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현행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규에서 공무원ㆍ교원의 정치적 표현, 정당가입, 선거운동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은 헌법, 국제규약 및 해외사례, 그리고 과잉금지 등 기본권 제한에 관한 법리에 비추어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국회의장에게, 공무원ㆍ교원이 직무와 관련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또한 인사혁신처장, 행정안전부장관, 교육부장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에게는 공무원ㆍ교원의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관련 소관 법률 조항 및 하위 법령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월 ‘2007∼2011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에서 정부에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을 정비해 공무원ㆍ교원의 정치활동을 일정 범위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또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 뤼는 2011년 6월 공무원ㆍ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적용위원회(CEACR)는 2015년과 2016년 2회에 걸쳐 초ㆍ중등 교사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자 정부는 모두 수용하지 않았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OECD 국가들의 입법례 등을 제시하면서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당 가입 및 활동, 선거운동 참여 등을 허용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정당법,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등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논의에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2018년 4월 12일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사법처리 중단 및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의 보장을 위한 관련 법률의 개정을 요구”하는 집단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인권위는 해당 진정을 국회의 입법에 관한 것으로 각하했다. 그러나 공무원ㆍ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및 확대를 위한 국가인원위원회와 국제사회의 권고가 수차례 있었음을 감안할 때, 현행 공무원ㆍ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고 있는 관련 법률 등이 공무원ㆍ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책적으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무원ㆍ교원이 공직수행의 담당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기본권 주체가 됨은 헌법 및 국제규약, 판례 등에 비추어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일본을 제외한 미국 등 주요 OECD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표현행위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표현행위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표현행위의 주체가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인권위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행위를 포괄적으로 강하게 규제하고 있는데,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와 관계없이 시민적 지위에서 행한 정치적 표현행위까지 과도하게 제한해, 발전된 민주주의국가의 법리, 정치제도와 사회ㆍ문화적 관용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따라서 공무원 개인 또는 집단, 직무 관련성 유무를 불문하고 매우 광범위하게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행 법규들은 재검토 될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따른 각종 규제법규의 적법 여부 판단에 있어 ‘현존하고 명백한 위험의 원칙’ 등 기본권 제한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제4항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7조 제2항은 공무원이 직무와 무관하게 시민적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보호법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당활동 및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원조하거나 지지 또는 반대하는 일체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인권위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전면적 금지는 그 자체로 과잉금지원칙 위반의 소지가 상당한바, 공무원이 시민의 지위에서 행하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허용하는 방안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신분에 따른 영향력을 행사함이 없이 시민의 지위에서 행하는 개인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허용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이 존재한다는 점과, 공무원ㆍ교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반드시 공무원ㆍ교원의 정치 참여를 전면적으로 금지해야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공무원ㆍ교원의 개인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제4항(지방공무원법 제57조 제4항)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7조 제2항(지방공무원 복무규정 제9조 제2항)은 침해의 최소성 및 수단의 적합성 등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봤다.

인권위는 “표현의 자유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원칙’ 등 엄격한 기본권 제한 심사 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사회적 해악을 발생시키거나 개인의 명예감정을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있거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명백한 행위에 대해서만 제한해야 함에도, 불명확한 규정에 근거해, 공무원의 직무 관련성 및 직위 등에 따른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고 규율대상을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공무원 사회에 대한 신뢰 실추라는 주관적 우려 등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결국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은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라는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법집행기관의 통상적 해석을 통해서는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기가 어렵고, 법관의 해석에 의해 법 위반 여부가 판단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따라서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가기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책무 또한 있으므로, 공무원이 시민의 지위에서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국가기관 또는 공공기관이 결정한 정책을 반대하더라도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거나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킨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오히려 공무원이 공무원간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국가의 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국가정책에 대한 검증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바, 공무원의 시민적 지위에서의 국가정책에 대한 집단적 정치적 표현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맹목적인 정책 집행 담당자가 아닌 적극적인 권력통제자 및 내부감시자로서의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고, 또한 현대 복지국가에 있어 공무원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공무원 수는 현재 110만 명 정도에 이르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수의 국민에 대해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작동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의 공직사회 내부에 대한 비판, 국가 정책과 업무 추진 방식에 대한 비판 등의 행위를 쉽게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금지한다는 명분하에 징계 및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결국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행위 일반에 대한 과잉제한”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공익과 사익의 균형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단지 집단성을 갖춘 정치적 표현행위 일체가 금지되는 것으로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 제2항, 제27조 제2항(지방공무원 복무규정 제1조의2 제2항, 제9조 제2항)을 축소해석 하고, 공무원 징계령 및 교육공무원 징계령 등을 통해 징계토록 하는 것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공무원ㆍ교원 집단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아울러 “현대 민주국가의 국가기능의 변화와 내부감시자로서의 공무원의 역할 등을 종합해 보면, 공무원ㆍ교원의 정당 가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수단의 적합성 및 최소 침해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들이 정도는 다르더라도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허용하고 있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요구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는바, 더 이상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정치제도와 사회ㆍ문화적 관용의 확장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인권위는 “따라서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 없이 시민적 지위에서 직무 외 개인적ㆍ사회적 생활영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므로, 공무원ㆍ교원의 선거운동에 대한 제한 규정은 공직선거법 제85조 제2항으로 단일화하고,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제4호는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소수의견으로 “공무원ㆍ교원에 대해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므로 이에 반하는 관련 법률의 개정은 권고해야 하나, 공무원ㆍ교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규정 및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법하며, 최소한의 침해적인 수단을 택하는 등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므로 현행 법률 규정이 적정해 개정을 권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는 의견이 있었다.

[로리더 신혜정 기자 shin@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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