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함께 술을 마신 여성이 만취한 상태인 줄 착각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했는데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면, 준강간미수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상근예비역인 A(20대)씨는 2017년 4월 자신의 집에서 처, 피해여성과 술을 마시다가 처가 먼저 잠이 들고, 피해자도 안방으로 들어가자 피해자를 따라 들어가, 피해자가 술에 만취해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오인해 누워 있는 피해자를 1회 간음했다.

이에 군검찰은 A씨를 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제1심(보통군사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공소 제기된 강간의 공소사실을 주위적으로 유지하면서 “술에 취해 누워 있는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강간했다”며 준강간의 공소사실을 예비적으로 추가하는 군검사의 공소장변경을 허가했다.

이후 1심은 “군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주위적 공소사실인 강간 부분을 무죄로 판단하고, 예비적 공소사실인 준강간 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A씨만 항소했다. 항소심(고등군사법원)은 준강간의 공소사실을 주위적으로 유지하면서 준강간미수의 공소사실을 예비적으로 추가하는 군검사의 공소장변경을 허가했다.

이후 항소심은 “피해자가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준강간 부분을 무죄로 판단하고,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한 준강간의 불능미수 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과 5년간 아동ㆍ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명령을 선고했다.

이에 A씨가 유죄 부분에 대해 상고했다. A씨는 “준강간의 고의가 없었고,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없는 성관계를 했으므로 준강간의 결과 발생 가능성이나 법익침해의 위험성이 없어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준강간의 고의 여부다. 준강간의 고의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러한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다는 구성요건적 결과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한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8일 A씨에 대한 상고심(2018도16002)에서 강간죄와 준강간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대신 준강간미수죄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준강간의 고의가 없었다는 상고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고의를 부인하는 경우, 범의 자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범의와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이를 증명할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의 상고이유 주장은 원심의 사실인정을 다투는 취지로서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원심의 증거선택과 증명력에 관한 판단을 탓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처 그리고 피해자가 함께 술을 마신 경위, 피고인과 피해자가 마신 술의 양,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장시간 주량을 초과하는 술을 마셔 취한 상태로 안방에 들어가 누워있던 상황, 피고인이 준강간의 범행에 착수할 당시 피해자의 상태, 범행 후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의 내용 등을 살펴보더라도, 원심이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를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며 “이러한 원심판단에 준강간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해 간음할 의사로 피해자를 간음했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에 준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하는지가 핵심적인 쟁점이다.

형법 제299조에서 정한 준강간죄는 정신적ㆍ신체적 사정으로 인해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 준강간죄에서 행위의 대상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는 것이다.

대법관 다수의견(10명)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해 간음할 의사를 가지고 간음했으나, 실행의 착수 당시부터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준강간죄의 기수에 이를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정신적ㆍ신체적 사정으로 인해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면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준강간의 고의로 피해자를 간음했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아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해 준강간의 결과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하고, 피고인이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결과 발생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위험성이 인정된다며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고, 원심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준강간죄의 불능미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형법 제2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능미수는 행위자에게 범죄의사가 있고 실행의 착수라고 볼 수 있는 행위가 있지만 실행의 수단이나 대상의 착오로 처음부터 구성요건이 충족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다. 다만 결과적으로 구성요건의 충족은 불가능하지만, 그 행위의 위험성이 있으면 불능미수로 처벌하는 것이다.

형법 제27조에서 정한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는 행위자가 시도한 행위방법 또는 행위객체로는 결과의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과 발생의 불가능’은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원시적 불가능성으로 인하여 범죄가 기수에 이를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성립 여부에 관한 권순일, 안철상, 김상환 대법관의 파기환송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들 대법관들은 “다수의견은 어떠한 점에서 피고인에게 실행의 수단의 착오가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고, 준강간죄의 행위의 객체는 ‘사람’이므로,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대상의 착오는 물론 구성요건적 착오인 객체의 착오조차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다”며 “준강간죄의 행위 객체를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다수의견은 형벌조항의 문언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군검사가 적용을 구하는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요소에 해당하는 특별한 행위양태에 대한 증거가 충분한지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이라며 “다수의견은 구성요건해당성의 문제와 형법 제27조의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를 혼동하고 있으며, 다수의견의 해석론은 죄형법정주의를 전면적으로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은 준유사강간죄의 불능미수가 성립할 여지가 있다는 기존 판례의 연장선상에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성립을 인정하고, 형법 제27조와 관련해 그간 명확하지 않았던 ‘결과 발생의 불가능’, ‘위험성’에 관한 의미와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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