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비폭력 양심적 신념에 따라 예비군훈련을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게 법원이 “피고인의 예비군 훈련 거부는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비폭력’과 같은 개인적 신념에 따른 사안에서 병력동원훈련과 예비군훈련 거부를 양심에 따른 것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A씨는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지난 2월 14일 내려진 판결이나, 사안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기에 자세히 들여다봤다.

수원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2013년 2월 제대해 예비군 대원으로 편입된 A(29세)씨는 2016년 1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1회에 걸쳐 예비군훈련 소집통지서, 병력동원훈련 소집통지서를 전달받고도 훈련에 불참했다.

이에 검사는 “A씨가 훈련소집 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참했다”며 예비군법과 병역법 위반을 적용해 기소했다.

A씨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것은 사실이나,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비군법은 예비군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병역법 제90조 제1항은 병력동원훈련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일시에 입영하지 않거나 점검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수원지법 형사5단독 이재은 부장판사는 지난 2월 14일 최근 병역법 위반과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A씨는 폭력으로 여러 차례 처벌을 받을 정도로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는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해 어려서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

또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여러 매체를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그것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이에 A씨는 군 입대를 거부할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입영 직전 이를 알게 된 어머니와 친지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전과자가 돼 홀어머니에게 불효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고, 자신의 신념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양심과 타협해 입대하게 됐다.

2011년 5월 입대한 A씨는 신병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과연 적에게 총을 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고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됐다. A씨는 적에게 총을 쏠 수 없는 자신이 군에 복무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자신의 동료, 나아가 국가와 국민에게 큰 해가 될 수 있다고 깨닫고 입대를 후회하게 됐다고 한다.

그 후 A씨는 자원해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회관 관리병으로 근무했다. 전역 전 A씨가 근무하던 부대에서 다른 병사들로부터 폭력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후임 병사가 탈영해 자신을 제외한 모든 동료 병사들이 처벌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폭력에 반대하면서도 소극적으로 이를 방관했던 자신의 행동이 양심에 반해 세상과 타협하는 기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반성하게 됐다.

A씨는 2013년 2월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됐다. 그러나 더 이상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 이후 2018년 4월 16일 예비군 훈련까지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A씨는 수년간 수십 회에 걸쳐 조사를 받고 총 14회에 걸쳐 고발되고,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A씨는 계속되는 수사와 재판으로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이재은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자신의 신념을 형성하게 된 과정, 신념에 반해 군에 입대하게 된 과정, 그 후 다시 양심에 반하는 군사훈련을 거부하게 된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진술하는 점, 수년간 계속되는 조사와 재판, 주변으로부터 받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난에 의해 겪는 정신적 고통과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 형벌의 위험 등 피고인이 예비군 훈련을 거부함으로써 받게 되는 불이익이 예비군 훈련에 참석함으로써 발생하는 시간적ㆍ육체적ㆍ경제적 불이익보다 현저히 많은 점”을 짚었다.

이 부장판사는 또 “피고인이 범죄행위로 처벌을 받거나 입건된 사실 또는 학창 시절에 폭력으로 문제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전혀 없는 점, 처벌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해 주장하고 있고, 오히려 유죄로 판단되는 경우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는 중한 징역형을 선고받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피고인이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때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기 전으로써 법원이 일관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처벌하고 있었던 시기인 점도 참작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11월 1일 판결(2016도10912)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종교적ㆍ윤리적ㆍ도덕적ㆍ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고 그 불이행을 처벌하는 것은 헌법 제19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되므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재은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이를 종합하면, 피고인의 예비군 훈련 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소명된다고 보이고, 이와 달리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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