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합헌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태아였다.”

헌법재판소 낙태죄에 대한 위헌소원 심판사건에서 조용호 재판관과 이종석 재판관이 “우리는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의견을 제시하며 내놓은 첫 말이다.

“낙태는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침해행위이다.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태아를 적극적으로 죽일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

이는 두 재판관의 합헌의견의 배경과 소신이다.

헌법재판소는 4월 11일 헌법불합치 재판관 4명(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단순위헌 재판관 3명(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합헌 재판관 2명(조용호, 이종석) 의견으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입법자는 늦어도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위 조항들에 개선입법을 이행해야 하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밝혔다.

이번 헌재 결정의 핵심은 임신 초기의 낙태마저 처벌하는 것이 문제라는 취지이지,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향후 입법부에게 맡겨진 것이다.

위헌의견이 다수인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문은 64페이지로 구성돼 있는데, 소수의견은 22페이지를 차지한다. 조용호 재판관과 이종석 재판관의 합헌의견은 소수의견에 그쳤지만, 소수의견도 비중 있게 자세히 소개한다.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
조용호 재판관과 이종석 재판관

◆ 인간의 존엄과 태아의 생명, 그리고 국가의 보호의무

두 재판관은 “태아는 모체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지만 세포의 성장과 분열은 모두 독립적으로 일어나고, 모체와 다른 면역체계를 가지며, 모체의 의지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일정한 시기부터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며 “따라서 태아는 모체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생명체로서, 자연적으로 유산되는 안타까운 사정이 없는 한 장래에 존엄한 인간으로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또 “태아는 생존을 모체에 의존하고 있지만, 일정기간(현재 의료기술로는 임신22주 내외) 이상이 경과하면 자연적 출산 이전에 모체로부터 분리되어도 생존할 수 있다”며 “태아가 모체에서 점점 성장해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진 후 출산을 통해 인간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와 출생한 사람은 생명의 일련의 연속적인 발달과정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의 정도나 생명 보호의 필요성과 관련해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두 재판관은 “문제는 생명이 어느 시기부터 존엄한 존재로서 헌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인데, 비록 의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의 각 전문가들이 합치된 의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출생 전의 생성 중인 생명을 헌법상 생명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생명권의 보호는 불완전한 것에 그치고 말 것이므로 태아 역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봐야 한다”는 종전 헌법재판소 결정을 환기시켰다.

재판관들은 “우리는 근본적으로 태아의 물리적 존재, 생명을 소멸시키는 낙태의 자유가 자기결정권을 통하여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다”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분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적어도 태아가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면 그 생명을 적극적으로 소멸시킬 자유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칙적으로 임신한 여성은 존엄한 인간으로서, 태아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지 않을 권리(인격권), 태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신체의 자유)가 있음은 물론이다”라고 덧붙였다.

두 재판관은 “그러나 우리 헌법상 낙태할 권리는 어디에도 언급돼 있지 않고,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이 그와 같은 권리를 부여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며 “낙태는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침해행위”라고 주장했다.

특히 “법질서는 자신의 신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허용하지도 않는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타인의 자유 또는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일반적인 한계가 있다”며 “따라서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태아를 적극적으로 죽일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두 재판관은 이와 함께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생명과 안전,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고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자들의 그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그러하다. 태아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생성 중인 생명으로서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며 “생명의 침해는 회복 불가능하고, 생명에 대한 부분적 제약을 상정할 수 없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를 금지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낙태는 생명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행위이므로,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임신한 여성의 태아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태아가 모체와는 별개의 독립된 생명인 이상 태아의 모가 태아의 생명을 해치는 자기낙태 행위의 경우에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방지해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며 “또한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말했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는 낙태죄에 관한 찬반 집회가 열렸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는 낙태죄에 관한 찬반 집회가 열렸다.

◆ 형사처벌과 침해의 최소성

조용호 재판관과 이종석 재판관은 “태아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므로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태아는 모로부터도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 헌법이 명령하는 보호가 다른 방법으로 달성될 수 없을 때 입법자는 형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며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입법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두 재판관은 “그런데 자기낙태죄 조항은 달성하려는 입법목적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로서 매우 중대하고, 생명권 침해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할 때 형벌을 통해 낙태를 강하게 금지할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자기낙태죄 조항이 형벌로써 낙태를 규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낙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만일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보다 가벼운 제재를 할 경우 현재보다 낙태가 증가해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기낙태죄 조항의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성교육 내지 피임 관련 교육의 강화, 낙태 관련 상담의 실시, 국가적ㆍ사회적 차원의 모성보호조치 등의 방법 역시 낙태를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며 “따라서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 외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덜 침해하면서 태아의 생명을 동등하게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다른 수단을 상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고, 하나의 상황에서 양자를 모두 조화롭게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어느 것을 어떤 범위에서 우선시킬 것인지는 매우 어려운 철학적, 윤리적ㆍ규범적ㆍ의학적ㆍ사회학적 문제”라며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기본권이 충돌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정도로 태아를 보호할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결단은 입법자의 과제에 속한다”고 말했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면서 임신한 여성의 생명ㆍ건강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나 범죄행위로 임신한 경우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모자보건법’을 통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두 재판관은 “이는 태아의 생명을 폭넓게 보호하는 입법으로서 기본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우선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비해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보다 중시한 입법자의 위와 같은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관들은 “태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는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국가기관에 있으며, 국가기관은 태아를 보호하고 출생하도록 법질서를 형성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며 “따라서 헌법재판소도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입법자의 결단을 함부로 배척할 것이 아니다.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시기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진지하고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다수 국민들의 의견이 도출된 다음 민주적 대의기관인 입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특히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태아가 모태를 떠난 상태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태아의 성장 속도 역시 태아별로 다른 현실을 감안한다면, 태아의 성장단계에 따라 혹은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따라 혹은 ‘안전한 낙태’가 가능한 시기에 따라 생명 보호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봤다.

두 재판관은 “생명의 발달과정은 일련의 연속적인 과정으로서 특정 시점을 전후로 명확하게 발달단계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므로, 가령 임신 12주를 기준으로 낙태의 금지 및 처벌 여부를 달리한다고 할 때 임신 12주의 태아와 임신 13주의 태아 사이에 생명의 보호 정도를 달리해야 할 정도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식물인간 등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들에 대하여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우려가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는 낙태 반대 즉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많이 모여 목소리가 더 켰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는 낙태 반대 즉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많이 모여 목소리가 더 켰다.

조용호ㆍ이종석 재판관은 “다수의견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사회적ㆍ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아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한다. 다수의견이 예시하는 사회적ㆍ경제적 사유를 보면 대체로 여성의 경력단절, 자녀양육, 재생산권,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 지장, 경제적 부담, 혼전임신ㆍ혼외임신, 이혼ㆍ별거ㆍ절교 등이 거론되고 있다”며 “그러나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의 개념과 범위가 매우 모호하고 그 사유의 충족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의 허용은 결국 임신한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이를 허용할 경우 현실적으로 낙태의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자신의 삶에 불편한 요소가 생기면 언제든지 이를 제거할 수 있다는 사고에 따라 낙태를 허용한다면 나중에는 낙태를 줄여야 한다는 명분조차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일반적인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두 재판관은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허용은 결국 ‘편의’에 따른 생명박탈권을 창설하는 것”이라며 “우리 세대가 상대적인 불편요소를 제거하는 시류ㆍ사조(思潮)에 편승해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훗날 우리조차 다음 세대의 불편요소로 전락해 안락사, 고려장 등의 이름으로 제거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가족계획, 즉 자녀의 수, 터울, 출산시기의 조절 등을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얻을 수 있는 권리인 여성의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재생산권의 침해는 낙태가 아니라 피임을 통해서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재판관은 “하나의 생명을 종식시키는 ‘낙태’와 하나의 생명이 생기는 것을 막는 ‘피임’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것이 피임을 금지하지 않으면서도 낙태를 금지하는 강력한 공익적 이유”라며 “자기낙태죄 조항은 여성의 재생산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이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정만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대했다.

재판관들은 “임신한 여성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는 낙태의 금지가 자기결정권 뿐만 아니라 인격권 및 인간의 존엄과 가치, 건강권 등을 침해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까지 낙태 금지와 처벌의 예외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헌법의 정신과 가치에 반할 수도 있다”며 “낙태(인공임신중절)의 정당화 사유로는 대체로 임신의 지속이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거나 범죄로 인한 임신 등 사회통념상 임신의 계속을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의학적ㆍ우생학적ㆍ윤리적 정당화사유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모자보건법은 ①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④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⑤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임신 24주 이내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경우 의사와 임신한 여성을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 자기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 등을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두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해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며 “비록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 근절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조항이 존재함으로 인한 위하효과 및 이 조항이 없어질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인명경시풍조 등을 고려해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법익균형성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재판관들은 “국가는 인간의 존엄을 위협할 수 있는 현실을 입법을 통해 개선해 나갈 의무가 있다.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규정 이외에, 낙태를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규범화하는 입법정책도 필요하다”며 “임신은 여성 혼자가 아닌 남녀의 문제이므로, 국가는 미혼부(未婚父) 등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양육책임법’의 제정,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여성이 부담없이 임신ㆍ출산ㆍ양육할 수 있는 모성보호정책, 임신한 부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육아시설의 확충 등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결론적으로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것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며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2년 8월 23일 자기낙태죄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 그때부터 7년이 채 경과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선례의 판단을 바꿀 만큼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점에서도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합헌 선언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한 판단

조용호ㆍ이종석 재판관은 “입법자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통해 생명의 유지와 보호, 건강의 회복과 증진을 본분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가 그에 반해 낙태를 하게 한 경우에는 일반인보다 책임이 무거우며, 실제로 낙태시술을 할 수 있고, 전문적 의료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가 이를 남용해 영리행위에 이르게 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의사의 낙태를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의사의 낙태를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의사낙태죄 조항은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를 하게 한 경우를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법정형의 상한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돼 있어 법정형의 상한 자체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죄질이 가벼운 낙태에 대하여는 작량감경이나 법률상 감경을 하지 않아도 선고유예 또는 집행유예 선고의 길이 열려 있으므로, 행위의 개별성에 맞추어 책임에 알맞은 형벌을 선고할 수 없도록 하는 지나치게 과중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러므로 의사낙태죄 조항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는 헌법재판소 2012년 8월 23일 결정(2010헌바402)과 같은 입장이다.

두 재판관은 “낙태는 행위태양에 관계없이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높고, 일반인에 의해서 행해지기는 어려워 대부분 낙태에 관한 지식이 있는 의료업무종사자를 통해 이루어지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시술을 한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 또한 크다”며 “나아가 경미한 벌금형은 실제로 낙태시술을 할 수 있고, 전문적 의료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남용해 영리행위를 추구하는 의사에 대하여는 위하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하력(威嚇力)은 잠재적 범죄인인 일반인에 대한 위협을 통하여 범죄를 예방하려는 힘을 말한다.

두 재판관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입법자가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동의낙태죄와 달리 벌금형을 규정하지 않은 것이 형벌체계상의 균형에 반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도 할 수 없다”며 “의사낙태죄 조항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형벌체계상의 균형에 반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되지도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끝으로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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