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17일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몰래 변론’이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제도 개선방안을 권고했다.

앞서 15일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변호사)는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게서 ‘선임계 미제출 변론(몰래 변론) 사건’의 최종 조사결과를 보고 받고, 이를 심의했다.

자료사진=법무부
자료사진=법무부

이른바 전관예우는 국민이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을 불신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특히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채 수사나 내사 중인 형사사건 무마 등을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몰래 변론’ 관행은 전관예우의 대표적인 유형이자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혀 왔다.

전관 변호사의 몰래 변론은 수임자료가 남지 않아 변호사협회의 감독을 피하고, 탈세의 온상이 될뿐더러 고액 수임료를 감당하기 힘든 대다수 국민을 차별하는 위헌적인 불법 행위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 제출 없이 검찰수사 확대 방지, 무혐의 처분, 내사 종결 등을 청탁하며 고액의 수임료를 챙기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보고, 몰래 변론의 실태와 실제 검찰수사에 미친 영향을 조사,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자는 차원에서 포괄적인 조사를 권고했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2018년 11월 몰래 변론 사건이 본조사 대상으로 결정된 이후 관련 수사 및 공판기록을 검토하고 대한변호사협회의 전관 변호사 징계 자료, 서울중앙지검 사건 처분 자료, 언론 기사 등을 검토했다.

특히 선임계를 내지 않은 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와 부적절한 접촉을 하며 몰래 변론을 한 혐의로 기소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몰래 변론의 실태’를 보면 최근 10년 간(2009년 1월~2018년 8월 20일) 대한변호사협회의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에 대한 몰래 변론 관련 징계처분 내역을 조사한 결과, 대한변협 전관비리신고센터 등에 총 126건이 접수됐다.

대한변협은 이 가운데 66건 55명의 전관 변호사를 징계 처분했다. 유형별로는 제명 2건(1명), 정직 8건(6명), 과태료 50건(42명), 견책 6건(6명) 등으로 대부분 과태료 처분에 그쳐 솜방망이 징계라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언론 보도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과태료 처분 사례를 보면, ‘전화변론’ 등 몰래 변론으로 수사 실무자나 지휘라인에 영향력을 미치는 전관 변호사는 검찰 고위직 출신이 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대한변협은 2018년 11월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과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A와 B변호사가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채 수사기관을 상대로 몰래 변론을 한 사실을 적발, 각각 과태료 300만원과 200만원 징계를 내렸다.

또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부장검사 출신 C변호사는 2013~2014년 검찰이 수사한 가천대학교 길병원 횡령사건 등과 관련, 검찰 관계자들에게 수사 확대 방지, 내사 종결 등을 청탁하는 명목으로 10억 5000만원을 수수했다가 적발된 바 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상습도박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검찰 고위직(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수사 관계자와 연고(같은 검찰청 근무, 친분 등)가 있어, 그 영향력을 활용해 형사사건 무마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과거사위는 “홍만표 변호사 또한 수사ㆍ결재ㆍ지휘검사 등 수사 관계자를 사전에 파악하고, 자신이 그들과 연고가 있어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과시해 사건을 수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뢰인의 궁박한 처지, 수사 관계자에 대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 및 사건 무마에 대한 의뢰인의 기대,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의 경력 과시 등이 결합돼 거액의 착수금과 성공 보수가 약정된다”고 진단했다.

홍만표 변호사는 정운호 상습도박 사건에서 3억원의 선임료를 약정ㆍ수수했다.

통상 착수금과 함께 성공보수 약정도 함께 체결되는데, 그 지급조건은 불기소, 약식기소, 불구속기소, 무죄 등의 결과 도출에 따라 세분화 돼 책정된다.

검찰 과거사위는 “결국 수사 확대 방지, 무혐의 처분, 내사 종결 등 수사무마의 정도에 따라 거액의 착수금 및 성공보수금이 걸려있기 때문에,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는 사건 내용에 따른 법률적 대응보다는 약정한 성공보수의 결과 달성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홍만표 변호사는 선임계 제출 없이 정운호 상습도박 사건의 지휘라인에 있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직접 만나, 수사진행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정운호에 대한 불구속 수사 등 희망사항을 전달했다고 한다.

홍만표 변호사는 정운호에게 “3차장검사는 대검에서 같이 근무했고 중매도 섰을 정도로 가깝다”고 친분을 과시했다고 하는데, 실제 홍만표 변호사는 3차장검사와 2015년 8~10월 약 2개월간 18차례나 통신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홍만표 변호사는 몰래 변론으로 수수한 거액의 선임료 관련 세금을 줄이기 위해 매출을 누락하거나 축소 신고했다. 또한 국세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현금이나 수표로 선임료를 받은 뒤 관련 장부를 폐기하고 자금세탁까지 거쳐 부동산 투자에 활용하는 등 다양한 탈세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 홍만표 몰래 변론 사건에서 드러난 검찰권 행사의 과오

검찰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 대해 상습도박과 업무상횡령 혐의로 수사를 진행했고, 두 가지 피의사실에 대해 정식 범죄인지를 하고 형사사건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검찰은 두 가지 피의사실 중 처벌이 약한 상습도박 혐의로만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정운호에 대한 업무상횡령 부분은 추가 수사를 이유로 분리한 뒤 미처분 상태로 남겨두었으나, 이후 기소 또는 불기소 등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처분을 누락한 사실을 확인했다.

정운호 상습도박 사건이 대법원 상고취하로 확정된 뒤, 다른 수사팀이 홍만표 관련 법조비리 사건을 계기로 다시 이 부분 수사를 벌여 2016년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위 미처분의 과오에 대해 수사 당사자들이 고의가 아니라고 부인하는데다 홍만표의 몰래 변론이나 청탁에 따른 결과라고 볼만한 직접적인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그러나 검사가 전관 변호사의 몰래 변론에 응한 점, 결과적으로 검찰권이 정당하게 행사되지 않은 과오가 있었던 점, 과오의 내용이 전관 변호사의 바람을 들어준 것과 같은 양상을 띠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검찰에 전관예우 등 법조계의 형사사법 절차 상 잘못된 폐습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원회는 논의 결과, “대한변호사협회 전관비리신고센터 등의 몰래 변론 징계 처분 내역, 언론 보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 등에서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몰래 변론’이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특히 정운호 상습도박 사건을 몰래 변론 했던 홍만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직접 면담하고 수사 상황을 파악한 뒤, 정운호에게 ‘수사 확대 방지 구형 등 최소화에 힘써 보자’, ‘추가 수사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 되었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며 “이 같은 홍만표의 ‘영향력 행사를 통한 사건무마’ 시도가 검찰권 행사 왜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검찰이 정운호를 상습도박 혐의로만 기소하고 처벌이 더 무거운 업무상횡령에 대해 아무런 결정과 처분을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과오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현행 검찰의 ‘형사사건 변론기록’ 제도도 개선을 권고했다.

검찰은 2016년 9월 19일부터 ‘형사사건 변론에 대한 업무지침’을 통해 몰래 변론 불허, 변론내용 기록 의무화 등의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기록의 진실성, 완결성 등에 문제 제기가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과거사위는 검찰 형사사건에 관한 기본 정보를 온라인 등을 통해 충실히, 신속히 제공해 직접 변론의 필요성을 줄이고, 검찰청 출입기록과 연계한 변론 기록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변론 기록 작성 누락 방지 대책을 마련하며, 개인 연락처를 통한 변론도 기록할 것을 명시하는 등 관련 제도의 개선을 권고했다.

또한 몰래 변론 연루 검사 감찰 및 징계 강화다. 수사 및 지휘검사의 몰래 변론 허용, 변론기록 미작성 또는 허위작성 등에 관하여 감찰을 강화하고, 위반 행위에 관해 적극 징계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전관 변호사가 수사 실무자는 물론 지휘 라인의 고위직 검사를 만나 변론하면서 수사와 처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검찰 처분의 신뢰를 저해하는 행위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상부 지휘 검사에 대한 변론에 관해서는 ▲지휘 검사를 만나 변론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변론을 허용하되 ▲허용 사유, 변론 내용, 변론 후 수사검사 등 하위 검사에 대한 지시 유무 및 지시사항 등을 의무적으로 기록하게 하는 등 관련 제도의 개선을 권고했다.

이밖에 여러 명의 피의자나 여러 개의 피의사실이 있는 사건에서 일부분을 분리해 먼저 처분하고 나머지를 남겨 두는 경우, 미처분 사건 누락 방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예컨대, 미처분 사건에 새 사건번호를 부여하거나 형사관리 시스템상 미처분 사건 알림, 경고 기능을 도입하는 등 미처분 누락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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