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항소심에서 형량이 높아졌다는 이유만으로 항소할 때에는 다투지 않았던 사항을 대법원에 상고할 때에 다시 다투려는 것은 허용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는 피고인이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않는 등의 사유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상고이유를 제한하는 ‘상고이유 제한 법리’에 관한 종래 대법원 판례의 타당성을 재확인한 판결이다.

대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한약사 A씨와 B씨는 한약사 자격이 없는 공범이 한약국을 개설해 다이어트 한약을 판매할 수 있게 했고, 한약사 A씨는 자신이 개설한 한약국에서 한의사의 처방전 없이 한약을 조제하고 전화 상담만을 받고 고객들에게 이를 택배로 판매해 약사법 위반죄로 기소됐다.

제1심은 A씨와 B씨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 각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B씨는 항소하지 않았고, A씨는 “형량이 무거워 양형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반면 검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형량이 너무 낮아 양형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2017년 9월 검사의 항소이유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B씨에게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하며 형량을 높였다.

이에 피고인들은 “원심판결은 논리와 경험칙에 반해 사실을 잘못 인정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거나 법리를 오해했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또한 B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상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들은 항소하지 않거나 양형부당만을 이유로 항소하고, 검사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는데, 항소심이 검사의 항소이유만을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파기자판하면서 형이 높아진 경우라도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심판대상이 되지 않았던 법령위반 등 새로운 사유는 이를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할 수 없다고 하는 이른바 ‘상고이유 제한에 관한 법리’를 선언하고 있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의 변경 여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3월 21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며, 한약사 A씨에게 징역 6개에 집행유예 1년, B씨에게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2017도16593)

대법원은 상고심의 심판대상(적법한 상고이유)이 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제383조 각 호 중 어느 하나의 사유에 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항소심의 심판대상이 되었던 사항일 것을 요건으로 한다는 법리(상고이유 제한 법리)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상고이유를 제한하는 법리는 상고심(대법원)의 사후심 구조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심급제도 하에서 상고심의 기능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돼 형사소송법의 상고이유에 관한 규정이 현재와 같은 내용으로 정립될 당시 대법원에 의해 법리로 선언된 이래로 현재까지 오랜 기간 동안 실무는 물론, 학계에서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져 온 대표적인 법리 중 하나다.

특히 이 사건과 같이 항소법원이 검사의 양형부당 항소를 받아들여 항소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형이 더 높아지는 등 판결 결과가 제1심판결에 비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피고인이 종전에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유를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할 수는 없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전원합의체 대법관 다수의견(8명)은 “항소심에서 형이 높아진 경우에도 상고이유 제한 법리가 적용되어야 하므로, 피고인들의 상고이유 중 채증법칙위반 내지 심리미진, 법리오해 등 상고이유는 적법한 상고이유가 아니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전원합의체는 “상고심은 항소심 판결에 대한 사후심으로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으로 되었던 사항에 한하여 상고이유의 범위 내에서 당부만을 심사해야 한다”며 “그 결과 항소인이 항소이유로 주장하거나 항소심이 직권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아 판단한 사항 이외의 사유는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고, 이를 다시 상고심의 심판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은 상고심의 사후심 구조에 반한다”고 밝혔다.

또 “상고심은 상고이유서에 포함된 사유에 관해 심판해야 하고, 상고이유가 인정되는 때에는 원심판결을 파기환송 해야 하며, 항소심까지의 소송자료만을 기초로 항소심판결 선고 시를 기준으로 당부를 판단하도록 돼 있다”고 종전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헌법재판소도 2012년 5월 “하급심과 상고심의 본질과 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사법자원을 분배하고 불필요한 상고 제기를 방지하며 소송경제를 도모하기 위해 상고이유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실질적으로 상고심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 사항의 범위를 일정하게 한정시키는 것은 헌법적인 차원에서도 그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결정(2010헌바90) 한 바 있다.

전원합의체는 “법률심으로서 상고심의 판결이 선례로서 하급심에 법령 해석ㆍ적용의 기준을 제시하고 형벌의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고심에서 적정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일정한 범위에서 상고를 제한해 그 기능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실심의 판결에 잘못이 있다고 무조건 상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상고가 남발됨으로써 상고심의 사건처리 부담이 과중하게 돼 사후심 및 법률심으로서의 기능 수행이 곤란해지고 피고인의 권리구제에도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원합의체는 “상고이유 제한 법리는 심급제도의 운영에 관한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형태 중에서 현행 법제도가 사후심 및 법률심 방식을 선택한 데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상고심과 항소심에 걸쳐 마련돼 있는 직권심판권의 발동에 의해 직권심판사항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위법사유에 대해서는 비록 항소심의 심판대상에 속하지 않았던 사항이라도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그 잘못을 최대한 바로잡을 수 있다”며 “항소심에서 형이 높아졌다는 이유만으로 항소할 때에는 다투지 않았던 사항을 상고할 때에 다시 다투려는 것은 허용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판중심주의 및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에 비추어 살펴보면, 제1심법원이 법관의 면전에서 사실을 검토하고 법령을 적용해 판결한 사유에 대해 피고인이 항소하지 않거나 양형부당만을 항소이유로 주장해 항소함으로써 죄의 성부에 관한 판단 내용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에 관한 판단 내용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면서 상고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제1심법원이 충분히 사실을 검토하고 법령을 적용해 판결한 사유에 대해 피고인이 항소하지 않음으로써 범죄의 성립 여부 등에 관한 판단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 후에 이를 번복해 다투려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제1심과 항소심에서 형량이 달라진 것은 심급제도 하에서 양형 요소라는 동일한 심판대상에 관해 서로 다른 법원에서 고유의 권한으로 반복해 심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부득이하게 발생된 결과일 뿐이어서 상고이유 제한 법리의 타당성 등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의 채증법칙위반, 심리미진 및 법리오해의 상고이유에 관해 전원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항소심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은 사유로서 상고심에 이르러 새로이 주장되는 것이므로 적법한 상고이유가 아니다”며 기각했다.

대법원 청사
대법원 청사

◆ 별개의견(4인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이기택,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

이들 대법관들은 “항소심에서 형이 높아진 경우에는 상고이유 제한 법리가 적용되어서는 안 되므로 피고인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적법하다”면서도 “다만 피고인들의 상고이유가 형사소송법 제383조 각 호에 해당하지 않아 부적법하거나 그와 관련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기각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들 대법관들은 “피고인이 제1심판결의 결론에 승복함으로써 항소 당시에는 그 주장을 보류해 두었던 사실오인, 법령위반 등 사유를 항소심에서 형이 높아진 다음에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했을 때 이를 허용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대법관들은 “설령 피고인이 상고이유로 삼고 있는 사유가 항소심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주장해 상고하는 피고인의 태도를 항소 당시와는 모순되는 거동으로서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고, 또한 이를 남상고로 단정하기도 어렵다”며 “오히려 이와 같은 경우에 대해서도 상고이유를 항소 여부를 결정할 당시를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피고인의 상고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이 제1심판결 주문에는 만족함으로써 항소하지 않았는데, 그 후 항소심에서 판결 주문이 불이익하게 변경되었다면 피고인으로서는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사유를 상고이유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대법관들은 “상고이유 제한 법리를 적용할 경우에는 피고인별로 상소 기회에 불균형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며 “제1심에서부터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면 피고인은 처음부터 불복해 사실오인, 법령위반 등 사유를 항소이유로 주장하면서 다투었을 것이고 그 경우 상고심까지 2회의 상소 기회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또 “그런데 제1심에서 우연히 벌금형 등 그보다 낮은 형이 선고됨으로써 판결에 승복했다가 항소심에 이르러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가 선고됨으로써 비로소 적극적으로 다투려는 것인데 상고가 제한됨으로써 피고인은 결국 한 차례도 다투어 보지 못하는 결과가 돼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들 대법관들은 “상고이유 제한 법리를 적용할 경우 항소심의 심리부담이 가중되고 피고인에게도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게 된다”며 “피고인으로서는 제1심판결에 대해 불복의사가 없더라도 검사가 양형부당으로 항소하는지에 따라서 향후 상고이유가 제한될 것까지 감안해 사실오인, 법령위반 등 일체의 사유를 항소이유로 주장하면서 항소하는 등의 대응을 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

대법관들은 “피고인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선고된 제1심판결에 대해 항소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항소심판결에 대해서도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다투었는지 여부에 구애됨이 없이, 상고심에서 항소심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령위반 등 사유를 상고이유로 삼아 자유롭게 다툼으로써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대 대법관 별개의견

한편 조희대 대법관은 “상고이유 제한 법리는 형사소송법과 다른 법률을 살펴보아도 현행법상 근거가 없으므로 이를 통한 상고이유 제한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피고인들의 상고이유가 형사소송법 제383조 각 호에 해당하지 않아 부적법하거나 그와 관련된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기각 의견을 냈다.

조희대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상고심은 사후심이기 이전에 법률심인데, 상고이유 제한 법리는 법률문제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해서도 항소심에서 구체적인 심판대상이 된 사항인지 아닌지에 따라 상고심의 심판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어 법률심인 상고심의 기능과 역할에 배치되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상고심의 사후심 구조, 상고심의 기능과 역할 등을 이유로, 피고인이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않는 등의 사유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상고이유를 제한하는 상고이유 제한 법리에 관한 종래 판례의 타당성을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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