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재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53년 낙태죄가 제정된 지 66년 만에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취지의 결정이다.

4월 11일 헌법재판소 앞
4월 11일 헌법재판소 앞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3일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고, 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조산사’에 관한 부분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했다.

그런데 검찰은 산부인과 의사 A씨가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경까지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했다는 공소사실(업무상승낙낙태) 등으로 기소하며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제1심 법원 재판 계속 중 주위적으로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되고, 예비적으로 “위 조항들의 낙태 객체를 임신 3개월 이내의 태아까지 포함해 해석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으나 광주지방법원이 기각했다.

이에 A씨는 2017년 2월 헌법재판소에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른바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제269조(낙태) 제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제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4월 11일 재판관 4명(헌법불합치), 재판관 3명(단순위헌), 재판관 2명(합헌) 의견으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입법자는 늦어도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위 조항들에 개선입법을 이행해야 하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밝혔다.

이번 헌재 결정의 핵심은 임신 초기의 낙태마저 처벌하는 것이 문제라는 취지이지,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향후 입법부에게 맡겨진 것이다.

◆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 4명의 헌법불합치 의견

이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ㆍ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ㆍ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학계에 의하면 현 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태아는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기산해 22주(임신 22주) 내외부터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4명의 재판관들은 특히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재판관들은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의 위하가 임신한 여성의 임신종결 여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정과 실제로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또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든 낙태가 전면적ㆍ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됨으로 인해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며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당해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자기낙태죄 조항은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ㆍ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11일 헌법재판소 정문 앞의 기자회견을 취재하는 수많은 취재진과 안전경호하는 경찰들
11일 헌법재판소 정문 앞의 기자회견을 취재하는 수많은 취재진과 안전경호하는 경찰들

재판관들은 “모자보건법상의 정당화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하여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낙태를 종용하거나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관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은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적ㆍ심리적 부담,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ㆍ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할 뿐 아니라 이에 더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ㆍ경제적 고통까지도 겪을 것을 강제당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밝혔다.

또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가능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ㆍ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ㆍ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할 것이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4명의 재판관들은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봤다.

재판관들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그런데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각각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진단했다.

재판관들은 “입법자는 위 조항들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낙태의 형사처벌에 대한 규율을 형성함에 있어서,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를 포함해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ㆍ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해 헌법재판소가 설시한 한계 내에서 입법재량을 가진다”고 열어뒀다.

그러면서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단순위헌 결정을 하는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다만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적용을 명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입법자는 늦어도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개선입법을 이행해야 하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 3명의 단순위헌 의견

이들 재판관들은 “우리는 헌법불합치의견이 지적하는 기간과 상황에서의 낙태까지도 전면적ㆍ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대해 견해를 같이한다”면서도 “다만 우리는 더 나아가 이른바 ‘임신 제1삼분기(first trimester, 대략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단순위헌결정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헌법불합치의견과 견해를 달리 한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그동안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그 경우도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 조항들이 예방하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형벌조항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이어서,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언해 심판대상조항들에 따른 기소를 일단 가능하게 한 뒤, 사후입법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은 형벌규정에 대한 위헌결정의 효력이 소급하도록 한 입법자의 취지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그 규율의 공백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으로서 가혹하다”고 말했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정당과 시민단체들

3명의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들 중 적어도 임신 제1삼분기에 이루어진 낙태에 대해 처벌하는 부분은 위헌성이 명확해 처벌의 범위가 불확실하다고 볼 수 없고, 또한 임신 제1삼분기에 이루어지는 낙태의 처벌 여부에 대하여는 입법자의 입법재량이 인정될 여지도 없다”며 “심판대상조항들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해야 한다”며 단순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 합헌 의견

한편, 이번 결정에서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의견을 개진했다.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유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유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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