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변호사 증원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여달라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의 갈등이 정면으로 출동했다. 변호사들과 예비법조인 로스쿨생 즉 법조 선후배 간의 마찰이다.

전통의 법조인 선발 방식이었던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현재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전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변시)에 합격해야 법조인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2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정문 앞에서 ‘유사직역 철폐, 법률시장 정상화’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집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이찬희 변협회장을 비롯해 80여명의 변호사들이 참석했다.

대한변협은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당시의 약속과 달리 유사직역 통폐합 및 축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유사직역에서 변호사 고유업무인 소송대리권까지 침탈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규탄하는 한편, 무조건적인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증가는 많은 문제가 있고 적정한 법조인 배출 규모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강력히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집회를 하고자 한다”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

그런데 변협의 기자회견 바로 옆에서는 경찰의 폴리스라인(POLICE LINE)을 두고,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 등으로 구성된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공동대표 이경수, 법실련)와 법학전문대학원원우협의회(회장 최상원, 원우회) 20여명이 자리를 잡고 맞불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왼편은 변협이 집회를 하고, 가운데 경찰 폴리스라인 경계로 우측에 로스쿨 학생들이 맞불집회를 하고 있다.
왼편은 변협이 집회를 하고, 가운데 경찰 폴리스라인 경계로 우측에 로스쿨 학생들이 맞불집회를 하고 있다.

경찰도 혹시 있을지 모를 충돌사태를 대비해 집회현장 곳곳에 많은 경찰인력을 배치해 뒀다.

학생들은 “사상최초! 그 어떤 전문직도 후배 숨통 조이는 선배는 없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변호사 증원을 반대하는 대한변협에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변협이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하자, 한상균 강원대 로스쿨(8기) 학생은 마이크를 통해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가 부족하다”며 변협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며 먼저 시작했다.

한상균 강원대 로스쿨 학생
한상균 강원대 로스쿨 학생
로스쿨 학생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이찬희 변협회장
로스쿨 학생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이찬희 변협회장

변호사들 앞으로 나와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하려던 이찬희 변협회장은 로스쿨 학생들이 목청을 높이는 강력한 항의가 담긴 맞불집회로 제대로 발언하기가 곤란해지자 “바쁜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면서 말하자”고 제안했고, 법조선배로서 학생들에게 먼저 발언권을 양보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대표학생의 발언을 경청한 이찬희 변협회장은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기주장을 잘 설득시키는데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변호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면서 “앞으로 미래의 법조인이 될 우리 로스쿨생들도 어느 한 주장 말고 상대방의 주장도 같이 듣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찬희 변협회장
이찬희 변협회장

이 변협회장은 “오늘 이 자리는 변호사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게 아니다”면서 “우리사회가 그동안 많은 혼란을 딛고 원칙을 찾아가자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양승태) 사법농단에 대한 전국 변호사 시국선언도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들은 전부 우리사회가 원칙대로 돌아가자 라는 그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말씀하신 (학생) 분들께서 로스쿨을 입학하기 전, 지금 로스쿨 7기들이 1학년일 때 저는 2015년~2016년 겨울에 로스쿨을 지지하면서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로서 로스쿨생들과 함께 여의도와 과천에서 그 추운 겨울을 함께 보냈다”고 밝혔다.

로스쿨 재학생들은 여의도와 과천에서 2015년 법무부의 사법시험 폐지 유예를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는데, 당시 이찬희 변호사는 함께 참여했다.

이찬희 변협회장은 “왜냐. 그 당시 저희가 생각할 때 이미 폐지하기로 한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을 흔들지 말고 제도를 유지하자라는 신념에서였다. 지금 여러분들이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의 일이다”라면서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 방금 학생대표가 말한 것처럼 이제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런 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왜냐 종전에 반대 입장에 있던 변협 집행부가 아니라, 로스쿨을 바로 세우고 로스쿨이 원칙대로 운영되기를 바라는 그런 신념이 있는 집행부가 변협과 서울회를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변협회장은 “(학생대표가) 아까 말씀하실 때, 지금 우리가 처음 유사직역의 정리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난 번 김현 변협회장의 집행부와 제가 있었던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집행부는 유사직역의 문제가 로스쿨의 도입취지와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다”고 반박했다.

특히 “여러분들의 답답한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저는 2015년과 2016년 겨울에 과천과 여의도 광장에서 (로스쿨) 여러분들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겨울에 대한변협회장 선거를 하면서 전국에 있는 모든 변호사사무실을 다 방문했다. 여러분, 선배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그렇게 꿈꾸는 변호사가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목격을 하십시오”라고 목소리를 높여 호소했다.

그는 “단지 지금 내가 편하고자, 아니면 지금 내가 당장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자 하는 것 보다, 좀 더 큰 틀에서 우리 법조계가 바로 가고 로스쿨이 바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로스쿨 학생들의 목청도 높아졌다.

이찬희 변협회장은 “이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숫자를 조금 늘리고 줄이고 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원칙을 바로 잡아가는데 로스쿨 도입의 취지가 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며 “이제는 정말 국민으로부터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다양한 경력을 가진 법조인들로 법률서비스를 충족하겠다라는 취지에서 도입한 것이다. 즉 비법률전문가가 아닌 변호사로 하여금 법률서비스를 받게 하겠다는 취지로 로스쿨이 도입됐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여러분 이제 로스쿨 도입 취지를 살리는 과정에 로스쿨 재학생과 기존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뿐만 아니라 모든 변호사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때 집회를 개최한 로스쿨 학생들의 반발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고성으로 발언에 방해를 받게 된 이찬희 변협회장은 “여러분, 우리 (돌아가면서 말하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법조인으로서 첫 번째 신뢰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꿋꿋이 발언을 이어갔다.

이 변협회장은 “로스쿨 제도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 대한변협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와 법무부 이 기관들 간 상설협의체를 만들어서, 로스쿨을 바로 세우고 우리 법조계를 바로 세우는 시작을 제대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변협이 앞장서도록 하겠다”며 “오늘 그런 의미에서 문제제기를 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학생들에게 “앞으로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전체를 바라보는 큰 틀에서 우리사회와 법조계가 원칙을 찾아가는데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이찬희 변협회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전국지방변호사협의회 김용주 회장이 나와 자유발언을 하고, 왕미양 대한변협 사무총장이 지난 19일 대한변협이 발표한 <합격자 수에 일희일비 말고 로스쿨도 유사직역 정리에 동참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성명서 낭독하는 변협 왕미양 사무총장
성명서 낭독하는 변협 왕미양 사무총장

이어 변호사들은 “유사직역 통합하라”, “법조인력 바로잡자”, “무분별한 변호사 증원 반대한다”고 삼창을 한 뒤 해산했다. 구호를 선창한 변호사는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의 의지를 전달해 달라”며 목소리를 크게 외쳐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삭발한 법실련 이경수 대표와 전남대 로스쿨 7기생 양팔구씨
이날 삭발한 법실련 이경수 대표와 전남대 로스쿨 7기생 양팔구씨

이때 변협 집회 바로 옆에서 로스쿨 학생들은 “합격자수 축소 주장 당장 중단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항의하는 양팔구 로스쿨생
항의하는 양팔구 로스쿨생

특히 법실련 이경수 대표와 전남대 로스쿨 7기생 양필구씨가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를 촉구하는 삭발식을 거행하며 선배 변호사들을 강력 비판했다. 양필구씨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고통 받는 선후배들의 목소리를 알리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삭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삭발 준비하는 이경수 대표와 양팔구씨
삭발 준비하는 이경수 대표와 양필구씨

이경수 대표는 삭발 후 “이찬희 대한변협회장은 로스쿨을 그만 괴롭혀라”는 성명을 낭독했다.

이 대표는 “로스쿨은 사법시험의 폐해를 극복하고 교육을 받은 누구나 변호사가 도리 수 있도록 해 사법의 민주화를 위해 탄생했고, 다양한 전공과 경험에 기반한 전문적 변호사들을 배출하고자, 즉 의료분쟁을 의살출신의 변호사가, 학교분쟁을 교사출신의 변호사가, 노무ㆍ세무ㆍ특허와 관련된 분쟁을 노무사ㆍ세무사ㆍ변리사 출신 변호사가 담당하거나, 또는 각 관련 분야들을 심화해 로스쿨에서 공부한 변호사가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이 보다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회적 바람이 담겨 있었던 것”이라고 로스쿨 취지를 설명했다.

법실련 이경수 대표
법실련 이경수 대표

이경수 대표는 “기득권과 특권을 수호하고자 신규 법조인을 최소로 배출시키려는 대한변호사협회와 그에 편승한 법무부에 의해 변호사시험은 현재 선발시험으로 운용되고 있고, 이에 따라 평생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이른바 ‘오탈자’가 441명에 이르렀다”며 “이러한 현실 앞에 로스쿨의 도입취지와 교육이념이 퇴색해 로스쿨은 법조인 인성함양교육을 할 수 없는 그저 모두가 시험점수에만 매달리게 하는 고시지옥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로스쿨의 존립을 흔드는 것은 기성 변호사들의 탐욕과 그에 편승한 법무부의 신규변호사 수의 통제 때문”이라며 “누구보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이념과 도입취지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법무부가 기성 변호사의 기득권과 특권만을 걱정하는 작금의 현실에 분노한다”고 성토했다.

이경수 대표는 “우리는 신규변호사 배출인원을 통제해 법학전문대학원을 고시지옥으로 만들고 수많은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자’들을 만든 대한변협이, 그러면서도 다른 직역과의 싸움에 번번이 법학전문대학원을 방패로 활용하는 이중적인 모습에 분노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이념과 도입취지를 실현할 수 있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을 위한 자격 검정기준을 마련하라 ▲어떠한 합리적 기준도 없는 주먹구구식 합격자 결정을 통한 변호사시험응시기회를 잃어버린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자’들의 구제방안을 마련하라 ▲변호사시험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현재의 ‘법무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에서 ‘교육부 법학교육위원회’로 이관하라고 요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