근을 위해 자신의 차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했고, A씨는 이 숙소에 거주하면서 동료 직원이 운전하는 차량을 이용해 매일 출퇴근을 해왔다.

당시 사장 P씨는 직원들에게 회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직원들은 근무를 마친 후 차량을 이용해 오리백숙 등의 요리와 주류를 판매하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회식 자리에는 10명 이상의 직원들이 참석해 술을 마셨고, B씨도 소주 1병반에서 2병 정도를 마셨다. 회식비용은 사장이 모두 부담했다.

회식이 끝난 후 사장은 직원 B씨에게 차량의 스마트키를 건네주었고, B씨가 운전석에 타고 다른 직원들도 탔다. 이후 교통사고가 났다.

한편, 검찰은 교통사고를 야기한 B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위험운전치상), 도로교통법 위반죄(음주운전)로 기소하고, B씨에게 스마트키를 건네 차량을 운전하도록 한 사장은 음주운전 방조죄로 기소했다. 차량에 동승한 A씨 등은 음주운전 방조죄로 기소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방진형 판사는 최근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재해를 인정하라”며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청구소송(2018구단70168)에서 A씨의 손을 들어주며 승소 판결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방진형 판사는 “P씨가 직원들에게 회식을 먼저 제안했고, 직접 식당을 예약했으며, 회식비용을 전부 부담했던 사정을 고려해 보면, 회식의 주최자는 업체 사장인 P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근로복지공단은 사장(P씨)이 직원들에게 회식에 참석하도록 강제하지는 않았다거나, 회식에 참석한 시간이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회식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저녁식사 자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 판사는 “P씨가 먼저 직원들에게 회식을 제안했고 실제로 직원 대부분이 P씨의 지시에 따라 회식에 참석했던 점 등을 종합하면, 이 회식은 사회통념상 그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공단이 주장하는 사정들만으로는 이 회식이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가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라목에서는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사고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제37조 1항 1호 가목에서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를 출퇴근 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방진형 판사는 “P씨가 평소에도 직원들의 출퇴근을 위해 이 사건 차량을 제공해 왔던 점, 원고는 항상 동료 직원이 운전하는 이 차량을 이용해 건설현장까지 출퇴근을 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차량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규정된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에 해당하고, 이 교통사고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에 발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또 “이 회식은 사회통념상 노무관리 또는 사업 운영상 필요에 따라 개최된 업무상 회식으로서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사업주가 주관한 행사’라고 봄이 타당하고, 원고가 회식을 마치고 숙소로 귀가하는 행위는 통상적인 출퇴근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방진형 판사는 “원고가 단순히 사고 차량에 동승한 행위는 정범인 B씨로 하여금 물리적으로 음주운전을 용이하게 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고, 또한 그로 인해 B씨의 범행결의가 강화됐다거나 이미 이뤄진 범행결의에 대한 부담을 완화시켰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따라서 원고의 동승행위는 형법상 방조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설령 원고의 행위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방조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통사고의 간접적ㆍ부수적 원인이 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이 교통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며, 교통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어디까지나 B씨의 음주운전 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방 판사는 “원고에게도 술에 취한 B씨가 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한 과실이 있기는 하지만, 원고의 행위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근거가 없는 이상 원고의 과실이 교통사고와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정도에 이른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방진형 판사는 “결국 이 교통사고는 업무상 사고 내지 출퇴근 재해에 해당하고, 교통사고가 원고의 범죄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발생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가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은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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