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법원이 자폐 증세를 앓아온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한 어머니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어머니로서 40년 동안 헌신적으로 간호하다가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렀고, 장애 관련 법률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점을 인정해서다.

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40대 초반인 A씨는 3세 때 자폐판정을 받은 이래 기초적인 수준의 언어소통만 가능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상태였고, 특수학교에 다니던 고등학생 때부터는 폭력성향까지 심해져 자퇴를 하게 됐다.

A씨는 20세 무렵부터는 증세가 악화돼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됐는데, 난폭한 성향으로 인해 정신병원으로부터 퇴원을 권유받거나, 입원 연장을 거부당하는 등의 일이 빈번해 20여 년간 10여 곳의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중 A씨는 2018년 11월 모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됐는데, 그곳에서도 난폭하게 소란을 피워 주변 환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게 됐다.

A씨의 어머니는 갈수록 악화되는 아들의 상태에 낙담하고, 다시 입원을 받아 줄 정신병원도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자신도 기력이 쇠해 아들을 간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차라리 아들과 함께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들을 죽인 후 자신도 옆에서 자살할 것을 결심하게 됐다.

결국 어머니는 2018년 11월 27일 전날 소란을 피워 진정제를 투여 받고 잠든 아들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본인도 신경안정제를 과다복용하고 자해까지 한 후 의식을 잃고 쓰러졌지만 다행히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수원지방법원 제15형사부(재판장 송승용 부장판사)는 헌신적으로 간호해오다 자폐 증세가 심해져 가는 아들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재판에 넘겨진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어떤 인간이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생명에 대한 그의 권리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인간들의 권리와 동일하고, 인간의 생명에 대한 권리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며 “비록 자녀가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별개의 인격체로서 자녀가 독립해 생존하고 있는 한, 아무리 부모라고 하더라도 임의로 자녀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처분할 수는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피고인을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노력과 안타까운 처지를 이해하려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40년 동안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양육하면서 상당한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겪어왔을 것임에도 헌신적으로 피해자를 보살펴 오면서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해 온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은 피해자의 병세가 악화됨에도 의료시설에서 피해자의 입원을 꺼려하자 여러 의료시설을 전전하다가,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깊은 좌절감에 빠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고령이고 이전에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전혀 없는 점, 피해자의 아버지와 여동생 등 피고인의 가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스스로 자식을 살해했다는 기억과 그에 대한 죄책감이 그 어떤 형벌보다도 무거운 형벌이라고 볼 여지도 있는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재판부는 “법원이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이 사건의 비극적인 결과가 오롯이 피고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며 국가의 책임도 짚었다.

재판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 정도가 심해 자립하기가 매우 곤란한 장애인(중증장애인)이 필요한 보호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알맞은 정책을 강구해야 하고(장애인복지법 제6조),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며,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을 보호해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시킬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가족의 삶의 질 향상 및 안정적인 가정생활 영위를 위해 장애인 가족 돌봄 지원, 장애인 가족 휴식 지원 등 필요한 시책을 수립ㆍ시행해야 하고, 장애인이 기능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장애인에게 적정한 진료 및 재활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장애를 완화하고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와 조사를 지원해야 하며, 발달장애인의 복지수준 향상과 그 가족의 일상적인 양육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거주시설 지원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하고,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특성과 요구에 따른 돌봄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법률은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각종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이 사건 발달장애인인 피해자와 가족인 피고인이 위 규정에 따른 충분한 보호나 지원을 받았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결국 위와 같은 사정이 피고인으로 하여금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함에 있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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