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20년 동안 뇌병변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부양해 오던 효자 장남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돼 처지를 비관해 자동차에 태우고 함께 바다에 빠져 자살하려다 아버지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들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됐다.

대전지방법원 판결문과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안타까운 사연은 이렇다. 장남 A(40대)씨는 1998년경 아버지(70대)의 지병을 이유로 군대를 의가사 제대하게 된 이후 아버지를 모시고 생활하던 중 2004년 혼인했다.

2005년 10월 뇌병변 4급 장애인으로 등록된 아버지를 부양하며 생활하던 A씨는 아버지 부양문제와 사업실패로 인한 채무 증가 등으로 아내와 사이가 급격히 악화돼 결국 2014년 이혼했다.

A씨는 사업실패 등으로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되고, 버는 돈은 이자변제로 모두 소비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 상태가 악화됐다. 그러다 작년 7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제안을 받고 자신 명의 체크카드를 넘겨준 일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그러자 A씨는 가족관계가 파탄난 점과 급격히 불어난 채무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점, 장애를 앓는 아버지를 더 이상 부양할 능력이 없게 된 점, 범죄를 저질러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된 점에 대해 자신의 삶을 비관했다.

이에 A씨는 물속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차량에 태운 후 함께 바다에 빠짐으로써 아버지를 살해하고 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마음먹게 됐다.

실제로 A씨는 2018년 8월 17일 자살에 대한 두려움과 아버지를 살해한다는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소주 2병을 마셨다.

그런 다음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돈도 없고 힘들어 1년 넘게 고민하였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아무 죄 없는 아버지는 내가 모셔간다. 이제 잘 걷지도 못하니 OO야 뒷정리 빨리 끝내고 나는 바다에 뿌려줘라”는 유서형식의 문자메시지를 동생들 및 전처에게 발송했다.

A씨는 이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버지에게 동생들이 기다리니 갈 곳이 있다며 조수석에 태우고 사전에 답사해 놓은 태안군의 모 항구로 승용차를 몰고 가 바다로 고의 추락시켜 아버지를 익사로 사망케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자 A씨가 국민참여여재판을 희망해 배심원 7명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이창경 부장판사)는 지난 4월 29일 존속살해,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의 양형의견을 존중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배심원 7명 전원은 공소사실 혐의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고, 양형의견에서 배심원 3명은 징역 7년, 4명은 징역 8년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 앞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속에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은 수십 년 동안 뇌병변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친부를 장남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성심성의껏 봉양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리한 정상도 살폈다.

이어 “그러던 중 과도한 채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보이스피싱) 접근매체 양도로 인해 수사까지 받게 되자 자신의 삶을 비관하던 끝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홀로 남게 될 부친이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부친과 함께 생을 마감하기 위해 존속살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범행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한 점 때문에 피해자의 유족인 피고인의 동생들도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선처를 호소하고 있고, 피고인은 그동안 동종전과나 집행유예 이상의 전과가 없고, 특히 그동안 폭력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불리한 정상으로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절대적인 가치로서 우리 사회와 국가가 최선을 다해 보호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며 “특히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우리 사회윤리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고, 그러한 점을 고려해 우리 형법도 직계존속에 대한 살인죄를 보다 중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자신을 낳고 길러 준 친부를 살해한 행위는 우리사회의 근본가치 중의 하나인 인륜을 저버리는 것으로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고, 사회적 비난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한순간에 소중하고 존엄한 생명을 잃게 되었으므로 범행의 결과가 더없이 중대하고,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피해자가 느꼈을 정신적ㆍ육체적 고통도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당시 피해자는 고령인 데다 뇌병변장애로 거동까지 불편해 한밤중에 그저 피고인이 시키는 대로 차량에 탑승하고 차량이 바다에 추락한 후에도 피고인과는 달리 차량에서 전혀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사망에 이를 정도로 범행에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렇다고 당시 피해자의 건강상태가 피고인 없이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할 정도라거나, 피고인 등이 도저히 부양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악화된 상태였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므로, 피고인의 극단적인 선택에 공감하기도 어렵다”며 “피고인의 형제들인 피해자의 다른 유족도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한 속칭 보이스피싱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목적으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전자금융거래에 사용하는 접근매체를 함부로 양도한 것도 죄질이 좋지 않고, 피고인이 양도한 접근매체가 실제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으므로 그 또한 범행의 결과가 가볍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과 불리한 정상, 피고인의 연령, 성행, 범행 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의 양형조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배심원들의 양형의견을 존중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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