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축구경기를 하다가 상대팀 선수와의 충돌로 사지마비가 된 골키퍼가 자신과 충돌한 공격수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사건에서 하급심(1심과 2심)의 판단은 달랐으나, 대법원은 충돌한 공격수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A(20대)씨와 B(40대)씨가 회원으로 소속된 조기축구회는 2014년 7월 충남 계룡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팀을 나누어 축구경기를 했다.

A씨는 골키퍼, B씨는 상대팀 공격수를 맡았다. 그런데 경기 중 B씨 팀 선수가 A씨가 속한 팀 골문 방향으로 센터링을 했다. 이때 A씨가 골문 앞에서 공을 쳐내기 위해 왼쪽 후방으로 손을 뻗으면서 다이빙 점프를 해 착지하다가 B씨와 충돌했다.

이때 A씨의 머리와 B씨의 허리가 부딪혔는데, A씨는 사고로 목척수 손상 등의 상해를 입고 사지마비로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에 A씨와 가족은 “B씨가 축구경기 중 상대방 선수에 대한 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 등을 위반해 발생했다”며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반면 B씨는 “이 사고는 서로 공을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축구경기의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내재적 위험의 범위 내의 우발적 사고이고, 축구경기 상 어떠한 주의의무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1심인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민사부(재판장 서중석 부장판사)는 2016년 1월 “B씨가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들의 손해배상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골키퍼인 원고는 점프를 해 공을 쳐내려고 하고 공격수인 피고는 공을 잡기 위해 공을 향해 갔으나, 충돌 당시 공은 점프한 원고의 머리 위를 지나 날아가서 두 사람 모두 공을 잡지 못했다”며 “이러한 공 경합 상태는 축구경기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도 통상 예상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사고 당시 피고가 원고 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설령 피고가 공을 향해 달려가면서 멈추지 못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정상적인 공 경합 상태에서 공을 선점하기 위한 행동으로서 원고와 부딪힐 것이 명백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수에게 골키퍼와 부딪힐 수도 있다는 추상적인 가능성을 생각해 공을 선점하기 위한 행동(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라는 것은 축구경기의 성질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충돌을 피하지 못한 것만으로는 피고의 행위가 경기규칙에 위반된다거나 위법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 측이 항소했고, 대전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이승훈 부장판사)는 2016년 12월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피고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원고의 안전을 배려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봐 피고에게 손해배상책임을 20%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골키퍼가 수비하는 골대 위로 넘어가는 공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경우 골키퍼의 상황과 움직임에 유의해 골키퍼가 다치지 않도록 배려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그런데도 공을 잡기 위해 높이 점프하는 원고 쪽으로 빠른 속력으로 무모하게 달려가다가 점프 후 내려오는 원고와 세게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피고는 원고가 점프할 당시 이미 골대 부근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주장하나, 충돌 부위, 충격의 정도, 충격 후의 상황 등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며 “건장한 체격(키 178㎝, 몸무게 100㎏ 이상)인 피고로서는 상대방 선수와 충돌 시 충격의 정도가 커질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격렬한 경기가 예상되는 대회나 시합이 아닌 동호회 회원들 사이의 친목을 위한 경기였다. 위험구역 내에서 공격수가 상대팀 골키퍼와 공의 경합을 넘어 조심성이 없거나 무모하게 신체 접촉으로 차징파울을 범해서는 안 되는데도, 피고가 이를 위반해 원고에게 뛰어 덤벼드는 반칙을 범해 사고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판부는 원고도 상대방 선수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잘 살피지 못한 채 골대 위로 넘어가는 공을 잡으려고 무리하게 점프를 시도함으로써 충격의 정도가 더 커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 피고의 책임을 일부만 인정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이에 B씨가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다친 골키퍼 A씨와 가족이 상대방 공격수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7다203596)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운동경기 참가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경기자 등이 다칠 수도 있으므로, 경기규칙을 준수하면서 다른 경기자 등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신의칙상 주의의무인 안전배려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런데 권투나 태권도 등과 같이 상대선수에 대한 가격이 주로 이루어지는 형태의 운동경기나 다수의 선수들이 한 영역에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승부를 이끌어내는 축구나 농구와 같은 형태의 운동경기는 신체접촉에 수반되는 경기 자체에 내재된 부상 위험이 있고, 그 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위험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유형의 운동경기 참가자가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는 해당 경기의 종류와 위험성, 당시 경기진행 상황, 관련 당사자들의 경기규칙의 준수 여부, 위반한 경기규칙이 있는 경우 그 규칙의 성질과 위반 정도, 부상의 부위와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되, 그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종전 대법원 판례(2011다66849, 66856)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고가 공을 쳐내기 위해 왼쪽 후방으로 점프했으나 공에 닿지 못했고, 그 순간 공이 원고의 머리 위를 지나간 것으로 보이며, 피고는 공을 쫓아 움직이다가 착지 중이던 원고와 충돌한 것”이라며 “공의 궤적, 원고와 피고의 진행 방향, 충돌지점 등에 비추어 충돌 직전의 상황은 골키퍼와 공격수가 날아오는 공을 선점하기 위해 경합할 만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이어 “피고가 충돌지점까지 빠른 속력으로 달려가다가 충돌한 것이라고 해도 위와 같은 공 경합 상황이라면 피고는 공의 궤적을 쫓은 것이고, 원고의 움직임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했더라도 충돌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상황 등에 비추어보면 피고가 원고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축구경기의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규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더라도 위반 정도가 무겁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격렬한 신체접촉이 수반되는 축구경기의 내재적 위험성, 골대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두고 공격수와 골키퍼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접촉의 일반적인 형태 등에 비추어도 피고의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 원고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고로 원고가 중한 상해를 입었다는 사정은 위와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원심이 피고가 축구경기 참가자로서 준수해야 할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음을 전제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축구경기 참가자의 안전배려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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