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시각장애인이 대리석으로 만든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로 다친 사건에서 법원은 지방자치단체에게 60%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대구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급 시각장애인 A씨는 2015년 10월 15일 오후 4시쯤 대구의 모 지자체 소재 도시철도 역사 부근 인도에서 남동생의 안내를 받으며 보행하던 중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에 걸려 넘어졌다.

이 사고로 A씨는 허리 등에 골절상을 입어 병원에서 12주 진단을 받았다.

대리석을 만든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사진은 이 사건과 유사한 말뚝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사진은 이 사건과 유사한 말뚝이다.

그런데 이 말뚝은 밝은 색의 반사도료 등을 사용해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설치돼 있지 않았고, 이 말뚝의 높이는 80cm에 미달했으며 지름도 20cm를 초과했다.

또한 이 말뚝은 보행자의 충격을 흡수하기 어려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그 전면에 시각장애인이 충돌 우려가 있는 구조물이 있음을 미리 알 수 있도록 하는 점형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말뚝을 설치ㆍ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이 사고로 인해 A씨가 골절(폐쇄성)의 상해를 입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골절은 기왕증이고 이 사고로 입은 상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지차체가 손해배상책무가 800여만원을 초과해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이었다. 1심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2018년 6월 지자체가 A씨에게 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인 대구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박연욱 부장판사)는 최근 “말뚝 사고와 관련해 원고(지자체)의 피고(A)에 대한 채무는 손해 150만원, 위자료 1000만원의 합계 1150만원을 초과해서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판결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2018나23163)

재판부는 “이 말뚝은 교통약자법과 시행규칙의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에 관한 규정을 위반해 보행안전시설물로서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설치 및 관리의 하자가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기왕증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A)는 사고 발생 후인 2015년 12월 1일 골절(폐쇄성) 등으로 인해 12주간 진단을 받은 점, 피고 이 사고로 넘어지면서 허리 부분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가 2013년 4월부터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2년 6개월가량은 문제 부위의 골절(폐쇄성)로 치료를 받은 사실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다른 골절도 이 사고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따라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배척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피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말뚝은 전면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형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으로 교통약자인 피고가 말뚝의 설치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워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고 현장의 인도를 통행할 수 없게 돼 있었던 점, 이 말뚝은 밝은 색의 반사도료 등을 사용해 설치되지 않아 피고를 인도하던 동생도 설치 사실을 쉽게 식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이 말뚝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피고가 부딪혔을 때 충격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고, 말뚝의 높이가 80센티미터에 미달하고 지름도 20센티미터를 초과하고 있어 피고가 말뚝을 충돌할 당시 쉽게 넘어지면서 지면에 강하게 부딪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고로 1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원고는 말뚝을 설치 관리하면서 교통약자법과 시행규칙의 관련 규정을 위반해 영조물의 위험성에 비례한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말뚝을 설치 관리하는 원고의 사고 발생에 관한 책임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지자체의 손해배상책임 일부를 제한했다.

재판부는 “이 사고 발생에는 피고를 인도해 가던 동생이 전방을 잘 살피지 않고 피고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잘못도 상당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허리 부분에 지병이 있어 상당히 빈번하게 치료를 받고 있었고, 이러한 사정이 사고로 피고가 입은 상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사고로 인한 원고의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위자료와 관련,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고로 입은 요추체의 골절로 옥외근로자 기준 영구적인 노동능력 상실률 29%의 후유장애를 입게 된 점, 시각장애가 있는 피고가 이 사고로 요추체 골절로 인한 후유장애를 더해 갖게 된 점, 기왕증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고에 관한 피고의 위자료는 1000만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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